능력을 깨닫게 된 것은 존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존재함과 동시에 깨달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눈앞에 있는 커다란 반달 모양의 그 것을 작은 앞니로 갉아 먹었고, 몸집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게 변한 주변 풍경들을 보며, 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신체의 일부를 먹고, 그 사람과 똑같은 외피를 뒤집어 쓸 수 있다니, 얼마나 편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그 존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줌도 안 되는 크기로 살 때는 취급도 안 해주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단지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고 그럴듯한 표정으로 그럴듯한 행동으로 연기만 해주면 세상은 백 팔십 도로 뒤바뀌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존재를 환영했다. 그는 타고난 기질 덕분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법을 알고 있었고, 사람들이 원하는 외피의 행동을 함으로서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었다.

 

반가워요. 이 근처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모습에 적당히 반응했다. 똑같이 웃으며 손을 내밀면 되었다. 힘주어 잡은 손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이웃의 이름은 벤자민 이었다. 벤자민 던.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벤지라고 소개했다. 즉흥적으로 골라둔 이름 몇 가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랐다.

이단 헌트입니다.”

아마 전에 썼던 이름일 수도 있다. 말을 뱉자마자 익숙한 울림이라고 생각했다.

벤지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람을 흉내 내는 것에는 사랑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이단은. 항상 사랑이란 감정을 최대한 즐기고 매번 사랑하는 것에 충실했다. 한 번의 악수 이후로 이단은 벤지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벤지가 이단을 사랑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벤지가 마음에 들었다. 벤지랑 같이 있는 것은 시간이 가는 걸 까먹을 정도로 즐거웠다.

 

지금보다 심술궂었던 옛날에는 상대의 자리를 빼앗고 차지하는 것에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단은 안정감을 원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고, 실제로도 그렇게 노력했다. 벤지는 이단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기를 원했다. 이단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벤지가 질리거나, 이단이 질리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그런 일이 오기 전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을 진짜 이단 헌트의 여유분은 충분했다.

옮길 짐은 적었고 하루도 안 걸려 이사는 끝났다.

 

작은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이단일 경우에는 꽤 골치 아파지는 일이었지만.

이단은 평소와 같이 자신이 되기 위해 그의 일부를 먹었다. 항상 같은 시간이었다. 반드시 그 시간이여만 되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엇비슷한 시간이었다. 어찌되었던 벤지가 눈을 뜨기 전이면 됐다.

평소와 같았다고 생각했다. 몸이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 대충 옷가지를 끼어 입고 벤지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벤지가 일어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세상에.”

이단이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을 때, 벤지는 냉장고를 뒤적이는 자신을 보았고 그가 낮은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단은 벤지의 모습을 하고 냉장고를 보고 있었다. 바로 벤지의 앞에서. 자신의 철두철미함을 완벽하게 믿었던 이단은 벤지의 멍청한 표정을 일 분 이상 본 후에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급하게 얼굴과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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