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아침 식사를 차리기 전에 벤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직 꽃을 맺지 않은 줄기와 다육이 화분에다 물을 주는 일이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바로 옆에 있는 분무기를 들어 물을 채우고, 화분에 평편하게 쌓인 흙바닥에 물을 몇 번 뿌려준 뒤 줄기에는 꽃망울이 얼른 피기를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대하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화분들을 옮긴 다음 창문을 열어 함께 바람을 쐬는 것 까지. 이것이 바로 바른 생활의 본보기 같은 아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도를 마친 분무기를 화분 옆에 내려놓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육이가 문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상 없이 푸르던 이파리에 점박이처럼 검은 무늬가 찍혀있었다. 손가락으로 이파리를 쓸어 확인해 보니 검은 것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잠깐 그 앞에서 고민하던 벤지는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키워드를 따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달마시안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만 나올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휴대폰을 들어 이파리의 상태를 사진으로 남겼다. 이 문제를 아주 손쉽게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 사실, 벤지는 오히려 이 원인모를 반점이 생긴 것을 기회로 그에게 말을 한번이라도 더 붙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래하고 있었다.



 

실례할게요.”

 

퇴근만을 기다렸다. 벤지는 퇴근 할 시간이 되자마자 겉옷을 챙겨 후다닥 밖으로 튀어 나갔다. 몇 주간 얼굴을 열심히 보인 덕에 단골이 된 가게는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는 종이 경쾌하게 울렸지만 가게 안은 조용했다살짝 좁은 입구 안으로 몸을 들이 밀자 텁텁한 흙냄새가 퍼졌다. 눈높이에는 커다란 잎사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위로 올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가게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깊숙한 곳, 그가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장소는 가게 한켠에 딸린 비닐하우스였다. 생각과 동시에 멀리서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 곳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벤지는 비닐을 옆으로 재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아니나 다를까, 안에는 기다란 호스를 들고 있는 그가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으로 놀란 얼굴을 하고 벤지를 돌아보았다.

 

인기척이 없어서 온지도 몰랐네요. 반가워요.”

 

가게 주인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벤지는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 그는, 이단은, 새파란 식물들에게 둘러싸인 이단은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볼만했다. 무엇보다 물이나 흙 따위를 묻히지 않기 위해 이단이 착용한 해바라기가 그려진 앞치마까지. 벤지는 실없이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허공을 바라보며 이 곳에 온 이유를 생각해내기 위해 애썼다.

 

, 그 앞치마...”

.”

 

애만 썼다는 뜻이다. 이단은 머쓱하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앞치마에 군데군데 묻은 흙을 털어댔다.

 

안 어울리나요?”

아뇨! 저도 마침 앞치마가 필요했는데 그 디자인이요. 참 귀여워서 가지고 싶어서요. , 그러니까. 잘 어울린다구요.”

 

벤지는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마워요.”

그건 그렇고, 저번에 샀던 식물에 문제가 생겨서요.”

 

화제 전환이 필요했다. 벤지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에 들어갔다.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을 누르니 오늘 아침에 찍은 다육이 사진이 있었다. 최근 들어 특별히 물을 덜 주거나, 더 주거나 다른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증상을 보인다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 말을 곰곰이 듣던 이단은 사진을 보기 위해 벤지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벤지는 잠깐 숨을 멈췄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너무 긴장한 티를 내는 것도 바보 같아 보이니까. 이건 그냥 평범한 대화일 뿐인데 말이야.

이렇게 가까이서 이단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아무래도 식물과 부대끼고 살다보니 좋은 공기를 많이 마시고, 그밖에도 모를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잘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이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 액정에 가까이 갔던 얼굴을 들어 벤지를 쳐다보았다.

 

벤지, 혹시 항상 창문을 열어놓나요?”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아요.”

예민한 친구네요. 이 점 보이죠? 공기 중에 타고 온 병원균에 감염 되어서 생긴 거예요. 약 좀 바르고 흙만 갈아준다면 시드는 거 없이 잘 자랄 거예요.”

 

말을 마친 이단은 찬장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벤지의 손에 쥐어주었다.

 

관심 없으면 발견하기 어려운데, 잘 돌봐주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네요.”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요.”

 

정확히는 몇 주 전, 최근에 생긴 관심이었다.

 

돈은 안 받을게요. 걸리기 힘든 병인데, 여기서 산 친구가 병에 걸렸으니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벤지는 이단이 건네주는 비닐봉지에 담은 흙을 받았다. 한 손으로 지갑을 꺼내기 위해 끙끙대니 들은 말이다.

 

그래도 약이랑 흙까지 챙겨주셨는데...”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자주 오시기도 하고. 고마워서요.”

, 이단. 그럼 이따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급하게 튀어나온 말은 싸구려 플러팅과 다를 바 없었지만 벤지는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단은 흔쾌히 승낙을 했고, 벤지는 확실히 이것이 기회가 맞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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