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가 전 날 먹은 저녁 식사의 메뉴를 기억하지 못 하게 된 이후로 찰리는 그를 대령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클라우스가 그 이름에 관한 기억을 잃었다면 굳이 그 호칭을 사용해 부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찰리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끄트머리부터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을 보며 한숨을 집어 삼켰다.

 

클라우스의 기억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지워졌다. 그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사람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 그 자신이었다. 그는 뒤돌아서 분주히 움직이는 찰리의 이름을 부르려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클라우스는 결국 입을 다물고 찰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아니, 아무 것도 아니네.”

 

……. 울프.” 그리고 덧붙였다. 찰리는 평소 같은 얼굴을 한 체 뒤를 돌아보았고, 클라우스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이름이 찰리 울프라는 것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내내 사소한 개념들이 떠오르지 않았고 엄지 마디만한 두께의 책을 읽는 것도 앞 장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뒤적이기 일쑤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한쪽 손을 못 쓰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모든 사람들은 기억을 하면서 존재한다. 기억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클라우스의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클라우스가 가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지만 생생한 아내의 얼굴이,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찰리 울프가 자신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날 클라우스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음을 느꼈다. 이유를 물을 기억 따위는 남아있지도 않았다. 클라우스에게 있어서 이 상황들, 모든 것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처럼 다가올 때 클라우스는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모든 실수를 자신의 부주의로 돌리고 단순한 실수라 치부했다. 클라우스는 기억 속의 자신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거울 속에서 눈을 떼고, 무감각한 얼굴로 펜을 집었다. 펜이 집히지 않았다. 클라우스의 잘린 손목이 애처롭게 펜 위를 허우적대고 있었다.

찰리가 클라우스의 상태를 눈치 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오늘이 며칠이지?”

 

찰리는 병원에서 준 몇 가지 질문이 적힌 종이를 뒤적이며 질문을 꼽았다. 주치의는 오는 주마다 클라우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찰리에게 간단하지만 중요한 숙제를 주었다. 에이 포 크기의 종이에 몇 가지의 질문을 클라우스에게 하면 되었다. 날이 갈수록 빠르게 지워져가는 그의 기억과 나빠지는 인지능력을 살펴보기에 좋은 지문들이었다. 오늘이 몇 년인지, 무슨 요일인지, 이 곳이 어디인지. 열 살 정도만 되어도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러지 못했다.

 

오늘은 날이 좀 춥군.”

클라우스. 얼른 하고 끝내자고. 며칠인지 기억해?”

 

클라우스는 헛기침을 하며 찰리의 시선을 피했다. 찰리는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클라우스는 이미 찰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몇 월인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찰리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난 번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종이를 넘겼다. 좋지 않은 결과였다. 고작 한 주 전에는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에 클라우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찰리는 코를 긁으며 종이를 책상에 집어 던졌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모두 다.

 

지금이 90년도라는 건 알고 있네.”

 

찰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맞았다. 정적을 깬 것은 찰리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였다. 적어도 찰리가 아는 90년대에는 이렇게 얇은 두께의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찰리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클라우스는 심상치 않은 찰리의 반응에 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더 굳게 닫았다. “씨발,” 움츠러든 클라우스의 어깨를 본 찰리는 험악한 표정으로 종이를 테이블 위에 던져버렸다. 소용도 없는 설문지 따위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찰리는 초조했으며 클라우스는 자신의 앞에서 씩씩대는 낯선 이가 두려웠다. 기억을 회복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주변을 둘러보던 찰리는 클라우스의 어깨를 붙잡고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로 끌고 갔다. 찰리의 손아귀 힘에 끝까지 버티던 클라우스는 결국 휘청대며 찰리의 뜻대로 거울 앞에 섰다.

 

대령. 아니, 클라우스. 젠장. 클라우스. 거울을 봐. 90? 90년이라니.”

, 이봐. 자네…….”

 

클라우스의 눈동자가 힘없이 떨렸다. 시선은 아무 것도 없는 천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찰리의 얼굴로 내리 꽂혔다. 아마 찰리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쓰는 걸지도 몰랐다. 찰리는 클라우스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내 이름은?”

 

클라우스는 어깨에 올라와 있는 찰리의 손을 쳐냈다. 세게 쥐고 있는 것치고는 손쉽게 떨어졌다. 클라우스의 눈동자는 찰리의 얼굴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기억은 90년대에 머물러 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몇 사람을 골라내고 있었다. “존 소령?” 찰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맞췄다 생각한 건지 클라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찰리는 말문이 막혔다. 돌덩이라도 얹혔는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내가 그 특이한 수염을 잊을 것 같았나. 그동안 뭐하고 지냈지?”

 

클라우스는 찰리의 표정변화를 보지 못한 체 마구 지껄였다. 찰리는 겨우 숨을 뱉어냈다. 본래 클라우스의 말투는 심하게 점잔을 떨며 고상하게 말하는지라, 그런 방식의 화법에 알러지가 돋는 찰리는 가끔은 클라우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입을 맞추고는 했다. 하지만 반가운 듯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멍청하게 서있는 찰리에게 가볍게 포옹을 한 클라우스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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