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문 가장자리에 달린 종이 딸랑이며 내는 소리에 브라이언은 닦던 잔을 내려놓고 그 익숙한 걸음걸이를 반겼다.

 

왔어요?”

 

브라이언은 몸을 돌려 맥주병으로 가득 찬 냉장고의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차가운 한기가 몸을 한 번에 훑고 지나간다. 숀이 즐겨 마시는 병맥주를 꺼내 바에 얹어 놓았다. 브라이언은 바에 팔을 가볍게 걸치고 숀의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희멀건 하게 뜬 눈은 초점이 없었고, 다크서클은 광대 위까지 내려 왔으며 얼마나 피곤했던 모양인지 입술은 허옇게 각질이 다 일어난 상태였다. 브라이언은 그런 숀의 꼴을 보고 두통이 오는 것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 무슨 일 있었어요?”

 

숀은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따지지 않은 병맥주를 마시려고 입을 대었다가, 뒤늦게 뚜껑이 따있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오프너를 찾았다. 보다못한 브라이언은 숀의 손에 쥔 병을 뺏어 뚜껑을 따 숀의 눈앞에 놓아주었다. 확실히, 숀은 제 정신이 아닌듯 싶었다.

 

술 마시고 온 거예요?”

 

이번에는 브라이언의 질문이 제대로 귀에 들어온 모양인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숀은 단번에 맥주를 반 쯤 들이마시고 다시 멍청하게 눈만 껌뻑였다. 브라이언은 불만스럽게 팔짱을 꼈다.

 

이봐요.”

?”

무슨 일 있었냐구요.”

아무 일 없었어요.”

 

빈 병을 확인 한 브라이언은 다시 병맥주 하나를 꺼내 숀 앞에 놓아주었다. 뚜껑을 따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숀은 고마워요. 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목을 축였다. 브라이언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고, 인내심 있게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맥주를 세 병 비웠을 때 쯤, 숀은 한숨을 푹푹 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 일 없는 게 문제예요.”

무슨 뜻이에요?”

 

다른 손님에게 나갈 토닉에 들어갈 오이를 썰고 있던 브라이언은, 숀이 꺼낸 이해 할 수 없는 말에 화들짝 놀라 손을 벨 뻔 했다.

 

아무 일이 없어요.”

 

브라이언은 저민 오이를 잔 안에 말아 넣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평소 숀은 남들에게 쉽게 잘 휘둘리는 성격이라, 잔뜩 우울한 얼굴로 들어와 술만 먹고 주저리주저리 말만 뱉는 이러한 상황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럴 때면 항상 오늘은 이러한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힘들어요. 슬퍼요. 우울해요. 브라이언이 타 주는 칵테일이나, 싸구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하소연을 하는 게 숀의 일과 비스무리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무 일 없었다며 우울해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 왜 그럴까...”

 

브라이언은 드라이 진을 오이가 들은 잔에 따라 넣으며 숀의 상황을 천천히 되짚었다.

 

일이 너무 지겨워요?”

 

숀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홈런이구나. 아마 브라이언은 '숀 심리생태 전문가 코스'가 있다면 제일 첫 번째로 자격증을 땄을 것이다. 완성 된 진토닉을 가지러 온 주정뱅이에게 대충 눈인사를 한 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숀을 보았다.

 

바로 그게 권태라는 거죠. 이해해요.”

아무 일도 없고, 항상 똑같거든요. 아침마다 들리는 편의점, 출근해봤자 매일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일 끝나고 오는 윈체스터까지 지겨울 정도예요.”

 

, 아니. 물론 윈체스터에서 브라이언이 주는 술을 마시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아니 좋아요. 진짜. 숀은 그 정신에도 지겹다고 단언 한 것은 실수했나 싶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이후로 숀은 말문이 트인 모양인지 뱉은 한숨과 함께 브라이언에게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내 인생에서 바뀌는 건 매일같이 들어오는 신형 전자제품밖에 없을 거예요.”

 


브라이언은 출근하는 숀에게 흰 색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사직서요.”

윈체스터 그만 두게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줘요?”

내 사직서는 여기 있고.”

 

브라이언은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지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숀은 브라이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과, 그의 여느 때와 같이 잘생긴 얼굴을 번갈아 세 번 정도 보았고, 브라이언은 그런 숀의 반응을 즐겼다.

 

이건 당신 거.”

잠깐, 나 지금 이야기의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는데.”

나랑 같이 떠나요.”

어딜요?”

, 여기만 아니라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권태로움에 바닥 긁는 숀이랑 브라이언이랑 열대 섬으로 이민 가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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