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AU

band of brothers William Evans x Interview with the Vampire lestat


환영을 본 사람이 과연 무슨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연기와 같이 공기 중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단정하게 묶은 금발, 그 사이로 보이던 얇은 얼굴선 까지도. 그 순간. 우습게도 윌리엄은 알코올에 절여진 솜처럼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윌리엄은 농사나 짓고 살던 한적한 시골에서 갓 상경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밭을 갈고, 하루 일의 마무리로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앞에 여물을 가득 던져 준 윌리엄은 발끝에 체이는 흙이 묻고 잔뜩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다. 제국에서 뿌리는 흔한 징집 선전용 전단지였다. 윌리엄은 아직도 여물이 묻은 손바닥을 대충 털어 버린 뒤 허리를 굽혀 전단지를 주워 읽었다.

 


당신의 힘을 제국에 보태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전단지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홀린 듯이 전단지의 아래부터 위까지 천천히 훑었다. 적당히 사기를 북돋는 말과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될 것같이 써진 언어들. 윌리엄은 마지막으로 붙어있는 온점까지 속으로 읽고 난 뒤, 그 안에서 끌어 올라오는 전의를 느꼈다.

 

이렇게 수많은 시골 청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제국군에 입대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윌리엄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우연히 마주친 환영에게. 제국 내 온갖 소문의 중심지인 레스타에게. 갓 상경하자마자 제국 군복을 받아 입은 윌리엄이 그 레스타를 알 리는 없었다.

 

윌리엄에게 있어서 사랑의 열병은 유행 바이러스보다 더 독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기운 없이 거리를 비척비척 돌아다니던 윌리엄은 아주 우연히, 제국 안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제국 뒤편에 있는 산이라고 하기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는 높은 커다란 공터에 아주 무시무시한 마법사가 사는데. 그 마법사는 모르는 것이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윌리엄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마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환영을 본 것인지, 아니면 그 환영이 진짜인 것인지 까지. 더 나아간다면 윌리엄에게 그 환영의 이름과 그가 사는 곳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윌리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 밖에 없었다.

 

윌리엄은 훈련이 일찍 끝나는 날을 택해 그 마법사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그를 둘러싼 추잡한 소문들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은 마법사를 보기도 전에 그가 정말로 무시무시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음을 인정했다. 윌리엄의 바로 눈앞에 거대하고 기괴한 건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모아 전시하겠다는 듯이 붙여놓은 건물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삐그덕 거리며 존재했다. 그것을 집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한 발만 내딛는다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윌리엄은 바싹 말라오는 목구멍 안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바닥에서 십 센티 정도 떨어진 계단에 올라서기 위해 떨어질 것 같은 난간을 두 손바닥으로 붙잡고 겨우 문 앞에 섰다. 윌리엄이 주먹을 쥐고 문을 노크하기 전에.

 

누구야.”

 

문이 열렸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히 금발을 묶은 환영의 남자가 나타났다. 윌리엄의 표정은 꽤 멍청했고.

 

제국군이잖아.”

 

그 표정을 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마법사, 레스타는 멍청이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윌리엄을 쳐다보았다.

 

난 제국군을 좋아하지 않아.”

 

윌리엄은 얼굴 하나 크기로 작은 키의 레스타를 내려 보았다.

 

그리고 누가 내려다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레스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윌리엄의 바로 코앞에서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집은 주인의 마음처럼 불청객을 쫓아내기라도 하듯이 예고하지 않은 큰 동작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윌리엄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바닥 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찌르르 통증이 올라오는 꼬리뼈는 물론이고 윌리엄의 머리속은 레스타와 마법사 그리고 사라진 환영이 뒤죽박죽 섞여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었을 때는, 레스타의 거대하고 기묘한 집은 이미 안개 속 멀리로 사라진 뒤였다.

 

 

레스타!”

 

제국 내에서 레스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용기가 있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레스타는 우아한 몸짓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군복을 입은 불청객이 서 있었다. 며칠 전에 집으로 찾아온 제국 병사. 자연스럽게 그 얼굴을 기억해 낸 레스타는 불쾌한 안색을 겨우 숨겼다. 레스타에게 있어 표정을 숨기는 것은 아주 능숙한 일이었다.

 

윌리엄 에반스라고 합니다.”

 

긴장된 어투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윌리엄은 곧바로 등 뒤로 숨긴 것을 레스타에게 건냈다. 레스타는 갑작스럽게 건내진 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손에 들린건 꽃이었다. 레스타의 옅은 금발과 색이 비슷한 수선화가 장식 되어 가득 꽂혀 있는 꽃.

 

첫 눈에 반했습니다.”

 

레스타는 제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을 기억이라도 하는지 엉거주춤 서서 꽃을 건내 주는 윌리엄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 날 처음으로. 레스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전혀 짐작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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