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au (스포일러 있음)





순식간이었다. 사람이 칼. 아니, 거대한 검에 찔리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다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것이다. 그는 죽었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범인들은 달아났다. 아마 범인들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찌르고 싶었던 모양이지. 이단 헌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죽을 땐 말이야. 아니, 우리들이 사람이던가? 전산으로 입력 된 사람인 척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이 죽을 때는. 시체가 남는다. 이 곳은 장례를 치룰 필요가 없었다. 실체가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는 죽었다. 불쌍한 벤자민 던. 이단 헌트를 찌르기 위한 검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죽음을 몰랐던 탓이겠지. 단순히 찾아오는 어둠이라거나, 침묵. 사라지는 것들 등등. 사람이 아니었기에 피가 튀기거나 창자가 튀어나오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 빼면 예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의 몸통에 꽂힌 검을 제외하면 그는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정신 차려요!

 

심지어 말도 멀쩡하게 하잖아. 사람 몸통만한 검이 빛을 내며 웅웅 거렸다. 유쾌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앞으로 할 일도, 앞일도 모르겠는데 어쩌지? 이단은 그제서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도 부작용 중 하나일까? 바이러스의 일종? 아니면 버그? 클라우드 뱅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벤지는 이단의 마음을 아는 듯 웃었다. 여기서 제일 태평한 사람을 꼽으라면 의심 할 여지도 없이 벤지일 것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일단 내 몸에서 내 몸 좀 꺼내줄래요?

 

이단은 벤지의 말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의 불쾌한 경험 두 번째. 검이 바닥에 끌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거대한 모습과는 달리 가벼운 무게였다. 적당히 끌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무게. 구점 육 킬로그램 정도 되는. 이단은 벤지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바닥에 죽어있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요.

 

감상에 젖을 틈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걸 찾으러 온 것 같네요. 이단을 죽이기 위해 던졌던 검. 그리고 벤지를 찔렀던 검.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바이러스들을 보며 이단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과, 목소리를 얻은 검이라니.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이단은 바이러스에 감염 된 프로세스들을 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사실 가다듬었다는 표현은 잘못 된 표현이었다. 애초부터 가다듬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가다듬는 척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단은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뿐이고.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기?

 

벤지는 고개를 돌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로 옆에 이단의 얼굴이 떠올랐다.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이단 헌트가. 표정을 보니 후자는 절대 아니겠군.

 

복수?

, 그건 진짜 안 좋은데.

 

 

 

세상이 망해가는 와중에도 피자 가게는 정상 영업이라니!

 

코너에서 얼핏 보이는 가게는 아직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정상 영업합니다. 배달지와 메뉴를 고르세요. 먹음직스러운 피자를 눈앞에 두고 지나치는 사람은 없다. 특히 그 가게의 이름이 정 션 피자일 때는 더더욱. 아무리 복수극이라도, 이런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이단은 망설임 없이 단말기 앞으로 다가갔다. 배달지는 집. 메뉴는.

 

여기 메뉴가 왜이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파인애플 피자가 유일한 것 같은데요.

 

역시, 무난하게 페퍼로니로배달 완료시까지 4:00. 이단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벤지의 투덜거림도 잠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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