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거대한 털뭉치를 보았을 때, 찰리에게 떠오른 감정은 충격이라기보다는 당황에 가까웠다. ? 그 덫은 타깃을 위한 것이었지, 늑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기껏 놓은 인간을 위한 교묘한 덫에 짐승 따위가 걸려드니 찰리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찰리는 천천히 늑대를 살펴보았다. 자신에게 위험한지 판단하기 위하여. 늑대는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르렁 거리는 가래 낀 소리는 덤이었다. 눈 한 쪽은 일자로 그어진 흉터와 함께 감겨 있었고, 코는 건조하게 일어난 것이 건강이 좋아 보이는 상태는 아니었다. 찰리는 기다란 총으로 늑대의 배를 콕콕 쑤셔대며 건드렸다.


살아있나?”


혼잣말이었다. 늑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찰리는 총을 거둬들었다. 총알을 낭비 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덫은 매우 복잡한 것이었고, 비쌌다. 찰리에게 이런 것은 매우 중요했다. 비싼 것 그리고 싼 것. 찰리는 죽어가는 늑대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좋은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 덩치에 저 정도로 윤기 나는 털가죽이면 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무두질은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그만한 값은 톡톡히 해주었다. 말만 잘 하면 덫 두세 개는 더 놓을 정도의 돈을 받을 수도 있었다. 찰리는 조심스럽게 늑대의 앞으로 다가갔다.


찰리가 다가가자 늑대의 주둥이가 위로 들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였다. 위협적인 소리에 찰리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뒷꿈치에 밟히는 미끄러운 눈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씨팔. 상스러운 목소리로 욕을 했다. 늑대는 끊임없이 목을 울렸다. 찰리는 계속해서 욕을 뱉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늑대의 목숨은 찰리의 한 손에 들려있었다. 늑대는 찰리에게서 도망가려 몸을 일으키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새까만 털 곳곳에 새하얀 눈이 묻었다.


자세히 보니, 한 쪽 다리가 성하지 못하다. 찰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병신한테 농락당한 꼴이군. 바지에 묻은 축축한 눈덩어리를 거칠게 털었다. 늑대의 숨은 더 가빠졌다. 찰리는 다시 총을 들었다. 깔끔한 뒤처리, 깔끔한 죽음. 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나봐?”


찰리는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늑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아프지 않게 해줄게. 그 편이 좀 더 값을 더 받겠지.”


장전했다. 가늠쇠 한 가운데에 늑대의 머리통이 오게 두고,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찰리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총을 살폈다. 총알이 없었다. , 젠장. 바보 같은 실수를 했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 주머니와 재킷을 살펴보았지만 여분은 없었다. 괜히 신경질을 부린다고 시체에 총알을 여러 발 더 쏜 탓일 것이다. 찰리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덫은 산 속 깊은 곳에 있었고, 쫓던 타깃은 이미 멀리 도망갔을 테고, 덫은 소용없게 되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다 죽어가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 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 여기 가만히 있을 거지?”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어디 갈 곳도 없으니까.”


혼잣말이었다

늑대는 대답 같은 것을 하지 못하니까. 찰리는 발목까지 쌓인 눈을 푹푹 밟았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찰리는 당황했다. 확실히 당황했다. 늑대는 사라졌다. 대신 덫에는 인간이 걸려있었다. 뒤질 때가 됐나. 헛것이 보이네. 두꺼운 장갑을 벗어 눈까지 비비며 자신의 눈앞에 쓰러져있는 덫에 걸린 벌거벗은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피부는 힘이 잘못 닿는다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찰리는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며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의식은 없는 것 같았다.


, 정신 좀 차려봐.”


손가락으로 뺨을 쿡쿡 찔렀다. 찰리는 그제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눈 한 쪽은 일자로 그어진 흉터와 함께 감겨 있었고 야윈 광대뼈와 살갗이 일어났지만 꽤 다부진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찰리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뭉툭하게 잘린 손목.


, 말도 안 되는데. ...”


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그에게 들은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가죽을 벗겨 파는 것보다 이런 것에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 팔아 넘기는게 더 돈이 되겠다.


외투를 벗어 그의 몸에 덮었다. 죽은 시체는 반값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 데려가야 했다. 덫에 걸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패인 발목을 급히 수습했다. 엉성한 손놀림으로 건드리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겨우 붙잡아 떼어 냈다. 그는 정신이 들었는지 흐릿한 눈으로 찰리를 올려다보았다.


수인이라고 미리 말하지 그랬어.”


그는 입을 열기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찰리는 낄낄 웃으며 바들바들 떨리는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그럼 이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집이라고 하기는 그런 은신처였다. 몸을 눕힐만한 장소가 있었고, 음식을 해먹는 장소는 먼지가 두껍게 쌓인지 오래였다. 찰리는 등 뒤에 업은 남자를 두툼하게 깔린 이불 위로 던지다시피 내려놓았고, 덕분에 그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아차. 뒤늦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뭐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어설픈 영어에 찰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

편한대로 부르게. 클라우스 아니면 슈타우펜.”

슈펜이 좋겠어. 꽤 친해보이잖아?”


슈타우펜은 입을 다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찰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찰리는 다소 성급해 보이는 몸짓으로 방 안을 빙빙 돌며 슈타우펜에게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대부분의 질문은 무시당하거나, 단답으로 끝났다.


왜 그곳에 있었지?”


쉽게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막상 슈타우펜이 입을 다물고 있는 꼴을 보니 찰리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특히 밤새 눈보라를 온 몸으로 맞고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말하기 싫으면 천천히 말해도 돼.” 

덧붙였다.

상처가 회복되면 당장 떠나겠네.”

떠나겠다고?”


어색하게 웃었다. 세워놓은 계획이 백지로 돌아갈 판이었다. 찰리는 슈타우펜에게 옷가지를 건네며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 늑대인줄 알고 그랬던 건 미안해. 난 또, 수인. 아니, 사람인줄 몰랐지 뭐야.”

익숙하니까 괜찮다네.”

그으래.”


찾아온 적막. 옷가지와 마른 몸이 부딪혀 버석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제 삼 자의 입장에서 보건데, 찰리는 정말이지 어색했다. 찰리는 삐그덕대는 자신의 몸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분간은 마음 편히 있으라구.”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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