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은 복근은 커녕 바지 벨트 위로 오동통하게 밀려나오는 뱃살을 보고 매일 다이어트를 걸심했다. 문 밖을 나서기 전에 남색 목도리를 두르고, 보풀이 살짝 일어난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치고.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기른 수염 사이로 아주 살짝 통통해진 볼살을 보며.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기필코 살을 뺄 것이라고 결심한다.

   그 날은 더더욱 그랬다. 매일같이 킬킬대며 '너 요즘 좋은가보다? 살이 붙었네.' 라고 하는 게리. (게리 딴에는 칭찬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군 말 없이 토스트를 씹어 먹던 엔젤까지 잭에게 바지 사이즈가 몇이냐고 물어왔다. 잭은 토스트 위에 무화과 잼을 펼쳐 바르다가 엔젤의 질문에 손에서 잼 나이프를 놓쳤고, 상처받은 얼굴로 '그렇게 말 할 필요까진...' 우물거리다가 식탁을 박차고 나왔다. 오는 봉급으로 가족에게 옷을 하나씩 선물해 주려던 엔젤에게 있어서는 정말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앞에 새우구이를 맛있게 하는 베트남계 음식점이 새로 생겼어요. 같이 갈래요?"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받고도. 그 결심도. 곧 잭의 사랑스러운 연인인 데이빗의 권유에 무너지고 만다. 같이 갈래요? 그 말에 안 돼요. 데이빗, 저 요즘 살 쪄서 당분간은 식단 조절을 해야돼요. 란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잭은 냉혈안이 아니었다. 적어도 잭은 데이빗에게 그런 말을 할 수있는 사람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죠! 저는 양념보다 소금을 친 새우가 더 맛있더라구요."

   그런 이유로, 잭의 다이어트 결심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간다. 데이빗은 잭이 잘 먹는 모습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잭은 자신을 볼 때 데이빗의 날카롭고 커다란 눈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을 사랑했다.

   소금구이. 양념구이. 그리고 새우만 먹으면 질린다는 이유로 작게 잘라 구운 소고기까지. 잭은 어느새 테이블 위 가득 찬 음식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엉엉 울었다.

   데이빗은 사고로 반 쪽 몸을 제 몸처럼 쉽게 쓰지 못했다. 잭은 껍질이 까서 나오지 않은 새우를 하나하나 발라 데이빗 앞의 식기에 가져다 주었다. 살살 녹는 통통한 새우의 살에 데이빗은 다시 한 번 이 곳에 잭을 데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식당을 알려준 이단에게 고마워했다. 몇 개를 더 집어먹던 데이빗은 막상 잭이 새우와 고기를 안 먹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알러지 있어요?"
   "아뇨, 좋아해요. 천천히 먹고 있는 것뿐이에요."

   확실히 잭은 그 전처럼 열심히 먹지 않았다. 데이빗이 잭의 고민을 알 리가 없었다. 잭은 실제로 새우를 먹으러 오기보다는 박살을 내러 온 사람마냥 집중해서 새우를 까고 있었다.

   "잭."
   "네?"
   "먹기 싫으면 말해요. 나가요. 우리."
   "저는 데이빗이 먹는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러요."
   "잭, 우리 사이에 벌써 그런 사소한 거짓말 쌓이는 거. 정말 싫어요. 무슨 일 있어요?"
   "정말 없는데..."

   결국 데이빗은 포크를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내려 놓았다. "잭."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잭의 이름을 불렀다. 잭은 나름 '요즘 살이 찐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에 걱정을 하는 남자처럼 보일까 걱정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데이빗을 속일 각오는 더더욱 없었다. 끈적한 소스가 묻은 손가락을 휴지로 닦으며 결국 실토했다.

   "요즘 너무 잘 먹었더니... 살이 좀 쪘어요."

   데이빗은 잭이 그런 말을 할 거란 상상을 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그는 잭이 남들보다 길쭉하고 마르면 말랐지 통통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황해 새우가 식도에 걸리는 느낌이었고, 데이빗은 두세번 기침을 했다. 그 기침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는지 잭은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싫어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미안해요."
   "아, 아니. 싫어한다고는 한 적 없어요. 잭이 그런 고민을 한다는게 너무 의외여서."
   "의외요?"
   "한 번도 살이 쪘다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그건 그렇고 저야말로 미안해요. 데이트 한다고 데려가는 곳마다 이런 음식점 이라서. 몸이 이렇게 된 이후로, 뭘 해야 성공적인 데이트가 될지 조금... 혼란스러뒀거든요."

   데이빗은 말을 조심스럽게 고르기 위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제 몸 때문에 일반적으로 데이트 하는... 산책이라던가, 운동이라던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나는게 이런 식당밖에 없었고."
   "아뇨. 절대 아니에요. 데이빗, 당신과 함께 하는 식사는 매일 최고고, 항상 새로워요. 내 말은 이렇게 먹기만 하는 데이트를 하다가는... 제가 조만간 굴러다닐 것 같았거든요. 데굴데굴 구르면서. 인사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저는 잭이 저와 함께하는 어, 데이트를. 지루해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혀요! 항상 짜릿한걸요. 좋아요, 우리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내일부터 당신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센트럴 파크도 걷고, 캐치볼도 하고. 지치면은 근처 서점이라도 들어가서 잡지나 보는 거예요. 데이빗은 여기서 절대로 내 속도가 잭에게 방해가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고."

   잭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보다는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인 것 자체가... 좋으니까요."

   그 말에 결국 데이빗은 미소지었다.

   "잭, 당신은 너무 로맨티스트예요."
   "칭찬이죠?"
   "물론. 얼른 먹고 근처라도 걸어요. 살 찌는 건 내일부터 걱정하고."
   "사실 아까부터 먹고싶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데이빗이 건내주는 새우는 식어 차가웠지만 맛있었다.
   잭이 속도를 내자 식사는 금방 끝이났다.



   "화장실 가서 손 좀 닦고 올게요. 아무래도 껍질 때문에 좀 끈적이네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안 춥겠어요?"

   데이빗은 고개를 저었지만 잭은 곧바로 가디건을 벗어 데이빗에게 건냈다. 잭은 가디건 안에 깔끔한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데이빗은 바로 앞에 놓여져있는 벤치 위에 앉았다. 오랜만에 신경을 쓸 일이 많았던 탓인지 저려오는 팔을 주무르며 잭을 기다렸다. 평일 오후였지만 이단의 말대로 동네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었는지 유동인구가 많았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한지 몇 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데이빗은 카운터에서 계산하려는 듯이 서성이는 잭을 발견했다.

   "잭, 계산 했어요."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데이빗은 벤치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그의 등 뒤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잭?"
   "어?"

   잭과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잭이 아니었다. 벤지? 언젠가 들었던 그의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떠올렸다. 놀라서 휘청이며 뒤로 넘어갈 뻔한 데이빗을 벤지가 빠른 반사신경으로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잭인줄 알았어요. 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음, 혹시... 데이빗?"

   벤지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간 이단에게서 들었던 꽤 최근에 사고가 나 몸이 불편한 막내동생 이야기를 떠올렸다. 데이빗은 벤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며 고개를 까닥였다.

   "안에 입은 옷이 똑같아서... 헷갈렸어요."
   "정말요? 쌍둥이라서 그런지 가끔 이런 거까지 겹쳐서 죽겠다니까요."
   "보기 좋네요."

   말하는 동시에 데이빗은 로이와 이단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의식적으로 잊어버렸다.

   "인사라도 하고 갈래요?"
   "아니에요. 어차피 금방 나갈거예요. 여기 맛있더라구요. 맛있게 먹고 즐거운 데이트 해요. 벤지."
   "데이빗두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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