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없는 것 마냥 철제문을 발로 쾅쾅 쳐대던 게리는 양 손은 물론이고 품에 한 가득 거대한 것을 들고 열린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활짝 열린 문 앞에는 반쯤 벗어재낀 몸뚱아리에 제 덩치만 한 호피 가죽 코트를 걸친 스테이시가 있었다. 스테이시는 게리의 품에 들린 거대한 물건에 얻어맞지 않기 위해 뒤로 몸을 살짝 피하며 게리의 동향을 살폈다. 꽤 무거웠던 모양인지 게리의 관자놀이 위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물건은 놓치지 않겠다고 하는 듯이 잡은 손등에는 핏줄이 잔뜩 서 있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스테이시가 안전하게 뒤로 물러나고, 제 눈앞에 물건을 놓을 자리가 생긴 것을 본 게리는 드디어 부들부들 떨리던 팔로부터 물건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스테이시는 빤히 게리를 쳐다보았다. 양 팔이 뻐근한지 한참동안이나 손목을 탈탈 털고, 어깨를 돌리던 게리는 뒤늦게 스테이시의 표정을 알아챘다.

 

다니다가 좋은 게 있어서 주워왔어.”

 

능청맞은 게리의 대답에 스테이시는 그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때고 정체불명의 물건에 관심을 주었다. 뒤집어엎어진 그것은 새까만 알루미늄 재질에 잡다한 버튼들, 그리고 군데군데 붙어있는 스피커가 강하게 자신의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필하고 있었다. 스테이시가 제 어릴 적에 사탕보다 더 가까이 뒀던 물건을 알아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허리를 굽혀 엎어진 물건을 바로 돌렸다. 버려져 있던 것 치고 깔끔하게 유지 된 건반과 흑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건의 정체는 신디사이저였다. 스테이시의 검지 손가락에 건반 하나가 눌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물건을 다루듯이 자연스럽게 만지는 스테이시의 모습에 게리는 의문을 품었다.

 

네 거야?”

세상에 진정한 내 것이라는 게 존재 하는 건가?”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둘 다 아니라면... 그래, 선물이라고 하자.”

고맙게 받도록 하지.”

 

게리는 바닥에 얌전히 놓여있는 신디사이저를 다시 들어 올려 스테이시의 방으로 옮겼다. 게리. 왔어요? 거실에서 들리는 데이빗의 상냥한 목소리에 게리가 크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려고 했지만, 제 발등에 물건을 떨어트릴 뻔한 이후로 얌전히 스테이시의 방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것에 집중했다.

 

근데 이거 소리는 나는 거야?”

연결만 가능 하다면.”

 

말을 하는 동시에 스테이시는 바닥에 놓여져 있는 어뎁터 하나를 찾아 손에 쥐었다. 좌측에 달려있는 작은 구멍에 어뎁터를 꽂고 선을 연결했다. 게리는 가만히 스테이시가 하는 모양을 쳐다보았다.

 

근데, 거 칠 줄은 아는 거야?”

게리 킹. 네가 항상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게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스테이시는 얄밉게 너스레를 떠는 게리를 한 번 힐끗 보고 난 뒤, 물건의 전원을 천천히 밀어 눌렀다. 수 천 시간의 연습 덕분에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힌 손가락을 가볍게 건반 위로 올려놓고, 버튼 몇 가지를 돌려 맞추다가 게리가 지루함에 하품을 할 때 쯤. 미세한 강도까지 조절 할 수 있을 것처럼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렀다.

 

내가 술과 섹스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음악이야.”

 

끝이 까진 검은 매니큐어 끝에 눌리는 건반 사이로 느릿느릿한 선율이 흐른다. 스테이시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더 무표정 한 듯 보였지만, 집중하는 듯이 살짝살짝 흔들리는 고개와 버림받은 것 치고는 꽤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조금 올라간 입꼬리가 그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원래는 밤에 듣는 음악이지만.”

 

게리는 하품을 하느라 쩍 벌렸던 입을 다물고 행여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선율 사이에 끼지 않도록 조심스레 팔짱을 꼈다.

 

가끔은 이런 낮에 듣는다고 그가 슬퍼하지 않겠지.”

누구?”

쇼팽.”

 

게리는 입을 다물었다. 스테이시의 말은 절반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넘겨 들어도 사는데 (주로 술을 마시거나, 섹스하거나.) 지장은 없었다. 게리는 스테이시의 말에 대충 고개를 주억거린 뒤 방 안을 가득 채운 극적인 레치타티보를 즐겼다.

 

훌륭해.”

 

대답 대신 건반 위에 세워져있던 손가락을 떼고 몸을 돌려 게리와 눈을 마주쳤다.

 

더 훌륭한 것도 보여줄 수 있지.”

 

스테이시는 외투를 침대에 던져 놓으며 게리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내 연주를 보여 줄 차례구만. 게리는 헤벌쭉 벌어지는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문신이 새겨진 스테이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쉽게도 스테이시의 목적은 게리와 같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공중에 멈춰진 게리의 손과 그의 멍청한 표정을 힐끗 본 스테이시는 고개짓으로 얼른 따라오라며 재촉했다.

 

 

스테이시는 게리를 집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 끌고 갔다. 방문은 기름칠을 하지 않은 모양인지 쇠가 긁히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쌓인 먼지가 게리의 정수리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털던 게리는 방 한 가운데 놓여있는 먼지로 뒤덮인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테이시는 삐그덕 거리는 피아노 의자를 끌어 앉았다. 게리는 그 주변을 천천히 돌며 피아노 지붕에 있는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묻어나오는 것은 없었다.

 

꽤 마음에 드는 공간이야.”

 

확실히, 게리는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신나하는 스테이시를 본 것이 거의 처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와 비슷한 표정이었지만 미세하게 상기된 그의 볼은 여실히 그의 감정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게리는 방 한 구석에 창문 위로 두꺼운 커텐이 쳐져 있는 걸 발견했다. 한 손으로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코를 막고 커텐을 한 쪽으로 밀어 치웠다.

 

게리 킹을 위하여.”

 

게리의 앞으로 먼지가 우수수 쏟아져 내리며 창문이 모습을 보였다. 마침 해의 방향이 맞았던 모양인지 주황빛의 태양광이 방 안을 밝혔다. 오랫동안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찾아와 튜닝을 해놓았던 덕분에 피아노의 선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처럼 가볍고, 탄성있게 튕겼다. 게리는 삐딱하게 벽에 기대고 서 스테이시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눈 위로 숱 많은 속눈썹이 깜빡이고. 왼쪽 가슴에 있어야 할 심장이 손가락에 있는 것 마냥 건반 위에서 생명을 얻어 날뛴다. 날뛰는 손가락 끝을 올라타서 단단히 근육이 잡힌 팔뚝, 험악한 용이 심장을 감싸고 있는 모양세로 그려진 가슴, 어젯밤 게리의 흔적이 남은 목덜미, 그리고 스테이시.

 

스테이시는 게리가 자신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표들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었다. 스테이시는 고개를 살짝 돌려 게리를 쳐다보았다. 게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머리칼에 손을 집어넣고, 그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스테이시의 손가락이 가볍게 건반을 퉁퉁 튕기다가, 천천히 게리의 허리를 잡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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