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나도 온라인으로 바뀌지 않는 표시에 잭은 암담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잭은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닫은 후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보았다. ‘데이빗,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그리고 보내기 버튼. 오 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시.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한건가요? ;(’ 고민하다가 슬픈 표정까지 넣어서. 이제 진짜로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핸드폰 액정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었다. 온라인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건 꼴불견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 소용없는 혼잣말로 환기가 될 속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잭은 자신이 데이빗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데이빗은 말 그대로 흔해빠진 온라인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잭이 데이빗이라고 부르는 이름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잭이 데이빗을 데이빗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아이디가 ‘david76’ 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빗이 실명이라면 아마 그 뒤의 숫자는 그가 태어난 년도겠지. ,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잭이 아는 데이빗은 즐겁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조니 미첼과 모네의 진품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을 좋아하고, 스노우 보드를 즐겨 탄다고 했다. 데이빗을 알기에는 그것들이면 충분했다. 잭은 쉽게 그의 유려한 말솜씨에 빠져 들어갔고 그를 만나기를 원했다. 잭은 자신이 충분히 외로워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만남을 원했다.


머리를 감싸 쥐고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어디 사냐고 물어볼 걸. 이와 비슷한 수많은 후회들이 잭을 잡고 흔들었다. 피하지 않고 흔들렸다. 차라리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정신이 없을 정도로 흔들어줬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실제로, 그 뒤에 테이블을 뒤집어 흔들 만큼의 큰 진동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도시와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광경에 잭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메시지에 적혀있던 주소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메시지에는 주소가 적혀있었다. 잭이 사는 곳에서 새벽에 비행기를 탄다면 이른 오후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잭은 다시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막연히 생각했다. 생김새는 모르지만 그 외의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잭이 당도한 곳은 꽤 커다란 주택 앞이었다. 잭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문을 두드렸다. 안은 조용했다. 잭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세 번 정도 반복했을 때, 드디어 문이 열렸다. 잭의 눈앞에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잭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의외의 인물께서 친히 주신 주먹이 날아왔다. 무방비 상태였던 잭은 그대로 얼굴을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봐.”


온 몸에서 알코올 냄새가 위험하게 풍기는 남자는 방금 잭을 때렸다는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꽤 친근한 말투로 잭을 불렀다. 당황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잭의 앞에 있는 남자는 데이빗이 아니었다.


데이빗?”


그는 잭이 머리를 굴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그가 원하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잭은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어보였다. 하지만 잭은 지푸라기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찌됐던 그는 데이빗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잭은 한순간의 분노로 일을 망칠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저기.”


젠장, 방금 목소리는 모자란 사람이 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스테이시.”


하지만 스테이시는 신경을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직도 현관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잭을 힐끗 본 스테이시는 그를 내버려두고 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초대받지 않은 곳에 온 기분이었다. 현관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잭은 조심스럽게 그의 집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어색하게 앉은 잭에게 스테이시는 맥주를 던졌다. 잭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작위적인 몸짓으로 테이블 위의 병따개를 집었다. 스테이시는 노골적으로 잭의 얼굴을 훑었다. 마치 심판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잭은 최대한 그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하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스테이시. , . 그러니까, 말이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너의 가슴 속 불꽃을 찾으러 온 거겠지.”

?”


입 안에 머금은 맥주를 바닥에 깔린 카펫에 흘릴 뻔 했다. 잭은 겨우 추스르고 스테이시를 쳐다보았다. 스테이시는 여전히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내가 널 초대했어. 그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스테이시. 잭은 듣는 것을 관두었다. 잭은 이곳에 온 이유를 곧 잊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넓은 집에 스테이시 혼자 사는 것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짐작이 맞았다.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 잭은 맥주병에 고정했던 시선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렸다. 스테이시와 비슷한 얼굴을 했지만 반쪽이 망가진 남자. 그는 잭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숨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다지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자동차 바퀴가 두 번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찌그러진 얼굴은 다시 스테이시에게 향했다.


?”


형제군. 잭은 속으로 생각했다.


데이빗. 이 쪽은 잭이야.”


처음 듣는 이름만 늘어간다. 아니, 데이빗

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결국 카펫에 남은 맥주를 잔뜩 흘려버리고 말았다. 이번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데이빗이라구요?


? ?”


데이빗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빗?”


다시 한 번.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스테이시가 술병을 흔들며 대답했다.


내가 초대했어.”


초대라. 이 상황과 제일 안 어울리는 단어가 틀림이 없었다. 데이빗은 머리가 아파오는 모양인지 관자놀이를 몇 번 누르다가 잭을 불렀다. 데이빗은 비틀거리며 잭을 안내했다


기다란 복도 벽에 조니 미첼과 모네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잭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그림이네요. 아주 좋은 취향이에요.”

.”

이렇게 직접 보니까 더. 당신도 마찬가지...”

관둬요.”


데이빗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 잭을 쳐다보았다. 끔찍한 침묵이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끔찍하지 않았다. 그래서 잭은 데이빗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지만. 놀랍지는 않아요.”

놀랍지 않다니. 그거야말로 아주 놀라운 이야기네요.”

놀란게 딱 하나 있다면. 생각보다 키가 좀 작은 걸요? 운동을 즐긴다고 해서 저는 덩치 큰 사람이 나올까 겁을 먹었었는데, 다행이네요. , 기분 나쁘다면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능청스럽게 조잘조잘 말하는 잭의 모습에 데이빗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 과거죠. 얼굴이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이야기에요. 미안해요. 당신을 속였어요.”

전 속은 적 없어요.”

그만 위로해줘도 돼요. 마찬가지에요. 익명 뒤에 이런 얼굴이 숨어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데이빗.”

아무튼, 스테이시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당신이 이렇게 찾아올줄 몰랐어요. 방에 들어가서 술 좀 더 마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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