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이단 전력: 포옹


진정해요.

 

제 눈앞에 놓인 상황과 다르게도 벤지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 내장이 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복부는 깊이 패여 있었다. 이단은 숨을 헐떡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벤지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쇼크로 인해 온 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벤지는 이단의 몸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단은 물 밖으로 튀어나온 금붕어마냥 뻐끔거렸다. 쇠를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신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움직이면 더 아플 뿐이에요.

 

달래듯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벤지의 손에는 날카롭게 길이든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피가 묻어있었다. 누구의 피 인지 상관할 바가 못 되었다. 수고했어요. 이단, 이제 아이엠에프는 끝이에요. 그 사람이 이겼어요. 라고 눈물을 흘리며 이단을 안던 벤지의 피. 손에 들은 나이프로 자신을 찌를 것을 직감했지만 그의 포옹을 피하지 않은 이단의 피. 이름 모를 누군가의 피.

벤지,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웃었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표정은 미소였다. 벤지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손바닥으로 이단의 얼굴을 문질렀다. 냄새가 옮겨 붙었다.

 

이제 나는 어떡하죠?

 

벤지는 이단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물었다. 이단은 죽었다. 질문을 할 사람도, 대답을 할 사람도 사라졌다. 벤지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이단 헌트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당신은 죽을 운명이었어요. 아무도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해요. 아이엠에프,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붙잡아 손톱을 뽑고, 눈알을 파내는 지독한 고문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끝내준 거예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사람은 이기지 못해요.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이었다. 대답이 필요 없는 변명이었다.

 

벤지. 항상 감정에 휘둘리지 마.

 

이단은 죽었다. 벤지는 이단의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죽은 시체의 피는 아직도 따뜻했다. 벤지는 이단의 품 안에서 안정을 느꼈다.

이단을 처음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순수한 의도였다. 벤지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디스크를 훌륭히 복원했고, 너무 신난 나머지 마침 옆에 있던 이단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그를 꽉 껴안았다. 이단은 일부러 벤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뒤늦게 누굴 안았는지 깨달은 벤지는 머쓱하게 포옹을 풀었고, 너무 신난 나머지 실례를 범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단을 두 번째로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더 이상 실수라는 변명은 소용이 없었다. 조용한 펍에서 루터와 이단, 벤지가 같이 술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루터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벤지는 자신이 느끼는 괴로운 감정을 이단에게 털어놓았고, 이단이 놀라운 해결책을 자신에게 답하기를 바랐다. 이단은 술에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벤지를 안아주었다. 위로나, 해법 따위는 없었다. 탄탄한 가슴팍이 벤지의 머리통에 닿았고 몇 번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주었다. 벤지는 좀 더 시간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루터가 들어왔고, 이단은 멋쩍게 웃으며 술에 취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잘 풀릴 거라고도 말했다. 어떠한 해답보다 벤지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이단을 세 번째로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이단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단은 벤지를 안아주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는 좋은 동료야.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잠깐 지나가는 것일 거야. 감정에 휘둘리지 마. 이번에는 실수가 아니었다. 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말하니까 속은 시원하네요. 이런 말 들었다고 다음 미션에서 날 빼는 건 아니겠죠? 농담을 했고, 웃었다. 끝이 없는 관계라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단은 새로운 동료와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벤지는 이단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이단은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서 자신의 몸을 숨기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벤지에게 접근했다. 그는 벤지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를 이용해야할지 잘 알았다. 벤지는 아직도 이단을 사랑했다. 이단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알았지만 고칠 용기는 없었다. 그 사람은 벤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단을 지키라고 유혹했다. 자신과 아이엠에프에게서. 항상 이용만 당하고 족쇄에 묶여있는 이단을 풀어줄 사람은 벤지 그밖에 없다며 설득했다. 벤지는 아이엠에프의 중요 정보를 빼돌리고, 그 사람은 이단 헌트를 점점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람은 벤지를 더 세게 몰았다. 이단 헌트를 지켜. 그는 인간이야. 뼈가 뒤바뀌는 고통을 겪게 하고 싶어? 차라리 고통을 겪기 전에 죽이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야. 벤지는 이단이 자신을 안아주었던 그 때를 생각했다. 벤지는 그 사람이 주는 작은 권총과 나이프를 품속에 넣었다.

이단을 구할 차례였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자국으로 엉망인 얼굴을 보며, 벤지는 이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온 몸이 딱딱하게 굳기 전에 그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문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도 섞여 들렸다. 벤지의 차례였다.


맞아요. 난 또 감정에 휘둘리고 말았어요.


벤지는 이단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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