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상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들었다. 시커먼 틈 사이로 괴물이 나오는 바람에 지구를 지켜야 되느니 뭐니 하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고, 처음 유니폼을 본 순간 - 이 쫄쫄이를 입고 싸우라고? 잔뜩 발을 구르며 화를 냈었던 적도 기억이 난다. 웃긴 포즈를 취하면서 악을 처단하고 (촉수괴물이라든가 쓰레기로 뒤덮인 지독한 괴물이라든가 상상할 수 있는 괴물은 모두 있었다) 종국에는 지구를 구한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까마득히 위로 올라가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모두 그러한 참 된 인류애를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 촌스러운 빨간색 쫄쫄이를 흔쾌히 입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인류애가 솟아났다거나 지구멸망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네가 레드구나.


   벤자민 던, 그리고 곧이어 블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으로 찾아온 그는 훈련으로 인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하고 바로 악수를 청했다. 긴장으로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레드를 보는 건 처음이야. 아버지가 그러는데 레드는 다 잘생겼다는데, 지금 보니까 진짜 잘생겼네. 어어, 내가 말이 좀 많나? 미안. 긴장하면 떠들어대는 버릇이 있어서. 그러고보니 우리가 악수를 했던가? 그 목소리에 홀린듯이 고개를 저었다. 벤지는 정신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잔뜩 헤집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2. 송곳니를 드러낸 입에서 시커먼 침을 뚝뚝 흘리는 괴물의 얼굴 정중앙에 창을 박아넣고, 바닥에 쓰러진 그것을 확인 후에야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뼈가 보이는 오른쪽 팔을 왼쪽 팔로 감싸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희미해져가는 시야로 루터와 브랜트, 그리고 벤지가 보였다. 그 때도 벤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아마 안전가옥에서부터 여기까지 쉴틈 없이 달려온 탓 일 것이다. 벤지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루터는 독단적으로 괴물을 죽이러 간 나를 탓하며 신경질적으로 몇 마디를 내뱉었고, 브랜트는 내 오른팔을 들어 어느 정도의 상처인지 확인을 했다. 거칠게 상처를 헤집는 탓에 눈을 감고 고통을 씹어 삼켰다. 눈을 떴을 때는 벤지는 사라져있었다.

 

   결국 벤지는 떠났다. 아마 쌓여왔던 것들이 기폭제가 되어 터진 모양세였다. 나도 너를 지킬 수 있고, 싸울 수 있어. 악이 받힌 그 소리에도 나는 역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3. 안녕, 이단. 보고싶었어? 오른쪽 가슴께에 찔린 쇠붙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벤지는 손잡이를 고쳐 잡으며 더 깊숙이 찔렀다. 목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이며 쏟아져 나왔다.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차례였다. 사실은, 보고싶었다. 정말 보고싶었어. 입을 벌렸지만 쏟아져 나오는 것은 고백이 아니라 핏덩이였다. 여러 색이 섞인 벤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벤지는 손잡이 위로 가볍게 손장난을 쳤다. 손에 쥔 무기를 잡는대신 바닥에 떨어트려 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 벤지는 그 행동이 웃긴 모양이었는지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 괜찮아. 겁먹지 마. 심장은 피해서 찔렀거든. 우리 보스가 널 보고 싶어해.

   널 떠난 이후로, 나는 새로운 레드를 만났어. 그는 너와 같으며, 같은 사람이 아니지.

   그가 널 보고싶어해.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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