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베스 님의 언더테일 au를 기반으로 합니다.

- 약간의 스포주의



발등에 느껴지는 촉감은 아직도 생생했다. 무성하게 자란 나뭇가지와 햇볕을 받고 싱싱하게 피어 오른 넝쿨들. 30년 전. 찢겨진 종이위에 한 컵의 물을 부어버린 것 처럼 흐려져 확실치 않은 기억들. 하지만 그 당시에 느꼈던 촉감들만은 아주 생생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발등을 휘감고, 인간은 구덩이에 떨어졌다.

 

* 이 세상은 죽거나 죽이거나야!

 

약간의 속임수와 살의를 품은 공격.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공격을 대신 맞아준 털뭉치. 덕분에 인간은 단 하나의 생체기도 얻지 않았다. 악의를 가득 품은 꽃이 저주를 내리며 자리를 피한 후에도 인간과 괴물, 그 둘은 한참이나 서로의 몸을 포갠 그 상태로 있었다. 인간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혼란스러운 정신을 제대로 잡을 때 까지 기다려 줄 수도 있었지만, 복슬복슬한 털의 주인은 인간과 달리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공격을 맞은 부위에서스믈스믈 올라오는 둔통을 무시하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인간을 쳐다보았다. 교과서 속에서나 보고 배웠던 처음 보는 생명체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꺼내 불러보았다.

 

* 인간?

* 맙소사, 내가 살아있는 인간을 보고 있는게 맞는 건가?

 

그래.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UNDERTALE AU


 


* 이 곳에 떨어지는 인간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도록 한다.

 

벤지는 왕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는 괴물이었다. 지난 20년간 그는 구덩이를 통해 떨어지는 인간을 물어 죽이고, 이 지하세계에서 제일 풍성한 털을 가지고 있는 괴물 왕에게 그들의 영혼을 가져다 바쳤다. 그가 이 지하세계에서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떨어진 인간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끔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르는 작은 꽃이 인간의 영혼을 가로채려 꾀를 부리는 것만 아니라면, 항상 비슷하거나 똑같은 하루였다.

 

폐허에 유일하게 햇볕이 비치는 공간은 공교롭게도 인간이 자주 발을 헛디디는 구덩이 바로 밑이었다. 벤지는 떨어지는 인간을 잡기 위해서, 또는 그 곳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낮잠을 자기 위해서. 폐허의 끝자락에 있는 집에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그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과였다. 벤지는 그 짓을 몇 십년간 반복 하면서도 단 한번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의 영혼을 회수하는 일에 단 한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제 단 하나. 단 하나의 인간의 영혼만 있으면 괴물들은 지상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마지막 영혼을 받은 왕이 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여태 괴물들을 가두어 놓았던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고, 작은 구덩이에 내리쬐는 한 줌의 햇볕이 아닌 지상에 가득 내리쬐는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괴물들은 그 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벤지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도착한 구덩이 틈으로 비추는 햇살은 바닥에 떨어진 인간의 등을 잡아먹을 듯이 내리쬐고 있었고, 벤지는 최대한 걸음 소리를 죽여 인간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떨어지는 동안 돌덩이에 부딪혀 작은 내상을 얻었는지 인간의 단단한 어깨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벤지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숨겨진 주둥이를 벌려 인간의 목덜미에 서서히.

 

서서히 자신이 떨어진 공간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든 인간의 익숙한 얼굴에 벤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왜 이 인간이 다시떨어진 것이지?

 

벤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멀리는 아니고, 인간과 딱 다섯 걸음이 떨어진 곳에.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할 정도의 어둠 속에서 바닥에 손을 짚고 등을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인간을 관찰했다. 벤지는 인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상의 인간들과 괴물들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을 때, 이단은 지하에 떨어진 첫 번째 인간이었다.

 

지금은 마지막 인간이 될 수도 있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수백가지의 갈등이 벤지를 둘러 쌓았다. 혼란스러웠다. 왜 이단이 이 곳에 다시 온 걸까? 이단은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괴물들을 미워할까? 이단은 그 때 있었던 그 일을 기억할까? 벤지는 이단을 죽일 수 없었다. 이 곳에 떨어지는 인간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도록 한다. 봉인으로 결계가 닫히고, 피가 잔뜩 묻은 벤지의 털을 쓰다듬으며 왕이 피눈물물과 함께 했던 그 말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벤지는 쏟아지는 모순과 불안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동시에 검은색의 도톰한 육구가 꿈틀거리며 인간의 손으로 탈피했다. 온 몸에 탐스럽게 기른 털은 피부가 갈라지며 그 안으로 들어가 평범한 인간이 입고 있는 옷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벤지는 이단을 죽일 수 없었다. 벤지는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던 인간의 이름을 불렀다.

 

이단?”

 

이단은 벤지를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이단의 손에는 진짜 칼이 들려져 있었다. 벤지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단이 괴물들을 죽일 수 있을까? 평범한 괴물들에게는 이미 성인의 체형을 한 이단을 막을 수 있는 힘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단이 괴물들을 죽인다고 말하면, 나는 이단을 죽일 수 있을까?

 

“벤지에. 기억 나요?”

, 괴물인가? 걱정 마. 헤칠 생각은 없어.”

무기를 들고 그런 말을 하면, 아마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이단은 오른 손에 쥐고 있는 칼을 내려보았다. 전혀 위협을 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허리를 숙여 천천히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벤지는 진정하라는 듯이 이단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른 뒤, 자신의 이름이 벤지라는 것을 소개했다. 벤지는 만에 하나 혹시, 이단이 제 이름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할까 싶었지만 이단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 없었다.

 

잠깐, 날 알고 있어?”

이단. 당신을 여태까지 기다렸어요.”

이 곳에 옛날에 온 기억이 있어.”

알아요. 내가 그 때...”

 

괴물이다!’ ‘괴물이 인간 아이를 납치했어!’ 

악몽같은 그 기억들이 등 뒤를 타고 기어 올랐다. 벤지는 입을 다물고 이단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단, 이 곳은 말 하기가 좋지 않은 곳이에요. 괜찮다면 집으로 초대해도 될까요?”

 

 

 

이 곳에는 왜 온 거예요?”

 

벤지는 다시.‘ 라는 단어를 붙이려다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을 골랐다.

 

6명의 사람이 이 지하로 떨어진 이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어. 나는 그 사람들을 찾으러 온 거고. 무엇보다 나는 이 곳에서 살아 나온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벤지는 자신이 죽이고 영혼을 빼앗은 6명의 인간을 떠올렸다.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평소에는 유약하기 짝이 없는 왕의 명령은 덤이었다. 표정이 일그러질 뻔 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이제, 내가 질문 할 차례야.”

이단...”

“30년 전에, 괴물 하나가 꽤 오래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 하나를 물고 지상에 올라왔다고 전해 들었어. 마을 사람들은 퍼져있던 흉흉한 소문이 괴물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고, 힘을 합쳐 괴물을 물리치고 지하를 봉인했다고 했지.”

 

그 날이 아직도 생생했다. 벤지는 의도적으로 이단의 눈길을 피했다. 죄책감과 그리움이 섞여 벤지의 속을 매스껍게 만들었다. 이단은 제가 하는 말에 빠져 벤지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사람은 깨어났지만 지하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어. 마을 사람들은 제 멋대로 깨어난 사람을 걱정하고 동정했지만... 하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어.”

 

이단, 이단은 이 곳에서 살기 너무 연약해요.’

원래 살던 곳에 데려다줄게요. 하지만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에요. 이단은 언제나 이 곳으로 놀러 올 수 있잖아요?’

 

네가 날 구해준 그 괴물이지?”

 

벤지는 정말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BENJIETH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벤지이단] 내재화  (0) 2016.03.05
[벤지이단] 은퇴 전 날  (0) 2016.03.01
[벤지이단] 크리스마스  (0) 2016.02.25
[벤지이단] 어리광부리는 이단  (0) 2016.02.25
[벤지이단] POD # 3  (0) 2016.02.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