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미션의 결과에는 언제나 영광스러운 승리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주체가 이단 헌트일 경우 더더욱. 미션이 얼마나 어렵다든가, 얼마나 불가능하다든가는 몇 십 년 경력의 전설적인 현장요원에게 있어서 문제 따위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정확한 문제는 이단의 나이에 있었다. IMF는 언제나 이단에게 해결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무리한 미션, 일반인이나 다른 보통 현장요원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미션을 변함없이 던져주었고, 그것은 이단이 고등학생 때, 스무 살, 서른 살. 그리고 쉰의 나이가 될 때까지. 변함없었다.

 

덕분에 이단은 미션이 끝나고 한차례씩 꼭 겪는 홍역처럼 침대에 누워 골골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이를 핑계대거나 짬밥을 내세우며 자신의 밑에 있는 요원들에게 일처리를 내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단은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이번 일도 어렵다며 걱정하는 벤지에게 어깨만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벤지는 며칠 째 똑같이 침대에 엎드려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이단을 보고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일처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두뇌회전을 보여줬으면서, IMF와 관련 된 일에서는 미련할 만큼 수용범위가 넓었다. 혹시라도 이단의 잠이 깰 세라 조용히 넥타이를 벗어 걸어놓고, 셔츠도 벗어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으려던 차에 그가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느릿하게 들어 벤지를 반겼다.

 

아직도 아파요?”

 

허리에 느껴지는 둔통을 호소한지가 벌써 이틀 전이다. 벤지는 셔츠를 벗다 말고 이단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이단은 벤지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단의 표정이 아니라, 벤지의 표정이.

 

언제 은퇴 할 거예요? 나이도 생각해야죠.”

아직 날 찾는 사람이 많잖아.”

 

고개를 드는 것이 힘든지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웅얼웅얼 대답했다. 이단은 이십 삼 층 건물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아주 살짝 허리를 삔 것 같다고 했었다. IMF에서 제공하는 직원 복지를 위한 건강검진에서는 수많은 미션으로 인해 쌓인 피로와 노화로 인한 근력 약화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라는 진단을 했다. 어찌 되었든 둘 다 벤지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걔네들이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맨날 누명 씌우고 쫓아다니기만 하지. 벤지가 망신창이가 된 이단을 보고 분노를 숨기지 않을 때면 이단은 그냥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불편하게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바로 누웠다. 이단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뻐근함에 끙, 하고 신음을 했다. 벤지는 이단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그 질문에 이단은 방금 먹은 우유 한 잔을 기억하고선 고개를 주억거렸다. 벤지는 그 어정쩡한 반응이 언제나 불만이었다. 항상 남을 위하고, 자신의 존재는 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 마냥 대답하는 것들.

 

그래서, 벤지는 조금 고민을 했다. 피로에 지친 애인을 위해 벤지 던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대신 그의 일을 해주기. 벤지는 이단과 똑같은 현장요원이었지만 이건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벤지 던이 아니라 이단 헌트로 태어나던가. 대신 사표 내주기. 헌리가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헌리뿐만 아니라 브랜트 부터 길길이 날 뛰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 외에도 해결책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대부분 시덥잖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벤지는 일을 그만둔다던가, 대신 일을 해주는 등 근본적인 것이 아닌 현실적인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단. 허리 아직도 아프댔죠?”

어제보단 많이 괜찮아졌어.”

 

그래서 찾아 낸 해결책이. 바로 마사지였다. 벤지는 셔츠를 단단히 걷어 올리며 바로 누워 자신을 쳐다보는 이단을 다시 돌려 눕혔다. 이단은 벤지의 속셈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벤지는 긴장 풀라는 듯이 이단의 어깨를 퉁퉁 쳐댔다.

 

허리 통증에 좋다고 해서요.”

 

벤지는 이단의 허리 위로 올라 타 살짝 깔고 앉았다. 궁금했던 모양인지 계속 뒤를 돌아보는 이단의 고개를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쓰다듬었다. 이단은 얌전히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나른하게 숨을 내쉬었다.

 

허리 통증이 심할 경우 어깨나 목에까지 퍼질 수 있대요.”

 

풍성한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두꺼운 목덜미에 손바닥을 올려 힘을 주었다. 이단은 피부 위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손바닥이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벤지의 손바닥은 이단의 목덜미에서부터 어깨까지 천천히 내려왔다. 꾸준한 운동 덕에 근육이 잘 잡힌 어깨가 벤지의 손 안에 만져졌다. 조금더 밑으로 내려가, 톡 튀어나온 견갑골부터 살짝 들어간 척추까지. 벤지는 손목에 힘을 실어 마사지에 집중했다. 이단의 표정이 나른하게 풀렸다.

 

시원해요?”

으응.”

 

이단은 벤지의 질문에 답하기 귀찮았던 모양인지 그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며 대답했다. 꼭 섹스가 아닌, 다른 평범한 행위에서 자신의 밑에서 물렁물렁 할 정도로 늘어져있는 이단을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벤지.”

?”

혹시, 엉덩이 만지는 것도 마사지에 포함 되어 있는 거야?”

 

. 벤지는 숨을 들이키며 이단의 엉덩이에 붙어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뜨거운 것이라도 쥔 듯이 재빨리 떼어냈다. 벤지 그 자신도 이단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었다. 정말로 의식하지 않던 일이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는 듯이 손을 등 뒤로 돌리고, 머쓱한 웃음.

 

너무 밑으로 내려갔죠?”

나쁘지는 않아.”

아니에요...”

 

벤지는 이단의 허리 위에서 내려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벤지의 마사지 덕인지, 그의 귀여운 반응 덕인지. 이단은 몇 시간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어깨와 함께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허리의 통증도 같이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벤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단 덕분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바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부끄러워?”

아니, 아니요. 그냥,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이단이 오해할까봐.”

그럴 의도 있었으면 뭐 어때서?”

그만 놀려요...”

 

결국 크게 웃고만 이단은 침대의 비어있는 공간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벤지에게 누워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에라, 모르겠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벤지는 이단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그의 옆에 누웠다.

 

은퇴는, 생각 해 볼게.”

정말요?”

 

벤지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지금까지 열심히 IMF의 부당함과 동부에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사놓았다는 등 열심히 이단을 설득했던 벤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반응에 이단은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겨우 눌러 참았다.


네 속까지 썩여가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거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목숨이 여러 개인 것 마냥 구는 이단이라도 자신의 사랑스런 애인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에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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