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팁 님의 빌런벤지이단을 보고 썼습니다.


약간 어지러울 거예요. 목소리는 한 곳에 모이지 않고 안개처럼 희뿌옇게 흩어졌다. 벤지는 초조하게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바닥에 무릎을 굽혀 이단과 눈을 마주했다. 이단은 웃옷을 벗은 채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차고 기둥에 묶여 쓰러지다시피 앉아 있었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그의 몸뚱이를 살펴 내려갔다. 다행히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반증하듯 가슴팍이 아주 느린 속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눈꺼풀은 온 세상의 중력을 혼자 다 받는 것 마냥 무거워 뜨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은 굽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벤지는 그제야 제가 한 짓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엄지손톱은 사포나 톰 따위의 날카로운 것을 가져다 긁은 것처럼 닳아 있었다. 입 안에 까끌까끌하게 남아있는 손톱 쪼가리를 침과 함께 바닥에 뱉으며 벤지는 천천히 이단에게 다가갔다.

 

이단?”

 

그가 항상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동경과 애정이 반 쯤 섞인 말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익숙한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인지 이단의 얇은 눈두덩이 아래에서 눈알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벤지는 그 미세한 움직임을 애타게 쳐다보았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멈췄다. 이단의 갈라진 입술이 효과적으로 신음을 뱉기 위해서 약하게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볼 위로 손을 뻗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상황에서, 벤지는 모로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단은 벤지의 무모한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이단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일이 끝난 후에도 끝끝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벤지는 이단을 구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단을 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벤지는 영원히 그를 내보이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볼에 닿는 차갑고 축축한 손에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톱날처럼 깎인 손톱이 이단의 턱 끝을 긁어댔다. 이단은 약 기운이 듬뿍 묻은 숨을 천천히 뱉어냈다. 벤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단은 울상인 벤지의 얼굴을 보고 안심하라는 듯이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웃어주었다.

 

으윽, 일단. 이것 좀 풀어줄래?”

 

웃어주었다. 이것은 이단의 웃음이 아니었다. 벤지는 수갑을 들어 보이며 신음하는 이단을 보고 웃어주었다. 이단은 자신이 약기운에 몸이 절어져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악 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일단, 이 곳에서 빠져나가자.

 

어딜 가요?”

 

벤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이단은 그제야 불분명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단은 벤지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무릎을 꿇다시피 앉아있는 자신의 하체를 내려 보았다. 복숭아뼈와 발뒤꿈치를 보이지 않게 가린 붕대 위로는 짙은 갈색의 피딱지가 응고되어 있었다. 이단은 천천히 무릎을 들어, 일어나기 위해 시도를 했다. 단단한 굳은살의 흔적이 박힌 발바닥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꺾였다. 이단이 고통스럽게 한숨을 뱉었음에도 벤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약을 생각보다 많이 탔나 봐요. 엄청 걱정했어요.”

벤지?”

이름 좀 그만 불러요.”

“내 질문에 대답 해.”

 

이단은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부정하듯이 몸을 바르작댔다. 단단한 손목이 수갑에 긁혀 생채기가 났다. 벤지는 이단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단은 벤지의 손이 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뜨겁고, 칼날로 표피를 긁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벤지의 손이 닿은 곳마다 타오르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냥, 근육을 살짝 자른 것 뿐이에요.”

 

분명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를 이용해 내뱉는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은 벤지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단을 위해서예요.”

제발. 장난은 그만해.”

장난이라구요?”

일단 이것 좀 풀고...”

 

벤지는 이단의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간단히 힘을 주자 주사기의 액체는 재빠르게 그의 근육 속으로 흡수되었다.

 

전 언제나 진심이었어요.”

, 망할. 이게 무슨...”

조금 졸릴 거예요.”

 

커다란 눈에는 수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다. 분노, 배신감, 불신, 절망. 눈동자에 비치는 벤지의 모습 위로 그것들이 반짝였다. 벤지는 그의 눈을 사랑했다. 애정뿐만이 아닌 모든 감정을 알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보이는 이단의 눈빛은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웠다. 벤지는 텅 비어버린 주사기를 뽑아 바닥에 던져놓고 이단의 얼굴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랑에 빠진 표정, 분노에 차오른 표정이 바로 앞으로 맞닿았다. 벤지는 이단의 뒷덜미를 강한 힘으로 붙잡아 고정시킨 뒤 입을 맞췄다. 갈라진 입술이 찢어져 핏방울이 맺혔다. 아주 작은 방울이었음에도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착각을 주었다


이단은 수마가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어깨를 비틀어 혀를 섞어오는 벤지를 떼어내려 했지만 결박 된 상태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쉬울 리가 없었다. 목덜미를 집어 누르는 손이 이단의 반항을 내려찍기라도 하듯 더 힘을 주었다. 피와 타액이 섞여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이단은 벤지의 입 속에서 쿨럭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단은 이를 세워 뱀처럼 꿈틀거리는 벤지의 혀를 깨물었다.

 

벤지가 비명을 지르며 입을 떼어냈다. 이단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진홍색의 침을 뱉었다. 벤지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벤지는 손바닥에 힘을 실어 이단의 뺨을 내리쳤다.

 

이해해요. 아직 적응을 못한 거 같아요. 그렇죠?”

 

이단은 벤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오른쪽 뺨은 얼얼하고, 공간이 뒤틀리고 몸이 공기 중으로 부유하는 것이 느껴진다. 벤지의 말대로 약효는 굉장했다. 이단은 수마를 이기기 위해 눈에 핏줄을 세우며 벤지를 쳐다보았다. 몸이 휘청이며 고정 된 수갑이 부딪혀 듣기 싫은 금속음을 크게 질러댔다.


벤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붕대가 감긴 발목 위로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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