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가 굵은 손바닥이 약 올리듯 시야를 어지럽혔다. 깊숙이 들어간 주름 잡힌 손금은 두꺼운 밧줄이 되어 목을 졸라왔다. 어둠이 몸을 짓눌렀다. 차단된 시각 속에서 촉각은 제 기능보다 훨씬 뛰어난 힘을 발휘했다. 까슬까슬한 밧줄이 점점 면적을 넓히며 목젖 위를 감싸왔다. 폐로 들어가는 산소의 양은 극심한 부족을 호소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28개의 뼈마디, 그 위를 덮는 뜨거운 근육과 감싸는 차가운 피부. 그렇게 서서히 변해갔다. 목을 감싸 쥔 손은 노예에게 낙인을 찍듯이 불타올랐고 녹아 흘러내렸다.

벤지는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 그런 이유로, 늦잠을 잤어요.”

 

벤지는 하얀 꽃이 곱게 조각칼로 새겨진 접시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 접시는 카르텔의 비밀계좌를 추적하기 위해 이단과 벤지가 스위스에 밀입국 했을 때, 잠시 들른 제네바의 주 마다 열리는 시장에서 구매 한 것이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접시에는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식기 세척기와 접시를 번갈아보던 벤지는 개수대의 물을 틀어 표면에 붙어있는 먼지들을 흘려보냈다.

 

이거, 기억나요?”

 

벤지는 마른 식기닦이 행주로 접시를 공들여 닦은 뒤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카르텔한테 쫓기는 건 기본이고, 밀입국한 게 꼬여서 국제 경찰한테도 쫓겼잖아요. 그 때.”

 

오랫동안 쓰지 않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덕분에 접시는 어제 산 것 마냥 광택을 내고 있었다.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니까요?”

 

벤지는 후라이 팬을 들어 베이컨 두 장과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 위로 조심스럽게 덜어 옮겼다.

 

, 어쨌든 이렇게 살아서 이런 접시에 아침도 챙겨 먹을 수 있고, 좋은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벤지는 나머지 접시에도 베이컨 두 장과 스크램블 에그 대신 발사믹이 뿌려진 양상추를 가득 올려놓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유리컵에 담긴 우유, 가운데 접시에 미리 덜어놓은 잘 구운 토스트 네 조각. 꽤 그럴듯한 아침식사였다.

 

그 동네 경찰한테 쫓기지만 않는다면스위스는 참 아름다운 도시일 것 같지 않아요?”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물고, 베이컨을 입에 우겨 넣었다. 마지막 말은 입 안에 들어가있는 음식을 씹는 소리에 웅얼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다. 벤지는 우유 대신 콜라를 따를 걸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입 안에 든 것을 삼켜 넘겼다.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 벤지는 가루가 잔뜩 묻은 손바닥을 털어 버린 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장자리가 새까맣게 탄 토스트 두 조각, 소스가 잔뜩 뿌려진 시들어 빠진 양상추. 말라 비틀어진 베이컨.

 

이 쪽에서 일이 다 끝나면, 스위스에 가서 사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벤지는 아무도 건들이지 않은 접시 위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일을 나오는 거야? 그런 일을 겪고도?”

“벤지는 안 좋은 일을 충분히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사건을 안 좋았던 일로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모두들 좋은 아침! 벤지는 목에 걸었던 카드 텍을 빼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루터와 그의 동료 직원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벽에 삐딱한 자세로 기대어 선 루터는 고개를 살짝 까닥여 벤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벤지의 손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 두 잔이 들은 종이박스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좀 늦었네?”

오늘 아침을 성대하게 차려 먹었거든요. 늦지 않을 수가 없었죠.”

 

벤지는 그 날 아침 악몽을 꾼 것을 말하려다, 금방 관두었다. 루터는 더 이상 벤지를 잡을 생각이 없었고, 그것은 벤지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이 오른쪽 눈썹을 크게 까닥인 벤지는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루터는 벤지의 그 얼굴에서 익숙한 그의 오랜 친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는 뒤늦게 벤지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자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벤지는 캐리어에서 커피 두 잔을 꺼냈다. 시럽을 넣지 않은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헤이즐넛 시럽 세 펌프를 넣은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 이단의 것이었다. 벤지는 데스크톱 전원을 키며 자신의 몫으로 사 온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 오늘도 별 일 없겠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벤지는 서류철 위에 한 모금도 줄지 않은 커피를 올려놓았다.

 

이봐, 벤지.”

듣고 있어요.”

 

벤지는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루터는 그것을 승낙의 표시로 알아 듣고 그의 공간으로 침입했다. 벤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벤지 그 자신조차도 그 예민한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다.

 

남은 커피, 내가 마셔도 될까?”

남았다구요?”

그래. 두 개 사왔잖아.”

남았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벤지.”

 

벤지는 아무것도 틀어놓지 않은 모니터의 백그라운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루터는 차분하게 벤지의 이름을 불렀다.


벤지.

벤지.

벤지.


이단은 제 뜻이 벤지의 고집에 가로막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이렇게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것이 사건을 해결 해 줄수 있는 마법의 열쇠 인 것처럼. 그냥 이름을 부르고 벤지와 눈을 마주했다.

 

이단 헌트는 죽었다.

 

나도 알아요.”

 

벤지는 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영원히 그 속에 묻어 나오지 않을 사람처럼. 루터가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

 

 

지금 21세기인 거, 알고 있죠?”

 

벤지는 아무도 앉지 않은 쇼파 위에 신문을 던졌다.

 

이상한데서 고집이 세단 말이에요. 이단은.”

 

전 미국의 헤드라인이 적힌 신문지는 받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 바닥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떨어졌다.

 

요즘은 패드로 뉴스 보는게 훨씬 편해요.”

 

벤지는 이단 헌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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