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요원임과 동시에 벤지 던의 완벽한 애인인 이단 헌트는, 벤지의 생활반경 하나하나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대처법 따위를 한 손에 꿰고 있었다. 그의 벤지 대 백과사전에 따르면, 벤지의 상태는 심각한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묻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는 날이 잦으며, 무엇보다 온 얼굴에 주름을 한가득 만들고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 벌써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보였다. 이단은 이렇게 벤지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방아쇠를 당겼을 때의 묵직함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았다.

이단은 어디 갔지?

괜히 현장요원이 된 건 아닐까?

글락의 무거운 반동이 어깨 위로 진동했다. 그리고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사라졌다.

벤지는 관통하는 느낌과 함께 자신이 뒤로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통수에 차가운 전선이 얽혀 들어갔다. 끈적한 점도의 피가 제 주변을 둘러쌌을 때, 벤지는 이단의 목소리를 듣고 끔찍한 악몽에서 반쯤 깨어날 수 있었다. “이단?” 흐릿한 초점을 고정시키려 노력하며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생긴 얼굴이 벤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벤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봐요, 현장요원씨. 잠귀가 너무 어두운거 아니야?”

벤지는 아직 꿈속이었다. 이단은 그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벤지는 손을 들어 이단의 얼굴을 더듬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꿈은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 있지 않았다. 벤지는 꿈에서 깨어났다. 다시 한 번 제 눈앞에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 왔어요?”

방금. 삼십 분. 아니, 한 시간 정도 전쯤?”

한 시간이요?”

잘 자고 있어서 깨우기 좀 그랬어.”

벤지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커튼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하기에는 어려웠다. 벤지는 시간을 물어보려다 관두었다. 시간이 몇 시던 무슨 상관이람.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대신 이단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방 안은 바로 눈앞의 것도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지만 이단의 눈알은 여전히 빛났다. 그 눈은 벤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생을 계속 할 것처럼.

무슨 일 있었어?”

일이요? 평범하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아니면 가끔 일하고.”

너한테 일어난 일 말이야.”

바보 같아서 말 안 할래요.”

있었구나.”

일이야 맨날 있죠.”

벤지.”

의미 없는 말꼬리 잡기만 여러 번 반복할 때 쯤, 이단이 그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추며 벤지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벤지는 불만에 가득 찬 청소년이 으레 그러듯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진짜 바보 같아서 그래요. 분명 놀릴 걸요. 아니면 IMF 전체에 소문이 다 나던가.”

벤지. 난 너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어.”

동료로서요?”

아주 잠깐이지만 머뭇거리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애인으로서.”

그렇담 말 할 수 있죠.”

차단 된 시야 덕분에 모든 소리는 민감하게 들렸다. 말을 잇기 전 긴장에 침을 삼키는 소리, 이부자락이 손끝에 스치는 소리, 불안감에 손바닥이 맞닿아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두 개의 심장이 뛰는 소리. 벤지는 어둠에 적응되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눈커풀을 내려버렸다. 차라리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가 계속 생각나요.”

거의 말을 던지듯이 뱉었다.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진 말은 예상보다 손 쉬웠다. 생각보다 바보 같지도 않은데? 벤지의 맥박은 백 미터 달리기를 방금 완주한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아기의 투정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었겠죠? 이름도 있었을 게 분명하고요. 이미 죽었으니까 소용없겠지만.”

벤지.”

난 그 때 절박했어요. 이단을 만나기 위해서요. 현장요원 자격을 따면 모든 게 이루어질 줄 알았죠. 물론 사람을 죽이는 건 빼구요.”

벤지는 목마름을 느꼈다.

무엇보다, 두 번째로 죽였던 사람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나요.”

이단은 말이 없었다. 벤지는 다시 한 번 방 안이 어두운 것에 대하여 감사를 느꼈다. 축 처진 팔뚝을 잡아 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벤지, 모든 일에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어떻게 부담을 안 가질 수 있겠어요? 난 이단과 같은 팀이라구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그 사람도 그랬겠죠. 물론 실패했지만.”

벤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제 목소리에 놀란 벤지는 짧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화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전혀 몰랐어.”

바보 같죠?”

벤지. 나도 팀을 잃었을 때가 있었어. 아직도 가끔 그런 악몽을 꿔. 동료들이 모두 죽고, IMF에서는 나를 쫓고 모두가 날 안 믿어주는 그런 꿈을.”

이단을 알기 전, 벤지는 읽었던 서류 뭉텅이를 떠올렸다. IMF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이단 헌트와 관련된 사건 파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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