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풍경 속에서 빛나는 건 눈동자 단 두 개였다. 벤지는 기도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액체에 입 밖으로 공기방울을 빠끔이며 그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벤지의 눈에 비친 눈동자는 깜빡이지 않았다. 그 자는 자신의 호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제 눈에 비친 무력한 어린아이 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벤지는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 잊어버렸다. 그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한낱 어린아이가 그 얼굴을 묘사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선이 굵은 얼굴과 목에 칼집처럼 난 아가미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위 속에 쏟아 부어지는 짭짤한 바닷물의 맛은 그가 처한 현실을 잔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손끝이 저려왔다. 벤지의 창백한 손가락은 붙잡을 것도 없이 바다 속을 방황했다.


그가 뻗은 손에 허리를 잡힌 것은 한순간이었다. 벤지는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도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뇌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벤지는 자신이 본 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알 수 없었다.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종이자락처럼 휘날리는 몸뚱아리는 쉽게 수면으로 떠올랐다. 아가미가 달린 인간은 조심스럽게 벤지를 해변가 위로 끌어 올렸다. 가슴께를 간지럽히는 손길에 벤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벤지는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걱정스러운 사람들 곁에 둘러쌓인 후였다. 그 후로는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일어나.”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른쪽 뺨에 묻은 침을 대충 손바닥으로 밀어 닦으며 잠이 덜 깬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벤지는 교수가 나간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두터운 해양생물학 전공 책을 덮으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팔 한쪽을 기괴한 모양으로 꺾어 잠든 탓인지 어깨가 뻐근했다. 벤지는 삐딱하게 서있는 불만스러운 표정의 브랜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안 깨워준 거야?”

아무도?”

강의 시간에 말이야.”

너랑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이 학교 내에 없을걸.”


맞는 말이었다. 벤지는 훌륭한 학생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는 뒤에서 괴짜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는 했다. 벤지가 그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입학 초 교수와 벌였던 논쟁과 크게 관련이 있었다.


이 곳은 실존하는 학문을 배우는 곳입니다. 당신의 그 판타지적인 요소를 충족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 때 벤지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저는 인어를 실제로 봤는걸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벤지는 멍청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 것도 얻은 것은 없었다. 해양생물과 인간사를 가르치고 있는 노교수는 옹졸한 인간이었고, 자신의 강의를 우습게 보는 벤지 던과 같은 학생을 끝까지 괴롭히는 재주가 있었다. 그 뒤로는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벤지의 머릿속에는 교수의 비웃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몇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또렷했다.


아무튼, 오늘도 바다에 나갈 거야?”


브랜트는 잔뜩 일그러진 벤지의 표정을 보고 화제를 바꿨다. 드디어 벤지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너도 오고 싶으면 와도 돼.”

정중히 거절하지.”


드디어 정신을 차린 벤지는 두꺼운 천으로 된 가방에 책을 쑤셔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긋지긋한 강의실을 탈출 할 때였다. 벤지는 입학 한 이후로 몇 년째 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이 익사할 뻔 했던 바다를 찾았고, 일부러 그 근처의 학교에 입학했다. 모두 그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몇 년째 수확은 없지만 벤지는 계속해서 시도했다. 벤지는 그가 자신을 구해줬을 때처럼 다시 나타나기를 바랐다.


벤지는 짭짤한 냄새를 크게 들이마시며 가방을 고쳐 맸다. 바다는 벤지의 고향과 같았다. 신발 밑창에 밟히는 모래의 감촉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았다. 벤지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를 발견 못할 자신을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바다로 가는 것은 단순한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와 다시 만나지 못할 걸 알고 있었지만 항상 바다로 발걸음을 향하는 자신을 막을 길은 없었다.


파도가 바로 앞으로 닿는 곳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실존하지 않는 생물을 찾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뭘까. 그 때 날 왜 구해준 걸까. 아직도 살아 있을까.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대답이 돌아올 곳은 없었다. 그렇게 잠자코 앉아있었다.


바닥이 깊은 바다에서 머리통 하나가 튀어나온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벤지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물체를 쳐다보았다. 다시 눈가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멀리서도 알아볼 것 같은, 꿈속의 얼굴. 죽기 전에 봤던 그 얼굴. 벤지는 그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인어는 존재했다. 그 사실을 입증 가능하다는 것은 벤지에게 기쁨이 되지 못했다. 인어가 존재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났다.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위협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벤지는 죽지 않았다. 그가 벤지를 구해줬기에.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맑은 녹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 속이 아닌 대기 위에 떠오른 그의 얼굴은 그 때와 똑같았으며, 또 달랐다.


그는 입술을 천천히 뻐끔거렸다. 보통 물고기들이 그렇듯이, 소리는 나지 않았다. 벤지는 천천히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옷이 젖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다 위로 두 개의 머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는 벤지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에 벤지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벤지를 바다 아래로 밀어 넣었다. 벤지는 반항하지 않았다. 천천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벤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벤지의 눈앞에 있었다.


벤지 던.”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벤지의 대답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는 웃으며 벤지의 양 뺨을 쓰다듬었다.


날 계속 찾아왔지?”


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좋을텐데.”


이단은 벤지의 어깨를 놔주었다. 벤지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폐는 급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벤지는 헐떡이며 그의 손이 올라가있던 어깨를 매만졌다. 꿈이 아니었다. 잔뜩 젖은 머리칼을 한 벤지가 다시 바다 속으로 잠수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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