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예상답안은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마스크 쓸 수 있는 거예요?”


벤지는 양 뺨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환호성을 질렀고, 이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타깝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 마스크는 쓸 수 없어. 벤지는 서글픈 눈으로 이단을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똑같았지만.

이번 미션은 아주 간단했다. 라스베가스 중심부에 있는 휘황찬란한 럭키 38 카지노의 보스를 대면하는 것, 그리고 그에게 아주 작은 생체 도청기를 삽입하는 것. 여기서 드는 의문은 단 한가지다. 주로 이단 헌트나 브랜트의 백업을 맡는 벤지가 왜 선두에 나서는 것이지? 이에 대한 해답도 미션만큼이나 간단했다. 이단은 럭키 38 카지노에서 이미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사였고, 흔해빠진 마스크는 그들의 보안 시스템으로 들키는 가장 첫 번째 방어막이었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들어진 총보다 먼저. 브랜트는 헌리의 일을 돕느라 얼굴을 비추지 못한 지 몇 주 째였고, 덕분에 그 일은 자연스럽게 벤지에게 넘어갔다.


다시 상황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마스크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단은 곤란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마스크는 쓸 수 없지만, 대신 재밌는 건 할 수 있지.”


둘 사이의 중간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것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포커 카드였다. 벤지는 이단이 건네는 카드를 받아 들어 위 아래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단은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무슨 트릭이 숨겨져 있는 카드에요?”

트릭?”

무조건 이기게 만드는 카드라던가. 아니면 모서리에 독이 묻어서... 이건 좀 심했죠?”

영화 같고 멋있네, 벤지. 안타깝게도 어제 저녁에 월 마트에서 사온 평범한 카드야. 같이 장 봤는데 기억 안 나?”

이제 기억나요.”


벤지의 손에 들려있던 카드는 다시 이단의 손으로 옮겨갔다. 이단은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가볍게 섞이는 카드는 이단의 손에 밀착된 것 마냥 손쉽게 합쳐졌다. 벤지는 집중해서 그 행동을 관찰했다. 마디가 굵고 이곳저곳에 칼로 베인 흉터나 화상 따위가 가득이었다. 더해서 굳은살까지 박혀있는 손은 카드와 어울리지 않았다. 몇몇 개의 상처는 출처를 알 수 있었고, 대부분의 상처는 벤지가 이단을 알기도 전에 그가 얻은 상처였다.


벤지?”


벤지의 표정이 약간 변화한 것을 알고는 이단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벤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집중해야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은 다 섞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과 벤지의 앞에 카드 두 장을 나누어주었다. “기본적인 룰은 알지?”


당연하죠.”


벤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게임은 진행됐다.


목표는 단 한가지야. 너는 게임에서 무조건 이겨야해.”

가능해요?”

당연하지.”

어떻게?”


이단은 잘생긴 얼굴로 벤지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지었다. 벤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안 바빴던 탓에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벤지는 마음 같아서 미션이고 뭐고 다 때려치운 후에 이단과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지만, 그럴만한 배짱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룰은 단 두 가지야. 커다란 행운과.”


이단은 테이블 가운데에 놓아져 있는 카드 세 장을 한꺼번에 펼쳤다. 하트 A, K 그리고 Q. 이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 두 장을 벤지의 눈앞에 놓았다. 테이블 앞에 놓인 것은 하트 J10. 로얄 플러시. 벤지는 놀란 눈으로 이단과 카드를 번갈아 보았다.


장난하는 거죠?”


이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은 손기술.”


이단은 어디서 뺀 것인지도 모를 스페이드 A와 하트 7을 벤지에게 건넸다.


상대방을 잘 보고 있어야지.”

걸리면 어쩌려구요?”

걸리면? 그러면 걸리지 말아야지.”

, 아주 간단한 방법이네요. 이거 실패할 것 같아요. 분명 걸려서 카지노 밑에 있는 비밀스러운 감옥에 갇혀서 여생을 보내고 말 걸요. 아니면 죽던가.

꽤 간단한 게임이야. 그 곳의 보스는 이 게임을 가장 좋아하거든. 너가 연속으로 풀하우스를 터트리면 바로 널 부를 거고, 너는 준비 된 작은 기계로 보스에게 칩을 삽입하면 돼. 모기한테 물린 것 같을걸.”

이단 헌트라면 가능하지만, 벤지 던은 불가능해요. 손기술은 연습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단처럼 타고난 도박사는 아닌 걸요. 운도 없구요.”

운이 없다고?”


벤지의 태도는 꽤 단호했다.


저번에 루터랑 술내기로 인디언 포커를 했는데 제 카드가 어떻게 나왔는줄 알아요? 카드에 5보다 큰 숫자가 안 보이더라구요.”

내가 이 손장난을 누구한테 배운지 알아?”

설마. 오, 설마. 아니죠?”

루터야.”

, 젠장. 내 돈.”

루터의 손장난을 모른 게 패배의 한 수였지.”


끝이 아니었다. 벤지는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이 겪은 나쁜 일들을 회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 그저께 걷다가 껌도 밟았는데.”

벤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죄 없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손은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덮어져있는 카드를 펼쳐보았다. 스페이드 A, 하트 3 그리고 하트5. 벤지는 손에서 카드를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봐요. 아무 것도 아니네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넌 충분히 잘 해낼수 있어.”

벤지는 이단이 아니라 벤지라구요. 벤지 던.”

네가 왜 운이 안 좋다고 생각해?”


이단은 정말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벤지를 바라보는 것이 벤지의 속마음조차 읽을 것 같았다. 벤지는 이단의 눈을 같이 쳐다보다가, 꼬리를 내리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카드더미 위에 안착했다.


네 앞에 있는 사람을 봐. 그리고 그게 누군가 생각해봐.”

이단 헌트.”

정말 네가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드디어 벤지는 이단의 뜻을 알아 챌 수 있었다. IMF의 전설적인 요원, 잘생긴 미소와 굵은 눈썹이 눈에 띄는 요원. 벤지 던이 현재 사귀고 있는, 10년간의 짝사랑 끝에 벤지 던의 애인이 된 이단 헌트. 그의 의도를 알자마자 벤지는 얼굴 위로 올라오는 열기를 감출 수 없었다. 적어도 벤지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문제였다.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네 이야기니까 나오는 거지.”

하지만...”

다 같은 규칙으로 싸우는 거야. 너나, 나나.”


벤지는 다시 카드를 집어 들고 이단이 했던 것처럼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단은 벤지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드 두 장을 빼고, 세 장을 펼친다.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벤지를 상상했다. 잘 다듬은 수염과,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검정색 뿔테 안경. 여유로운 표정이나 걸음걸이까지. 이단의 머리 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은 미션 하나를 줄게.”


벤지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벤지는 행동을 멈추고 이단을 쳐다보았다.


이 미션에서 성공해. 그리고 나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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