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은 동료와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가 평생토록 가지고 있는 직업적 신념은 아무것도 모르던 19살의 이단 헌트가 IMF에 입사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단순한 직장 동료,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한 체 서로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그는 여태 겪었던 사건을 토대로 이단 헌트를 만들어 나갔고, 적어도 그 이단 헌트는 무슨 사건이 없는 한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비해서 벤지는 유난히 동료를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동료들은 그에게 자신의 간과 쓸개를 빼 주는 인간상은 아니었지만, 벤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벤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한에서 말이다. 벤지는 이단을 믿었고, IMF에서 쫓기고 있는 그를 위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도왔다. 벤지에게 있어서 이단은 영웅이었다. 영웅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공주를 구출했고, 들리지 않는 팡파레 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와 벤지를 포함한 수많은 조력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애초부터 이단은 유아독존 형 인간이었다. 자신의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닦아 줄 조력자가 필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단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에는 몇 가지의 뒷배경이 있었다. IMF에 갓 입사 했을 때, 이단이 가장 처음으로 맡은 미션에서조차 이단은 훌륭한 요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단이 유일하게 믿었던 두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었던 가 있었다. 훌륭한 요원이었던. 불행히도 그 말은 과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었던 는 언제나 첫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 되기를 원했고, 이단이 의 욕심 섞인 야망을 눈치 채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단은 끝까지 를 믿었다. 그리고 끝에 도달해서야 이단은 를 믿었던 자신을 후회했다.


벤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두를 좋아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두도 벤지를 좋아했다. 벤지는 항상 밝은 인간이었고, 단 한 번도 남을 의심하거나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그를 배신하거나 시샘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이단은 그런 벤지를 알고 있었다. 벤지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이단은 철저하게 벤지를 이용했다. 이단은 벤지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단은 망설이지 않고 벤지에게 전화를 했다. “줄리아 핸드폰의 위치 추적을 해줘.” 몇 가지의 다급한 물음이 있었지만 이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낙천적인 중얼거림 끝에 벤지는 이단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이단이 유능한 요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은 괜한 운이나 요행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피와 살 속에는 기민한 감각이 흐르고 있었다. 벤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눈치 채는 것에는 별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사랑은 가장 이용하기 쉬운 감정 중 하나였다. 벤지는 사랑이라는 구실 하나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용서 할 것이고, 뛰어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었다.


이단이 실종된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사실, 모스크바에 갇혀있는 이단 헌트를 빼내오는 데 벤지는 적합한 요원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벤지는 서류를 조작했다.

 

이번에 현장요원 시험에 합격했거든요.”

 

이단은 그 말투에서 당신 때문에 미국에서 쫓겨날 지도 몰라요!” 라고 했던 휴대폰 잡음과 섞여 들려왔던 벤지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단은 자신이 벤지에게 내렸던 평가보다 더 벤지는 위험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리드미컬한 말투에 이단은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벤지를 쳐다보는 방법밖에 몰랐다. 누군가를 이용하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닌 벤지 일지도 모른다.


벤지는 서툴렀다. 모든 면에서. 하지만 그만큼 일을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한 가지의 실수를 통해 열 몇 가지의 요령을 배웠고, 새로운 것을 익혔다. 이단은 점점 벤지가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단은 흥미로운 사실을 눈치 챘다. 무언가가 들어맞지 않았다. 모스크바 감옥의 경비는 삼엄했고, 그 곳에 갇힌 요원은 그 누구도 아닌 이단 헌트였다. 그 이단을 구하기 위해 IMF에서 보낸 두 명의 요원은 이단이 알지도 못하는 초짜들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며 후보에 올랐던 요원들의 명단을 살펴보았고, 그의 눈동자는 벤지 던의 기록에서 멈추었다.


[잠깐 아래에서 볼까?] 사적인 부름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메시지를 받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벤지, 예전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상한 걸 눈치 챘어.”

 

이단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벤지에게 있어서 불행한 일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이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 벤지는 이단의 질문에 그대로 굳고 말았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바보 같은 벤지 던. 질문에 바로 되묻는 것은 그의 최대 실수였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눈치를 계속해서 보았다. 세상이 끝날 때 까지.


다행히, 세상이 끝나기 전에 이단은 벤지의 의식을 깨웠다.


?”


이단은 벤지에게 이유를 묻고 있었다. 이단은 벤지를 책잡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희생할 필요가 있는지, 왜 자신이 앞서서 희생을 하는 것인지. 이단은 벤지의 의도가 궁금했다. 훌륭한 요원이 되고 싶어서? 이단 헌트와 그 옆에 나란히 서고 싶어서?


? 라니요...”


벤지는 두 손을 모으고 우물쭈물 거렸다. 혼이 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혼나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벤지는 항상 이단 앞에서면 자신이 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벤지가 느끼기에 이단은 전지전능한 어른이었다.


시민권이 박탈당하는 것이 겁나지도 않았던 거야?”


이단은 벤지와 나눴던 과거의 대화를 떠올렸다. 벤지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이단을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나를 구하러 올 이유가 있었던 거야?”

이유요?”


뒤늦게 벤지는 자신이 이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단은 자신과 똑같은 요원이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IMF 특성 상 서류를 조작한 것 따위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벤지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단 헌트는 벤지 던을 어떻게 생각하지?


당신은 그 때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잖아요.”


의도치 않았지만 벤지의 목구멍에서 힐난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냥, 당신을 구하러 가고 싶었어요. 그때처럼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벤지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이단은 그 때 처음으로 요원 벤지 던의 존재를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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