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리먼 씰 이요? 마약을 밀수한다던?”
배리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배리먼 씰.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확실히 맞았다. 하지만 그 뒤에 덧붙인 쓸데없는, 쓸데없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정보에는 허허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제자도 그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 번이나 예수를 부정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배리의 마약밀수 사실은 예수의 업적에 비교할 바도,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배리는 그랬다.
“배리 씰은 맞습니다만. 마약은 처음 듣는 소린데…….”
“뭐. 내숭은. 나는 찰리 울프요.”
기분이 상한 배리는 눈앞에 있는 사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빠르게 확인했다. 그는 조금 전에 뱉은 말로인해 정체불명의 사나이에서 무례한 사나이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빈약한 머리털에, 웃긴 콧수염.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는 CIA라고 하기엔 모를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킬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을 죽이기 전에 통성명을 하는 킬러라? 거기다 이름이…… 울프? 늑대라니? 유치한 십 대도 짓지 않을 예명이었다.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듣도 보도 못한 요소들이었다. 이미 찰리는 데스크 앞의 접대용 쇼파에 눕다시피 앉아 방을 휘휘 둘러보는 중이었다. 배리는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봐요. 울프씨.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말고 아침에 뵙는 걸로 하죠.”
“말 잘했네. 당신은 나를 모르지. 나는 당신을 아주 잘 알고. 뒷구멍으로 마약을 밀수하는 것까지 알 정도니까 말이야.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아온 것도 아니지. 지금은 밤이고, 경호원인지, 시장잡배들인지 모를 애들은 잠시 기절만 시켜뒀어. 출입은 죽어도 안 된다길래. 이게 아직도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
배리는 뒷목이 서늘했다. “날 죽이러 온 겁니까?”
찰리는 배리의 말이 우습다는듯 크게 웃었다. 배리가 뱉은 말의 무게와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낄낄 웃던 찰리는 배리의 얼굴이 요상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곤 웃음을 뚝 멈췄다. 찰리는 품속에서 돈 봉투를 꺼내 배리에게 건넸다. 보통 킬러는 자신이 죽일 사람에게 돈 따위를 건네지 않는다.
“아니. 부탁이 있어서.”
“당신은 평소에 부탁을 그렇게 하는 모양이군요.”
“암. 약간의 겁을 주면 더 잘 알아듣는 법이잖아? 어때?”
배리는 찰리에게서 돈이 들은 봉투의 두께를 가늠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일을 하며 늘은 건 배짱밖에 없죠. 원하는 게 뭡니까?”
찰리는 품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중요한 내용물은 그 안에 들은 작은 지도 하나였다. 꾸깃꾸깃하게 접힌 그것을 펼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찰리는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배리를 쳐다보았다.
“나를 이 곳으로 데려다줘.”
“저보고 사람을 밀수하라는 겁니까?”
찰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밤중에 찾아와 동료 셋을 기절시키고 흉흉한 눈빛으로 협박을 한 사람이 하지 않을 법한 부탁이었다. 배리는 당황했다. 적어도 최악의 경우,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매달 5%의 수익을 바쳐라. 아니면 메데인을 배신하라. 등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상상했었다. 허무맹랑한 부탁이 나오지 않음에 안심한 배리는 찰리의 손가락 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익숙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이 곳은 배리가 코카인을 운반했던 곳이기도 했다. 땅이라면 모르지만 하늘이라면 배리의 손바닥 안이었다. 배리는 생각보다 쉬운 그의 ‘부탁’에 안도의 한숨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좋아요. 울프. 내일 아침 당장 출발하죠. 방은 남는 것이 있을 테니 잠은 거기서 자면 됩니다.”
“안 돼.”
“네?”
찰리는 지도를 다시 수첩에 접어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출발하지?”
찰리가 간과한 사실이 딱 하나 있었다. 지금 날씨에 비행기를 몰았다가는 둘 다 죽은 목숨에 가까웠다. 아무리 비행으로 날고 긴다 하는 배리라도 자연은 이길 수 없는 법이었다. 배리는 바람에 덜컹이는 창문을 힐긋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해요. 날씨, 새가 없는 하늘, 안정적인 기류.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세 가지가 다 없죠. 죽고 싶으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돼요.”
“무슨 소리야? 우리는 죽지도 않을 거고. 출발도 지금 할 수 있어.”
“울프. 이건 억지를 부려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찾아 온 이유가 따로 있을 거라 생각해? 최고의 파일럿이라며. 이름값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배리는 옛날에 있었던 파블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최고의 파일럿이라며?’ 그랬다. 카르텔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불가능한 일을 성공 시켜야 됐을 때였다. 그때도 이랬다. 욱하는 성질은 어디가지 않는다. 자존심을 살살 긁는 그 말을 들은 배리는 팔을 걷어붙이고 비행은커녕 활강도 어려운 짧은 활주로를 달려 성공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좋아요! 가죠. 지금 출발합시다. 무사히 모셔다드리죠.”
운전대를 잡은 배리는 시동을 걸며 그 말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덜컹이는 좌석과 흔들리는 십자가 목걸이가 그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싶었다. 찰리는 불안한 모습의 배리와 달리 태평했다. “안에서 담배 피면 안 되나?” 배리는 찰리의 말을 무시하다 그가 담배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말렸다.
“안 됩니다.”
“젠장할.”
“적어도 꼬박 하루는 걸릴 겁니다.”
기체가 극심하게 불안정한 것 치고는 비행은 순조로웠다. 배리는 창밖과 운전대를 번갈아보다 찰리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 그렇지. 설명하면 우리의 신뢰 관계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겠지?”
배리는 그렇게 거창한 의미로 말 한 건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찰리는 말을 고르는 듯 눈썹을 찡그리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보는 게 아무래도 믿기 쉽겠지. 내 사정을 알기 싫어도 알게 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파일럿 양반.”
안정된 기류를 탔을 땐 이미 찰리는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있었고, 아슬아슬한 비행에 스트레치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던 배리 또한 피곤에 찌든지 오래였다. 이미 반쯤 잠든 모양새였다. 배리는 비행을 자동으로 설정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 빠져드는 것은 쉬웠다.
“이봐. 배리먼 씰.”
배리는 찰리의 다급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일어났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캄캄한 하늘에 가늘게 뜬 눈으로 급하게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히 기류는 안정적이었다. 기체에 문제도 없었다. 배리는 기내에 쾌쾌한 냄새가 뱄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담배 피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눈 때지 말고 잘 보라고. 내가 당신을 고용해 비행기를 타야 됐던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
찰리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배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마음대로 하세요. 설명을 해준다고 해놓고 보라고 하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지만……. 배리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찰리를 응시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멀리서 구름 위로 커다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찰리의 등 뒤로 밝게 빛나는 햇빛이 비추었다.
그는 늑대로 변했다.
“으악!”
한순간이었다. 좁은 좌석이 꽉 찰 정도로 자리를 차지한 늑대는 아주 새까맣고 풍성한 털을 가지고 있었다. 배리는 놀라 비명을 지르다 팔꿈치로 운전대를 돌려버렸다. 순간 중심을 잃은 기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늑대가 깨갱이며 배리가 앉아있는 좌석으로 기대왔다. 배리는 오소소 돋는 소름을 무시하기 위해 노력하며 황급히 운전대를 붙잡았다. 다시 중심을 잡자 늑대는 배리를 흘겨보며 자신의 좌석에 얌전히 앉았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늑대는 무서운 눈길로 배리를 쳐다보기만 할뿐 공격을 할 의사는 없어보였다.
“말은 알아 듣는 겁니까?”
배리는 ‘늑대’가 찰리 울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그 생명체로 변했으니까. 아무리 해가 뜨던 순간 눈이 부셔서 일어난 착각이라 할지라도 사실에서 눈을 돌릴 순 없었다. 배리는 늑대에게 말을 거는 자신의 모습이 멍청해보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중얼중얼 말을 계속 이어갔다.
“사람으로 돌아오긴 돌아오는 거예요?”
늑대는 배리의 질문을 알아 듣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입맛을 다시며 배리를 쳐다보았다. 배리는 묵묵히 비행을 하는 것을 택했다.
아슬아슬하게 지속되던 비행은 해가 지고 나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찰리는 날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다시 인간으로 변했다. 배리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손으로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다. 배리는 찰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후에도 한참이나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거야.”
뒤이어 좌석시트에 돈이 들은 봉투가 던지듯 놓여졌다. 배리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지만 그는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