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두 달 만에 찾아 온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폭탄 테러, 영국 총리에게 들이닥친 암살 위협, 죽은 줄 알았던 어디어디 나라의 모 요원이 찾아와 IMF의 대갈통에 총구를 들이대는 일. 이 중 무엇에도 해당하는 일 없이 아주 평화롭고 조용했다. , 그니까.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날 뭐하지. 프링글스 통 여러 개와 빈 코카콜라 페트병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책상위에 지겨움이 가득 들어 찬 머리를 올려놓으며, 벤지는 눈알을 굴렸다. 그리곤 갑작스레 머리를 울려오는 진동에 번뜩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핸드폰, 핸드폰을 어디다 놓았더라. 소리는 가까이 들려왔지만 쉽게 보이지 않았다. 물건들을 하나씩 짚으며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노력했다. 핸드폰은 어니언 맛 프링글스 통 안에 있었다. 통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어 과자 부스러기와 함께 핸드폰을 꺼냈다. 어두컴컴하게 커텐이 쳐진 방 안에서 액정은 이단 헌트의 이름을 띄우고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이단? 벤지는 핸드폰을 들어 버튼을 누른 뒤 물었다.

 

   그래, 벤지. 나야. 잠깐 여기로 올 수 있어?”

   어디?”

   내 집 말이야.”

   , 그래. 근데 혹시나 해서 물어 보는거야. 지금 총으로 위협 받고 있거나, 뭐 그런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

   집이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어. 일단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이단의 집과 벤지의 집은 가까웠다. 연애를 시작 한 이후 이단이 벤지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제안 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고 싶었던 벤지는 그 제안을 받을 때 마다 거절했고, 몇 주 동안이나 양보를 하지 않고 으르렁 거리던 둘은 마지막 협상을 통해 벤지가 이단의 집 근처에 이사를 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벤지는 이단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고, 외투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섰다. . 문을 열자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에 벤지는 잔뜩 찡그렸다. 찡그린 눈 사이로 벌써 이단의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저번 미션에서는 서로 다른 팀에 배정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안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진 건 아니겠지. 벤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웃겨 푸흐흐 웃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잠시 후 이단이 문을 열고 자신과 눈을 마주했을 때, 벤지는 저도 모르게. , 젠장. 걱정이 현실이었구만. 이단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벤지가 기억하고 있던 이단의 집은 언제 가도 적응되지 않는 장소였다. 집에 붙어있는 편이 아닌 이단의 집은 항상 깔끔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같았다. 하지만 지금 벤지의 눈 앞에 보이는 이단의 집 안은 커다란 상자와, 복잡하게 얽힌 케이블들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벤지는 눈을 꿈뻑이며 집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기계들이었다. 곧 정체를 파악한 벤지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뒤에 있는 이단을 돌아보았다. 이단은 벤지의 눈을 살살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모니터 세 개에, 풀 셋 레이싱 세트... 저건 또 뭐야? 아니, 이게 왜 집에 있는 건데?”

   취미를 가져보려 노력했지. 그리고 보다시피 좀 어려움이 있었어.”

   무슨?”

   생각보다 케이블들을 딱 맞는 자리에 연결 하는게 어렵더라구.”

 

   맙소사. 너 진짜 이단 맞아? 벤지는 그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눈앞에 있는 이단이 정말로 이단 헌트가 맞는지 확인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찢는 것 보다는 연인들이 주로 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벤지는 이단의 볼에 손바닥을 대고 그대로 끌어와 입을 맞췄다. 쪽 쪽 혀를 제자리에 가만히 둔 채 짧은 버드키스가 이어졌다. 벤지는 흠. 하고 숨을 내뱉고 볼을 긁적였다.

 

   그래, 케이블 선 좀 연결해달라고 연락 한 거다 이거지?”

   네 얼굴도 보고싶고.”

 

   이단의 능청스러운 말에 벤지는 으으, 짧은 비명을 지르고 잡다한 선이 엉켜있는 공간으로 가 주저앉았다. , 일단 이 악마같은 선들 부터 어떻게 좀 해보자. 이단은 벤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벤지의 옆에 앉아 선들을 펼쳐 정리 하는 것을 거들었다. 물론 그 일은 아주 쉽고, 금방 끝났다. 중간중간에 이거 그냥 자르면 안 돼? 이단이 벤지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지만 벤지는 대답 대신 이단을 힐끗 보고 말았다. 이단은 그 벤지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그 이후로 벤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이단은 쇼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결국 벤지 혼자 선 정리를 마치고 연결도 끝냈다. 벤지가 집중하던 얼굴을 돌려 이단을 보았을 때에는 이단은 쇼파에 다리를 피고 누워 반쯤 펼친 책을 얼굴에 엎어놓은 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벤지는 구부렸던 허리를 피고 뻐근했던 어깨를 반대쪽 손으로 주물렀다. 이걸 어쩌나. 벤지는 이단을 깨우는 대신 이단의 머리가 눕혀진 쇼파 위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이단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다리 위로 올려 놓았다. 고른 숨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왔다. 벤지. 책 아래로 벤지를 부르는 이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벤지는 대답하지 않고 이단의 얼굴 위에 올려진 책 등을 내려다보았다.

 

   벤지. 나랑 같이 살자.”

   그 얘기는 끝난 거 아니었어?”

   너랑 같이 살고싶어.”

 

   나랑 같이 살기 싫어? 벤지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자 이단은 얼굴 위를 덮고 있던 책을 접어 옆으로 치운 뒤 일어나 앉았다. 이단은 집요하게 눈을 마주쳐왔고 벤지는 그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이단은 벤지의 어깨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너와 내가 같이 일을 끝내고 같은 집에 돌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벤지.”

 

   벤지는 목덜미에 불어오는 숨이 무척 간지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벤지는 이단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이나 겁이 많았다. 이단의 제안을 계속해서 거절했던 이유도 그 깊은 무의식중에서 기반한 것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눈을 마주 할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자신을 덮쳐올 수많은 걱정들을 벤지는 견뎌낼 수가 없었다. 젠장, 벤지는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납치도 생각해 봤는데, 역시 회유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것 같더라구.”

   아하, 이 상황이 드디어 이해가 가네.”

   난 지금 진지해, 벤지. 왜 나랑 살기 싫다는 거야?”

 

   그거야... 몇 가지의 이유가 벤지의 목구멍 안에서 맴돌았다. 벤지의 입이 달싹이고 이단의 미간이 집중하고 있다는 듯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벤지는 결국 말하지 못했다. 다가온 이단의 어깨를 밀치고 양 손을 들어 고개를 저었다.

 

   , 못 말해. .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좋아, 벤지. 제법 현장요원 다운데, 아쉽게도 상대는 이단 헌트라구.”

   몰라, 난 너의 부탁을 들어줬어. 이제 그만 가볼게. 안녕 이단. 일 생기면 보자.”

 

   벤지는 허둥지둥 이단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단은 벤지가 문을 닫고 완벽히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단은 이 문제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 느꼈고, 그렇다면 그에게는 단 한가지의 해결방법 밖에 없었다. 이따 밤에 보자, 벤지. 입술을 잘근 물고 이단은 몇 가지 물건들을 집어 준비했다.

 

 

 

   일어나 벤지, 벤지. 벤자민 던.”

 

   , 벤지는 갑자기 밝아져 온 방 안에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들고 목소리의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단? 분명 자신은 이단과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집에 와 애꿎은 벽 몇 번 치고 소리 몇 번 지른 뒤 무언가를 하려 했는데 ... 기억이 안 난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모양인지 머리가 얼얼하다. 벤지는 아픈 머리를 감싸쥐려 손을 들었지만 손목은 등 뒤로 불편한 자세로 묶여있었다. 혹시나, 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다리도 묶여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런 망할. 벤지는 다시 한 번 손발이 묶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바지를 입고 있어야 할 자신의 다리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알몸으로 있는 것을 인지 할 수 있었다.

 

   ,자 자잠깐 이단. 이거 강간이야. 강간.”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런 취미는 없고, 약간 괴롭혀 주려는 거지. 아까 물은 것에 대답을 해 줄 때 까지.”

 

   , 이단! 벤지는 발버둥을 쳤지만 손목과 발에 단단히 매듭지어진 가죽 끈은 전혀 풀릴 기색이 없었다. 벤지가 뭐라 외치든 말든 이단은 벤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고, 벤지의 성기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건들이지도 않았는데 반쯤 선 성기의 모습에 이단은 눈을 치켜뜨고 벤지를 올려다보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벤지의 얼굴이 폭발할 것 같이 빨개졌다. 이단은 주머니에서 금속 재질의 동그란 모양을 한 콕링을 벤지의 눈에 잘 들어오도록 보란 듯이 천천히 꺼냈다. 벤지의 얼굴은 이단의 손에 쥐어진 콕링을 확인하자마자 하얗게 질리고, 다시금 달아올랐다.

 

   아쉽게도 오늘은 나만 즐거운 날이 될 것 같은데.”

   , 알겠어. 말 할게. 왜 그랬던 건지 다 말 할게.”

   늦었어.”

 

   이단은 벤지를 보며 씨익 웃고, 혀를 내어 살살 콕링을 핥았다. 망설임 없이 벤지의 성기를 잡고 요도에 콕링을 꽂았다. 그와 동시에 이단은 준비해 놓았던 러브젤을 검지와 중지에 잔뜩 짜낸 뒤 자신의 뒤를 풀었다. , 좋아, , 벤지... 이단은 부러 더 야하게 입술을 벌리고 혀로 핥았다. 벤지는 매듭을 풀고 이단의 온 몸을 더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밀려오는 이물감에 벤지의 발가락이 잔뜩 구부러졌다. 이단은 벤지의 꼿꼿이 선 성기와 구부러진 발가락을 잠시 번갈아보았다. 이단은 잘 빠진 손가락으로 벤지의 발을 잡은 뒤,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펠라치오를 하듯이 벤지의 엄지발가락을 입에 물고서는 잘근잘근 씹었다. 스믈스믈 발 끝부터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 나쁜 간지러움에 벤지는 다리를 마구 움직였지만, 이단이 잡고 있는 발목만 아파 올 뿐 이단의 혓바닥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이단은 벤지의 까슬한 뒷꿈치를 손바닥으로 주무르며 열심히 핥던 발가락을 입에서 빼고 벤지의 얼굴과 성난 모습으로 서있는 성기를 보았다. , 벤지. 이제 발만 핥아도 서네? 장난스럽게 이단이 놀렸지만 벤지는 평범한 사람은 보통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구... 잔뜩 울상인 얼굴로 말 했다. 물론 이단은 듣지 않았다. 이단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벤지의 위에 올라탔다. 어깨를 잡고 벤지와 눈을 마주했다. 온 몸이 뜨거웠다.

 

   싸지 않을 거니까, 콘돔도 필요 없겠지.”

   제발. 이단. 나는 너와 같이 살 자신이 없었어.”

 

   ! 말이 끝나자 마자 벤지는 자신의 성기를 세게 쥐어오는 이단의 감정이 가득 담긴 악력에 비명을 질렀다. 이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벤지의 성기의 기둥부터, 불알까지 배려심 없이 주물었다. 벤지의 이마에 땀이 맺히는 걸 본 이단은 그것을 고개를 숙이고 혀로 핥았다. 이단의 의도한 야한 행동 하나하나에 벤지는 착실히 반응을 했다. 벤지는 정말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넣지도 않았는데, 빌어먹을 몸뚱아리는 이단의 행동에, 모습에 정직하게 흥분을 하고 있었다. 벤지는 결국 사정을 하지 못해 성기능에 장애가 오는 것 보다는 사실대로 말하고 쪽팔려 죽는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결심을 한 뒤 눈을 질끈 감고 우다다 말을 쏘았다.

 

   넌 존나게 잘생겼고, 나는 아침마다 추한 몰골로 널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고, 너 내가 너 만날 때 마다 머리에 무스 바르고 나름 넥타이하고 옷 색깔도 맞추는 거 알긴 아냐?”

   .”

 

   이단은 멍청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뜬 벤지는 이단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전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신경 쓰는 거 몰랐구만. , 이래서 잘난 놈들은 질색이야. 다행히 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벤지는 그 말을 겨우 삼켜서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였어? 내가 싫었던게 아니라?”

   그래.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네 놈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 결국 심장마비로 죽을까봐 그랬던 것도 있어.”

 

   농담과 진담이 반 쯤 섞인 말이었다. 이단은 결국 짐짓 심각했던 얼굴을 풀고 입꼬리를 시원하게 말아 올려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웃지마, 이단. 웃지 말라구. 새빨간 얼굴을 하고 웅얼거리듯이 뱉는 벤지의 말에 한참이나 얼굴을 쓸어내리며 웃던 이단은 헛기침을 했다. 겨우 웃음을 멈출 수가 있었다.

 

   미안. , 그렇다면 내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면, 나와 같이 살아주겠어?”

   잘생긴 얼굴 낭비 하지말고. 됐어, 이사는 언제 할까.”

   섹스 끝내고, 바로.”

 

   이단은 벤지의 요도구를 막아놨던 콕링을 손쉽게 빼냈다. 벤지는 짧게 신음을 냈다.

 

   , 그거 당장 가져다가 버려. 근데 안 풀어줘?”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이단은 벤지의 성기에 자신의 구멍을 맞춰 허리를 내렸다. 하아, 이단은 몸을 떨었다. 사정까지는 별 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단의 사정액이 벤지의 턱 위로 튀었다. 사정의 여운에 벤지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숨을 몰아쉬던 이단은 벤지의 턱에 묻은 자신의 사정액을 핥고, 다시 한 번 벤지에게 키스했다. 좋아해, 벤지. 넌 너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이단은 입술을 떼고 벤지에게 말했다. 벤지는 알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단은 벤지의 손목을 풀어주기 위하여 등 뒤로 손을 뻗었다.

 

   아쉽지만, 상대는 벤자민 던 이라구.”

 

   벤지는 능청스레 웃으며 매듭이 풀어진 손으로 이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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