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단은 제 앞에 있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쌓인 노인의 얼굴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이단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럭비공을 고쳐 잡고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살짝 다리를 굽혔다. 노인은 그 배려에 눈만 꿈뻑이며 이단을 바라보았다.

 

저기,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나도 내 집이 어딘지는 충분히 잘 알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벤자민 던이라 소개 한 노인은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이단은 뒷덜미를 벅벅 긁으며 벤자민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으며 항상 무료하게 이 길을 오가며 운동을 끝마치고 집에 가는 자신을 지켜봐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참이나 우물쭈물 거리며 한다는 말이, 이름도 모르는 당신에게 반한 거 같아요. 봉사를 해 주는 셈 치고 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주면 안 될까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도 못할까요.”

이왕이면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 해줬으면 좋겠는데.”

설명이 부족했나요?”

 

자유분방한 모습과 다르게 이단은 꽤나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치매에 걸린 것 같은 노인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기에는 이단의 심성은 매우 올발랐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자신의 할 말만 하는 노인 앞에서는 그런 착한 심성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단은 결국 다 들릴 정도로 한숨을 쉬고 말았고, 그 한숨에 벤지의 어깨는 더욱 움츠려 들었다.

 

, 혹시 혼자 사는 거예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죠.”

 

부모님. 이단은 노인의 부모님을 상상해봤지만 무덤 속에 있는 시체-그것도 풍파에 녹슬어 뼈밖에 남지 않은. 따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단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 뻔 했지만 곧바로 그것이 매우 무례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쉽게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이단은 여전히 자신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 벤지의 얼굴을 세세하게 쳐다보았다. 지나온 세월을 여실히 보여주듯이 주름이 잡힌 얼굴, 만지면 수분기 하나 없이 버석할 것 같은 피부. 그 속에 있는 초록색 눈동자는 이단의 얼굴이 자신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 마냥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한 말들이 안 믿겨지나요?”

미안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하지만 사실인 걸요.”

이봐요, . 벤자민. 그래서 정말로 저한테 원하는 게 뭐에요?”

 

다른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같은 시간에 매일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원해요. 벤지는 체념한 말투였다. 그 모습은 이단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결국 이단은 백기를 던졌다.

 

좋아요.”

 

벤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노인의 얼굴에서 저런 얼굴이 나올 수 있을까. 잠시 이단은 벤지의 말을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봉사하는 셈 치자. 그렇게 바쁜 것도 없고 말이야. 이단은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속의 외침은 꾹 눌러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든 들어줄게요. 대신 딱 30. 그리고 휴일에만.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불만 없죠?”

 

이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제 이름은 이단이에요. 이단 헌트.”

 

2. 이단은 벤지와 만난 날을 손꼽아 세어보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공원에서의 첫 만남, 벤지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드린 날. -무덤이 아니었다. 그리고 게임과 만화책 이야기로 신나게 떠들었던 그런 날도 있었다. 이단이 생각하는 것 보다 벤지는 젊었다. 이단과 말도 잘 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벤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젊어지는 듯 했다. 하얗게 샜던 머리카락은 하나 둘 점점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나 차지하고 있었고,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던 주름은 강력한 밀대로 밀어버린 것 마냥 팽팽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벤지는, 믿기지 않지만. 젊어지는 것이 확실했다. 눈썰미가 남들보다 더 뛰어났던 이단에게는 벤지의 사소한 변화는 크게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단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벤지의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진행된다. 이단이 그 절대불변 한 사실을 인정한 날, 벤지와 이단은 그가 노인일 때 만났던 공원의 벤치에서 키스를 했다. 벤지의 시간이 23년이 진행 된 날. 이단의 나이가 32살일 때의 일이었다.

 

3. 벤지. 벤자민은 이단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꽤 부끄러워하고는 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마음에 안 들어? 이단이 웃자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벤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이단의 얼굴을 감쌌다. 벤지의 손등에 새겨진 젊음이 이단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보였다. 벤지는 엄지손가락으로 눈을 감은 이단의 눈두덩이를 살살 쓸어 넘겼다. 간지러운 모양이었는지 이단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단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벤지의 손길을 한껏 즐기다 그의 얇은 손목을 잡았다.

 

벤지.”

난 점점 젊어지고 있어요.”

 

당신이 늙는 것처럼. 벤지는 이단의 얼굴 위로 겹쳐진 세월의 흔적을 제 눈 안으로 담았다. 갓 성인이 된 얼굴을 한 벤지는 얼굴에 걸맞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난 내가 언제 죽을지 항상 궁금하고, 그걸 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이단의 손 안에 부드러운 살결이 만져진다.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벤지, 사람은 모두 다 늙어. 단지 넌 그 방식이 다른 거고.”

 

위로에도 벤지의 얼굴은 풀어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입술을 삐죽이 내민 벤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가끔 보이는 얼굴이 제 나잇대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단은 젊은 애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 내가 심술궂어서 너를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어린 벤자민 던은 상처 입고 집에 갔겠죠.”

 

잠시 말을 고르던 벤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말을 걸었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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