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사라졌다.

벤지는 텅 빈 집을 황망히 쳐다보았다. 허리를 숙여 신발의 뒤꿈치를 잡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한 입 베어 문 빵 한 조각과 한 모금 남긴 우유가 담긴 유리잔 따위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배기관을 타고 내려간 모양인지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틀을 내려다보았다. 먼지가 쌓인 그대로 손자국이 나있었다. 사실, 창틀로 탈출을 감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항상 있던 일이었다.

벤지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었다.

이단이 들어가지 못하게 잠가 놓은 방문을 열쇠를 이용하여 열었다. 거실과 다르게 텁텁한 냄새가 벤지의 폐부 내로 가득 들어왔다. 발가락 끝에 음료수 캔 몇 개가 치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벤지는 닫아놓은 데스크톱을 열어 화면이 뜨기를 기다렸다. 뻑뻑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한참동안 기다렸다.

벤지가 IMF에 들어 간 것은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덕분에 이단 헌트를 만났으며 동경하던 그와 같이 일할 수 있었고, 그와 평생을 같이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몰랐을 위치추적과 같은 간단한 범법행위를 손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도.

벤지가 이단 헌트의 어깨에 위치추적 칩을 심어놓은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근처 공원을 가리키는 빨간 점이 반짝였다.

 

이단!”

 

이단은 공원 한 가운데에 있는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이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등 뒤로 다가갔다. 등 뒤에서 이단을 건드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단이 가출을 감행했던 첫 날, 땀에 잔뜩 젖은 체 이단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벤지는 자신을 덮치는 줄 알았던 이단에게 잡혀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앞으로 가 얼굴을 비췄다.

 

걱정했어요.”

 

이단은 말이 없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이단은 그제야 벤지를 쳐다보았다. 제 말에 반응을 해 준 것은 또 오랜만이라 벤지는 조금 웃을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벤지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위험하게 창밖으로 나가면 어떡해요. 아니, 설마 아직도 한창 때 인줄 아는 건 아니죠? 허리 삐끗하면 치료도 어렵다니까.”

 

이단은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벤지는 이단이 자신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른 집에 들어가요.”

미안해요, 당신이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아.”

 

벤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뭐라 해야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저예요, . 벤자민 던이요. 당신의 동료, 당신의 친구, 당신의 애인. 당신의 보호자. 둘 사이로 한참이나 침묵이 감돌았다. 무거운 침묵, 달싹이는 입술,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

 

벤자민 던이에요.”

벤자민?”

벤지라고 불러도 좋아요. 이단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벤지.”

잘했어요.”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손목을 잡았다. 뿌리치는 일은 없었다. 이단은 계속해서 벤지의 이름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집에 얼른 가요.”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기다리는 거라도 있어서 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벤지.”

벤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한 번 더. 벤지는 이단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내가 아는 벤지는 한 명밖에 없는데.”

 

이단은 묵묵히 버텨 섰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집에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벤지는 한참동안 고민하다 이단의 옆에 주저앉았다. 분수대 바깥으로 튄 물방울이 엉덩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이단은 키가 낮아진 벤지를 내려다보았다.

 

같이 기다려줄게요.”

 

벤지는 잡은 이단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이단은 잠시 망설이다 벤지의 옆에 앉았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이단은 말을 고르는 듯싶었다. 벤지는 참을성 있게 그를 기다려주었다. 그가 예전에 자신에게 해주던 것처럼.

 

 

'BENJIETH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벤지이단] 스유AU  (0) 2016.06.21
[벤지이단] GB  (0) 2016.06.05
[벤지이단] 벤지 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0) 2016.05.05
[벤지이단] 은퇴  (0) 2016.04.14
[벤지이단] 고양이  (0) 2016.03.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