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가장 예산이 적게 들며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그들에게 훈장을 내리는 것이었다. 전쟁이 심각한 국면을 띌 때마다 히틀러는 예산서의 한 귀퉁이에다가 명예로운 자들을 위한 훈장의 값어치를 조금 더 매겨 내리고는 했다. 죽은 자들의 훈장. 반편이가 된 몸뚱아리를 위한 훈장. 죽음의 표식이 새겨진 훈장. 나치의 훈장. 그것들을 집어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은 욕망을 겨우 눌러냈다. 금테가 둘러진 훈장 위를 세 손가락을 쓸어보았다. 매끄럽고, 그 매끄러운 촉감은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새하얗게 다려진 정복을 갖추어 입었다. 수돗물로 깨끗하게 씻은 보조물을 왼쪽 눈알에 끼웠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딱딱하게 서 있는 부하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준비가 다 됐으니 들여보내게.”

 

기름칠이 되지 않아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두 쌍의 군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토마스, 지미, 찰리. 원래는 세 명의 군인이 작전실 안에서 훈장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결국 이곳에 들어온 것은 두 명뿐이었다. 지미는 극심한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작전실에 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전형적인 독일계 청년이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성년이 되자마자 입대를 결심했고, 지난주에 있었던 폭격의 파편에 맞아 영원히 다리 한 쪽을 절게 된 불쌍한 청년이었다.

 

귀관은 저번 전투에서 훌륭한...”

 

전투라기에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독일군이 입은 피해는 아주 컸다. 그 지옥과도 같은 폭격 속에서 살아온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뻔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그의 오른쪽 가슴에 달릴 훈장을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찰리. 그는 이 작전실에 있는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류에 쓰인 국적도, 정체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상황이 좋게 돌아가지 않는 독일군은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제일 멀쩡했다.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잘 다듬은 콧수염에,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여유 있는 미소까지.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기시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는 군인과 어울리지 않았다. 용병이라면 모를까.

 

마찬가지로 저번 전투에서 훌륭한 공을 세웠더군.”

 

명령을 받을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이미 받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지난 전투에서 죽인 영국군의 숫자는 한 부대에 담아도 모자를 정도였다. 찰리는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씩 웃으며 휘장을 쳐다보았다.

그 적나라한 시선이 닿는 끝은 결국 손가락이었다.

 


 


막사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보고를 받았다. 짐승의 소행인 것 같다. 피해자들은 목덜미가 잔인하게 찢겨 발긴 채로 발견이 되었고 현장은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피비린내로 어지러울 정도라는 보고였다. 보고서에 서명을 하며 아주 짧게 묵념을 했다. 다른 보고서에는 탈영병들의 소식이 적혀있었다. 여러 이름들 사이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가장 눈에 뛰는 건 역시 그 이름이었다. 찰리 울프. 몇 주 전에 직접 훈장을 달아주었던 군인이기도 했다. 그는 군인보다는 용병에 어울리는 사내였다. 독일군은 패배를 향해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봤자 별 이득이 될 거란 생각도 안 들었겠지. 마저 서명을 하고 서류철을 닫아 책상 한쪽에 가지런히 두었다. 할 일이 많았다.

 



 

왼쪽 팔뚝을 관통한 총알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차려입은 정복은 식은땀으로 젖었고 멀쩡한 다리는 덜덜 떨려 제자리에 서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배신자. 반역자. 즉결 심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돌로 된 차가운 바닥은 멀어져가는 정신을 잡게 해주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당당한 모습으로 한 치의 흠결도 없는 죽음. 마지막은 군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두꺼운 천 위로 새까만 피가 새어 올라왔다.

숨을 몰아쉬었다. 과다출혈 따위로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죽지 않기 위해 할수 있는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건 가족들이었다. 안전한 곳에서 다시 만날 줄 알았는데. 상상으로나마 보는 얼굴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리운 풍경이었다. 점점 정신은 혼미해져갔다. 죽음 앞에 선 신체에서 내뿜는 아드레날린은 심장을 멈추지 않고 빠르게 뛰게 해주었다.

쇠창살이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환각인가?

튼튼하게만 보이던 쇠창살은 연약한 쇠꼬챙이처럼 보였다. 바깥에는 윤기가 나는 새까만 털의 늑대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팔을 물고 있었다. 갓 뜯은 모양인지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에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손에는 감옥의 열쇠가 달린 꾸러미가 쥐어져 있었다.

늑대는 선심이라도 쓰듯 팔을 바닥에 던져놓은 뒤 사라졌다.

 


 


제발...”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과 코를 막아버린 거친 손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먹힌 소리는 웅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다시 목구멍을 틀어막고. 찢어졌다. 팔까지 절단이 날 거라는 공포심은 서서히 나를 좀먹고 있었다. 찰리 울프. 열쇠를 던져주고 탈출의 길을 열어준 것은 그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이 팔뚝에 쑤셔 박혔다. 이리저리 돌리며 고문을 하더니 다시 쑥 빼버린다. 날붙이 밑으로 무언가가 뚝뚝 떨어진다. 찰리는 손톱을 이용해 살덩이 속에서 무언가를 빼내었다. 찰리는 얼굴을 막았던 손을 떼어냈다.

고통은 끝이 났다. 막혔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헉헉대며 바닥에 헛구역질을 해댔다. 뺨 위에 먼지와 함께 축축한 것들이 묻었다. 그제야 주변의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릿한 냄새와 풀 냄새가 섞여 역겨운 향이 났다.

찰리는 품속에서 철제 플라스크를 꺼내어 내 입가에 가져다댔다. 뭐든 좋았다. 목이 타는 것 같았다.


고통에는 이게 직통이지.”


찰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비린내는 알코올 냄새에 씻겨 내려갔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었다.

살아남았다. 그 안도감에 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엉엉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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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찰리는 바늘이 시계의 반을 가를 때 눈을 뜬다. 달에 한두 번 올까말까 한 날이었는데, 그때마다 찰리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고는 했다. 일종의 습관이자 버릇이었다. 찰리는 감기는 눈을 부릅뜨며 창고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는 총기를 한아름 안고 현관문이 보이는 테이블에 쏟아 부었다. 어디 빠진 것 없나 살펴본 뒤, 다시 한 번 창고로 가서 손이 부족해 챙겨오지 못했던 물건들을 챙겼다. 기다란 막대와 드라이버, 천 조각, 기름. 손질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어젯밤에 혹사를 당한 슈타우펜이라도 덩달아 일어나곤 했다. 그는 몸이 뻐근한 모양인지 허리에 손을 짚고는 찰리가 하는 모양새를 빤히 관찰했다.

그 날은 규칙적으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술을 진탕 마시고 침대에 엎어진 다음 날에도 찰리는 꾸역꾸역 일어나 테이블에 기어가고는 했다. 그의 대령을 괴롭힌 다음 날에도. 물론. 컨디션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만의 규칙이라도 있는 걸까. 슈타우펜은 결국 그 규칙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총열 내부를 닦는 찰리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찰리는 그럴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고는 했다. 알 필요가 없다던가, 그냥 하고 싶다던가. 정답이 아닌 뻔한 대답들을 늘어놓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는 뜻이다. 슈타우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조용히 총을 매만지는 찰리의 기다란 손가락을 관찰하다 시선을 옮겼다. 찰리는 집중을 할 때 입술이 튀어나왔다.

 

슈타우펜은 화장실 수납장 두 번째 칸에 있어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권총을 찰리에게 건넸다

찰리는 잠시 손을 멈추고 세 손가락에 걸린 총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긴, 당신도 군인이었으니까.”

무슨 뜻인가?”

총기를 다룰 줄 아냐고 물어볼 뻔 했거든.”


한참을 기다려도 찰리가 받을 생각이 없자, 슈타우펜은 테이블 위에 총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된 이후로 대부분의 손질은 하급자를 시켰지만, 전에는 도맡아서 했다네.”


아하. 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다시 시선을 총으로 옮겼다.


요즘 들어 손질의 횟수가 잦네만.”


찰리는 다시 손을 멈췄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슈타우펜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안 될게 있어?”

안 될 건 없지만... 피곤하지 않은가 싶어서 말일세.”

, 어제 꽤 힘 들었나봐.”


말이 끝나자마자 살짝 주름진 슈타우펜의 미간이 찰리의 마음에 들었다.


도와줄 건 없나?”

거기 옆에 앉아있어.”


슈타우펜은 순순히 찰리의 말을 들었다. 찰리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뭇 진지한 손놀림으로 보였다. 찰리는 일부러 더 손질에 집중했다. 사실, 찰리는 아까부터 같은 부분만 닦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는 일찍 일어난 보람이 없구만.

관찰력 좋은 슈타우펜이 찰리 나름의 규칙을 발견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찰리는 아주 가끔씩 슈타우펜을 보며 사랑을 느낄 때가 있었다. 돈을 얻기 위해, 쾌락을 얻기 위해 겉보기만 그럴 듯한 것이 아닌 진짜 사랑. 찰리는 그럴 때마다 얼음이 가득 들은 냉수 안에 얼굴을 들이 밀기도 하고, 집 밖을 빠져나와 마을 여러 바퀴를 달린 적도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택한 방법은 테이블 위에 한가득 총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손질하는 방법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손질에 집중하다보면 찰리의 마음은 깨끗하게 씻겨 나가고는 했다

하지만 점점 한계가 다가왔다. 아무리 총의 기름때를 닦아내도 슈타우펜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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