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님리퀘



찰리는 운이 좋았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운명처럼 찰리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그에게 의뢰를 맡기는 모든 이들은 찰리의 깔끔한 일솜씨에 찬사를 보냈고, 그의 뱀 같은 혀에 휘말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지갑을 열어 찰리에게 건네주었다. 찰리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모든 일들이 잘 풀릴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감은 찰리의 운을 좋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물론 자신감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지만, 이런 일들은 대부분 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운으로 해결된 적이 많았다.

평범한 하루였다. 운이 더 좋았다는 것만 빼면. 며칠 동안 쫓아다닌 표적을 겨우 죽인 날이었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지 며칠이 지난 날 이었다. 찰리는 의뢰 기간이 지난 만큼 줄어든 돈 보따리를 걱정하며, 하지만 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체, 의뢰인의 집안에 들어갔고 그는 그 곳에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 모양인지 징그럽게 해체 된 머리통과 그 옆에 놓여 있는 돈다발을 발견했다. 찰리의 선택은 아주 간단했다. 의뢰주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과 집 안에 인기척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찰리는 바로 그의 옆에 놓인 돈이 들은 보따리를 챙기고, 집 안을 좀 더 뒤져 귀중품 몇 가지를 챙겨 나왔다.

 



슈타우펜의 유일한 취미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손 한 쪽과 세 손가락을 잃은 그에게는 전형적인 취미라 할 수 있었다. 지겹도록 읽었던 군사학에서부터 가끔은 흥미 위주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찰리는 그의 취미 활동을 탐탁찮게 바라보았다. 정착지를 자주 옮기는 특성 상 짐이 늘어나는 것은 그들에게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점점 쌓여가는 책 무더기를 보는 슈타우펜도 찰리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짐이 늘어난다면, 처분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덕분에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주택에서 사는 그는 이따금씩 한 꾸러미의 낡은 책들을 이고 마을에 내려가고는 했다.

옛날보단 환경이 열약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희귀한 판본이나 읽고 싶었던 책들을 손에 넣기에 마을은 너무 작았고, 취급하는 문서도 적었다. 슈타우펜은 늙은 노인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작은 책방을 주로 이용했다. 중고 서적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슈타우펜은 노인과 안면을 튼 뒤에는 그에게 읽고 싶은 책을 부탁해 돈을 주고 사오고, 다 읽은 책들은 그에게 싼 값에 파는 식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던 것이 분명했다. 노인이 뿌듯한 얼굴로 내미는 책의 표지가 익숙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프로이센 육군참모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끌레아모 저서의 책이었다. 그 책은 절판 된지 이십 년이 흘렀고,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한 지금과 같은 사정에서는 구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 할 정도였다. 심지어 대령의 직위에 있었던 슈타우펜 조차. 부르는 것이 값인 물건이었다. 슈타우펜은 놀란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 품에 안았다.

슈타우펜은 그답지 않게 허둥지둥 옷 주머니에서 돈을 찾았다. 찰리가 주고 간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사정을 말하고 나중에 다시 가격을 무는 방식으로 해결 할 작정이었다. 노인은 그런 슈타우펜의 생각을 꿰뚫어보았다.


주는 건 아니고, 빌려주는 것일세.”

대여금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유일하게 오는 단골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노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만만찮은 고집이었다. 슈타우펜은 결국 노인의 고집에 못 이겨 책과 책을 팔은 대금을 건네받고 책방을 나왔다.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슈타우펜은 소중하게 책을 짐 가방에 넣은 뒤, 남은 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돈을 남겨 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탓도 있고, 찰리가 집을 비운지 며칠이 지나 그를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지루하단 이유도 있었다. 결국 슈타우펜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마을의 번화가였다. 값이 나가는 와인 한 병과 어울리는 살라미 한 팩을 살 생각이었다. 찰리가 일을 마치고 온다면 그와 한 병을 비울 수도 있었고, 그가 오늘도 들어오지 못한다면 또는 않는다면 혼자서 반 병 정도를 마실 것이다. 그럴 생각이었다.

분명히 그럴 생각이었는데, 번화가를 둘러보고 나온 슈타우펜의 짐 가방에는 찰리가 좋아하는 도수가 높은 독주와 비스킷이 들어있었다. 가끔은 가벼운 술 대신 독주를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거칠고 새까만 털을 가지고 있는 그의 늑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바로 앞에서 마주쳐버렸다. 찰리는 당황한 표정을 재빨리 풀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슈타우펜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이네?”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말은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슈타우펜은 어깨를 으쓱였다.


다친 덴 없는 건가?”


걱정해주는 말에 샐쭉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찰리의 눈에 슈타우펜의 어깨에 한가득 진 짐이 들어왔다. “그건 뭐지?” 슈타우펜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자네가 좋아할만 한 것을 샀지.”


사실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귀중품을 돈으로 바꾸고, 두둑해진 지갑을 들은 찰리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그가 좋아하지도 않는 베이커리였다. 잠깐의 변덕이라고 하자. 찰리는 슈타우펜이 그리워지는 참이었고 그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물론 인정하지는 않았다.

찰리가 들린 베이커리는 각국의 유명한 디저트를 모아놓은 가게였다. 찰리와 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디저트들을 들고 가게를 나서곤 했다. 찰리가 독일의 디저트가 진열 되어있는 코너에서 멈춰섰다. 다른 나라의 디저트완 달리 공을 들여 꾸미지 않은 디저트들에 웃음이 나왔다. 슈타우펜 특유의 뻣뻣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케이크 앞에서 한참동안 고민하던 찰리는 결국 하나를 골랐다. 누가 생각날 정도로 투박한 케이크였다.

 




슈타우펜은 찰리의 손에 쥔 상자의 정체를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입 밖에 올려 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심사가 뒤틀린 찰리는 분명 자신을 생각해서 사 온 케이크를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로 바닥에 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겠지만 찰리는 그랬다. 슈타우펜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를 위해 선물을 사왔네. 적절한 시기에 맞춰 왔군.”


찰리는 슈타우펜의 어깨에 걸친 짐 꾸러미를 쳐다보았다. 보기에도 묵직한 것이 짐작이 가는 선물이었다.


?”

그래.”

오늘은 책을 사오지 않았나보지?”


슈타우펜은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자네가 올 것 같았거든.”

, 내가 때맞춰 왔나보네.”

그런 셈이지.”


성큼성큼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이러다가 상자의 내용물을 영원히 구경하지 못 할 것 같았다. 찰리는 새하얀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재킷을 벗고 있었다. 상대가 찰리인지라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숙박은 알아서 잘 해결한 모양인지 몸에서는 비누 향이 풍겨왔다.


그건 뭔가?”

.”


찰리는 주위를 서성이다 대답했다.


기념일은 아니지만, 가끔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 오늘 운이 좋기도 했고, 빈손으로 오긴 아쉬워서 사왔지.”

이 근처 베이커리에서 사온 게 아니군?”

알다시피 여긴 맛없잖아.”

내 생각이 나서 사 온 건가?”


하하. 찰리는 과장된 웃음을 하고는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았다. 무언가 대꾸할 말을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찾지 못했는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슈타우펜은 짐 꾸러미에서 도수가 높은 중국술과 함께 사온 비스킷을 꺼냈다. 찰리는 놀란 눈치였다.


그걸 왜 사왔어?”

자네 선물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나도 술을 즐기는 편이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야 그렇겠지만...”

나도 자네가 사온 선물을 확인해야겠군.”

선물 아니라니깐.”


슈타우펜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 찰리가 자신이 상자를 까는 모양새를 유심히 살펴보는 걸 알 수 있었다. 상자 속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바움쿠헨이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케이크였다. 슈타우펜은 미소 지었다.


울프, 이게 어떤 날에 먹는 케이크인줄 아나?”


찰리는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재료로 만들지만 만드는 게 꽤 어려워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이라네.”


케이크를 먹기 좋게 자르며 말을 이었다. 찰리는 술을 따르고 있었다.


가령 결혼식이라던가.”

참 특별한 날이네. 그거.”


짓궂은 농담이었다. 슈타우펜은 자리에 앉아 찰리가 따라준 술잔을 잡아 들었다.

 

자신 있게 말하더니, 몇 잔 마시지도 않더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비틀거리는 모양새다. 찰리는 그 꼴이 웃기기도 하고 보기도 좋아, 일부러 슈타우펜을 자극하며 술을 더 마시게 했다.


기분이, 좋군...”


혼잣말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먹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찰리는 슈타우펜의 잔을 뺏어 식탁 위에 올려다 놓았다. “돌려주게.” 무방비로 있던 손을 슈타우펜이 덥썩 잡아버렸다.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 찰리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진짜 취했거든?”

찰리, 자네는 날 왜 구해준 건가?”


웃음을 멈추고 물어보는 슈타우펜의 눈은 타오르는 도화선처럼 빛나고 있었다. 찰리는 자신이 슈타우펜에게 휘말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찰리의 팔목을 잡은 손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슈타우펜이 원하는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구해준 것이 아니었다.


넌 거기서 죽을 인간이 아니었어.”


찰리는 자신의 손을 잡았던 슈타우펜의 손을 뒤집어 잡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죽을 거라면 내가 죽였겠지.”



 

사실 정신을 잃었던 게 맞다. 슈타우펜은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눈을 떴다. 늑대의 모습을 한 찰리가 위에 있었다. 찰리는 며칠동안 슈타우펜을 보지 못한 보상을 받기라도 하겠듯이 슈타우펜의 온 얼굴을 물고, 빨았다. 기다라고 축축한 혀가 얼굴을 싹 핥을 땐 눈을 찡그리곤 했다.


, .”


살짝 아프게 깨문 목덜미에 슈타우펜이 비명을 작게 질렀다. 그 소리에 찰리는 목덜미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슈타우펜과 눈을 마주쳤다. 이미 이성이 남아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찰리에게선 독한 술 냄새가 났다. 슈타우펜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일지도 몰랐다.


. 찰리, 잠깐만...”


부탁해봤자 찰리는 듣는 척도 하지 않겠지만, 애타게 불렀다. 그 반응은 찰리를 더 흥분하게 만든 모양인지 찰리는 슈타우펜의 목덜미를 핥아 없애겠다는 듯 더 집중했다. 문득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에 겁이 났지만 슈타우펜의 불완전한 손은 찰리를 밀어내지 못했다. 결국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찰리의 주둥이를 몇 번 쓰다듬었다. 찰리는 눈을 치켜뜨더니 가만히 슈타우펜의 가슴팍에 머리를 내리고 누웠다. 가슴을 답답하게 내리누르는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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