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은 보기보다 술을 못마신다. 로이는 엔젤에 대해 관찰한 기록지에 여든 일곱 번 째의 사실로 이것을 적으리라 마음먹었다. 말 그대로, 항상 우리 술 마시러 갈래요? 라는 스무 번의 시도 끝에 엔젤은 겨우 승낙의 의사를 내비췄고 로이는 옳다꾸나. 근처 펍에 엔젤을 데려가 과일 홉이 향긋하게 들어간 맥주 여섯 잔과 데낄라 샷 두 개를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로이는 입가심으로 주문 한 얇게 저민 오이가 들어간 진토닉을 홀짝이며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엔젤의 어깨를 잡아 바로 서는 것을 도와줬다.


엔젤 경사님. 조심해야죠.”

으음, 로이, 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예요?”

맥주랑, 데낄라. 그리고 탄산음료 조금. 오해는 말아요. 저도 같이 마셨으니까요.”

속이, 좋지 않네요.”

여기 데낄라가 조금 독하네요.”


로이는 엔젤의 앞에 있는 한 모금이 남은 샷을 입에 털어 넣으며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엄청난 수확을 건진 것이라해도 모자름이 없었다. 무엇보다 잔뜩 흐트러진 모습의 엔젤 경사님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고프로를 챙겨올 걸. 로이는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엔젤의 달아오른 얼굴을 몰래 찍어 남기며 후회를 했다. 물론 엔젤은 바닥만 쳐다보고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로이의 검은 속을 깨달을 일은 전혀 없었다.


약은 안 돼요.”

어어, 경사님. 저도 경찰이라니까요.”

경찰이 아니라, 경찰관.”

네에, .”



엔젤은 눈을 가늘게 떠 로이를 쳐다보았다.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날, 엔젤은 최근들어 옆집에 이상한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그 이상한 집을 찾아갔고, 이상한 집에 있던 이상한 남자 로이 밀러는 신고를 받고 찾아왔다는 엔젤에게 명함 대신 잘생긴 얼굴로 웃으며 엔젤의 방호복에 권총을 들이밀었다.


공무집행 중이니, 조용히 입 다무시고 나가주세요.’


물론 그 말을 듣고 엔젤은 가만히 있을만큼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엔젤은 바로 로이를 덮쳐 밀었고, 평화로운 마을에 정의심 투철한 엔젤 경사가 있을 거란 것을 상상도 못한 로이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갔다. 총은 저 멀리, 엔젤과 로이는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고. 로이가 쫓던 마약상이 저격총으로 로이의 어깨에 총상을 남기고 도망갔을 때서야 그들의 싸움은 멈출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로이는 진짜로 인터폴에서 도망친 마약상을 쫓아 공무를 집행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아무 것도 몰랐던 엔젤을 꽤 과격한 방식으로 쫓아낸 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로이가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자 엔젤도 더 이상 그 사실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우선 도망친 마약상을 잡아 넘기는 것이 우선이었고, 로이는 엔젤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건은 두 사람의 협업으로 무사히 종결되었다.


어찌저찌 범죄의 누명은 풀렸지만 그동안 쌓인 불신은 지워 낼 수 없었다. 로이는 그 사건 이후로 엔젤의 동네에 남아 자기도 경찰()이라고 우기며 엔젤의 일들을 도와주거나, 미묘한 선에서 방해하며 약올렸다. 그래도 사건을 해결하며 쌓아온 정이라고, 엔젤은 로이를 냉정히 밀쳐 낼 수가 없었다. 로이는 정이 아니라 사랑이었지만.


술이 위장 속에서 섞이는 기분이었다. 엔젤은 결국 이대로 있다간 바닥에 토를 하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란 위기감에 몸을 떨었다. 로이는 앞에서 괜찮아요? 괜찮아요? 도움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댔고 엔젤은 로이의 잘생긴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 치웠다.


화장실... 화장실에 좀 가야겠어요.”


엔젤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이 파도마냥 밀려왔다가 쓸려나간다. 화장실까지 같이 가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로이를 다시 앉히고, 엔젤은 자신에게 덤비는 테이블을 열심히 외면하며 화장실까지 기어가다시피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익숙한 검정 코트. 숱 없는 머리. 담배 냄새. 술 냄새. 게리.


씨발! 문 안 닫아?”


게리는 제 밑에 앉아있는 남자의 두툼한 허벅지를 매만지며 소리 질렀다. 엔젤은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의 말 대로 해줄 기력마저 싸그리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문을 닫아 준 건 어느새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 온 로이였다. 엔젤은 번뜩 든 생각에 손을 휘저으며 질문했다.


로이,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수요일이요.”

젠장.”


엔젤은 그제서야 대니가 달력에 날짜를 하루씩 밀어 체크해놨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늘이 수요일. 그러니까 제 큰 형인 게리가 술집을 이용하는 날인 것을 기억해냈다. 엔젤은 제 손으로 게리를 경찰서에 집어 넣고 싶지 않다며 펍을 이용하는 날을 나눠서 이용하기로 했고, 월수금일요일은 게리가 펍에서 진탕 마셔도 엔젤이 방해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다.


속은 어때요?”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것 같네요.”

경사님, 화장실 좋은 모텔 아는데 거기 갈래요?”


정말로. 오늘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엔젤은 로이가 이끄는 대로 휘청이며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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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야기는 5분 전으로 돌아간다. 엄마한테 줄 꽃을 연인에게 선물해주고, 언제나 그랬듯이 말실수 한 번.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죄책감들. 결론만 말하자면, 숀은 리즈와 헤어졌다. 항상 겪었던 그런 연인 사이의 말다툼이나 위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숀은 리즈와 진짜로, 정말로, 진심으로. 헤어졌다. 결국 끝을 본 것이다. 진짜 끝.

장식 된 꽃다발은 길거리에 널린 흔해빠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이불과 한 몸이 된 에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윈체스터?” 동시에 숀은 이미 집과 같은 공간이 된 술집의 이름을 불렀다. 에드는 반응이 없었다. 숀은 아무것도 제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고 한탄을 하며 에드의 이불을 거칠게 들췄다.

 

젠장, 오늘은 날 좀 내버려둬,”

 

에드는 어쩐 일인지 기분이 몹시 안 좋아보였다. 평소 같았다면 무슨 일인지 위로를 하며, 거실로 나가 같이 게임 한 판 하자고 능청맞게 받아쳤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숀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에드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숀은 윈체스터 앞에서 자조 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기름칠이 덜 된 문을 힘껏 열었다. 문 귀퉁이에 달린 싸구려 종이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울렸다. 그 소리에 윈체스터의 사장인 존은 문 쪽을 힐끗 봤지만 곧 신경을 끄고 제 할 일을 했다. 숀은 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들고 존과 멀리 떨어져 있는 바에 앉았다. 누구랑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누구랑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든 손으로 존을 부르려했지만 존은 고기를 손질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안녕, 친구. 바로 주문 할래요?”

 

숀은 밑에서 불쑥 튀어나온 정수리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실제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손에 든 지갑을 그 머리통에 던져버렸다. 이마 한 가운데를 맞고 떨어진 지갑이 바닥에서 뒤집어졌다. 이마를 두 손바닥으로 감싸 쥔 남자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미안해요. 반가워서 인사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요.”

, 안녕하세요?”

이름이?”

.”

반가워요. . 오늘부터 윈체스터에서 일하게 된 브라이언이라고 해요.”

 

숀은 브라이언의 커다란 눈을 마주 봤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자신을 쳐다보는 커다란 눈이 부담스러워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자연스럽게 뒤로 넘긴 풍성한 브루넷, 이야기를 언제든 잘 들어줄 것 같이 상대방을 응시하는 녹색 눈동자.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저 미소. 이 시골 동네에 있을 평범한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브라이언은 바닥에서 지갑을 주워 숀에게 건냈고 숀은 그 안에서 지폐를 꺼내 브라이언에게 건냈다.

 

맥주랑, 위스키 샷으로 세 개요.”

 

브라이언은 숀이 건내는 돈을 받아들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비췄다. 바에 가지런히 놓인 꽃 장식만 멍청하게 쳐다보던 숀은 그런 브라이언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번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브라이언은 축축하고 차가운 잔에 담긴 맥주와 독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잔 세 개를 숀의 앞에 놔주었다. 숀은 제 눈 앞에 있는 술들을 한번에 들이 마셨다. 거의 목구멍에 부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정도로. 브라이언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숀의 얼굴이 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구요?”

 

밖은 밤바람이 쌀쌀했다. 윈체스터는 그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해줬다. 그 안은 술을 시키거나 서로의 험담을 하며 낄낄대는 소리로 가득했다. 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브라이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숀에게 하는 질책은 아니었다.

 

병 째로 가져다 줘요.”

, 지금 당신 꼴을 보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닌 거 같아요.”

 

숀은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였다. 브라이언은 새하얀 천으로 광이 날 정도로 닦던 유리잔을 내려놓고 숀을 위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고민했다.

 

잊어버려요. , 맥주가 있고 안주도 있잖아요?”

 

숀은 바에 얼굴을 처박고 어깨를 들썩였다. 브라이언은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젠장, 맥주고 안주는 무슨! , 봐요. 저는 지금 원래 살던 곳에서 어느 미친 여자한테 걸려서 온 동네에 제 섹스 라이프고 뭐고 다 소문났어요. 그리고 가게에서 제가 믿었던 스승과 주먹다짐을 했구요. 덕분에 그 쪽에서 바텐더 일은 하지도 못하게 생겼다구요.”

 

브라이언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못 알아챌 정도로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술을 먹은 것은 숀인데 자신이 대신 취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실망감에서 비롯했다. 어울리지 않게도 숀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모습이 프로답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제야 숀은 바에 눌린 얼굴을 떼고 눈물 가득한 눈을 굴려 브라이언을 쳐다보았다.

 

공부는 포기했고, 나이는 먹어가고. 결국 도망치다시피 온 곳이 이 곳이에요. 이 동네에 그럴듯한 술집에 취직한 다음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지금 제 모습을 봐요. 여자친구와 네 시간 전에 헤어진, 맥주와 싸구려 위스키만 마시는 술주정뱅이와 이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잖아요.”

 

브라이언은 말을 마치고 숀에게 얼음이 담긴 차가운 물을 건내주었다. 숀은 훌쩍이며 브라이언의 호의를 받아 마셨다.

 

,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계속 축 쳐져있지는 말라는 말이었어요.”

 

숀은 훌쩍임을 멈췄다.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윈체스터의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남은 술을 한번에 털어넣은 숀은 이전부터 대답이 없었다. 브라이언은 존에게 눈인사를 하고 옆에 빼놓았던 외투를 걸쳤다. 존은 손질한 고기 중 남은 것들을 종이봉투에 담아 브라이언에게 던져주었다. 브라이언은 휘파람을 불며 고기가 든 봉투를 챙겼다. 물론 바에 거의 눕다시피 한 숀을 챙기는 것도 있지는 않았다.

 

이봐요. ? 일어나서 갈 수 있어요?”

“... 당연하죠.”

 

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기세에 밀려 바닥에 엎어졌다. 브라이언은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바에 덩그라니 놓여진 지갑을 챙겨 손의 외투에 넣어준 다음, 그의 허리를 잡고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집이 어디에요?”

집이요? 에드와 피트가, 기다릴텐데... 오늘은... 그냥... . 방금 뭐라고 물었어요?”

집이 어디냐구요.”

 

브라이언은 숀을 다시 한번 불렀지만 숀은 눈을 꾹 감고 상황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브라이언은 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브라이언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숀은 결국 바닥에 여지껏 먹은 술들을 다 토해냈다.

 

 

결국 브라이언은 윈체스터에 흩뿌려진 그 흔적들을 다 치우고, 토하고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숀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관자놀이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바닥에 그를 눕혔다. 새로운 동네에 걸맞는 성대한 환영식이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손님이기도 한 그를 길바닥에 내버리고 도망갈 수 없었다. 무거운 짐 ()을 끌고 온 덕에 홧홧하게 올라오는 열기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브라이언은 단정하게 입은 셔츠를 벗고 숀을 침대에 눕혔다.

 

 

으악숀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깼다. 입 안에서 텁텁한 기운이 맴돌았다. 심지어 눈 앞에 보이는 천장은 처음 보는 패턴이었다. 속은 쓰리고, 무슨 짓을 한 건지 눈은 침침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어났네요?”

 

브라이언이 새빨간 음료가 담긴 잔을 내밀며 눈썹을 까닥였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숀은 모든 것이 기억났다. 부끄러울 정도로. 차라리 기억이 안 났으면 좋았을텐데. 브라이언은 숀에게 얼른 받으라는 듯이 그 잔을 흔들었다. 점도가 높은 새빨간 액체가 잔 안에서 흔들렸다. 숀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것을 받았다.

 

숙취에 좋은 술이에요.”

 

. 그 단어만 들어도 속이 미식거리는 기분이었지만 브라이언의 정성을 생각하여 숀은 그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브라이언은 잘 받아 마시는 숀을 보며 웃음지었다. 토마토 맛이 입 안에서 강렬하게 맴돌았다. 숀은 눈을 꿈뻑이고, 입을 침으로 축였다.

 

, ... 어제는 죄송했어요.”

 

브라이언은 숀의 손에 들린 빈 잔을 회수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숀은 더 죽을 맛이었다.

 

값은 오늘 윈체스터에서 받을게요. 올거죠?”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숀은 브라이언의 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허둥지둥 짐을 챙겨 나왔다.

 

놀랍게도. 리즈와 헤어진 숀은 그 날. 단 한번도 리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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