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은 복근은 커녕 바지 벨트 위로 오동통하게 밀려나오는 뱃살을 보고 매일 다이어트를 걸심했다. 문 밖을 나서기 전에 남색 목도리를 두르고, 보풀이 살짝 일어난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치고.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기른 수염 사이로 아주 살짝 통통해진 볼살을 보며.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기필코 살을 뺄 것이라고 결심한다.

   그 날은 더더욱 그랬다. 매일같이 킬킬대며 '너 요즘 좋은가보다? 살이 붙었네.' 라고 하는 게리. (게리 딴에는 칭찬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군 말 없이 토스트를 씹어 먹던 엔젤까지 잭에게 바지 사이즈가 몇이냐고 물어왔다. 잭은 토스트 위에 무화과 잼을 펼쳐 바르다가 엔젤의 질문에 손에서 잼 나이프를 놓쳤고, 상처받은 얼굴로 '그렇게 말 할 필요까진...' 우물거리다가 식탁을 박차고 나왔다. 오는 봉급으로 가족에게 옷을 하나씩 선물해 주려던 엔젤에게 있어서는 정말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앞에 새우구이를 맛있게 하는 베트남계 음식점이 새로 생겼어요. 같이 갈래요?"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받고도. 그 결심도. 곧 잭의 사랑스러운 연인인 데이빗의 권유에 무너지고 만다. 같이 갈래요? 그 말에 안 돼요. 데이빗, 저 요즘 살 쪄서 당분간은 식단 조절을 해야돼요. 란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잭은 냉혈안이 아니었다. 적어도 잭은 데이빗에게 그런 말을 할 수있는 사람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죠! 저는 양념보다 소금을 친 새우가 더 맛있더라구요."

   그런 이유로, 잭의 다이어트 결심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간다. 데이빗은 잭이 잘 먹는 모습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잭은 자신을 볼 때 데이빗의 날카롭고 커다란 눈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을 사랑했다.

   소금구이. 양념구이. 그리고 새우만 먹으면 질린다는 이유로 작게 잘라 구운 소고기까지. 잭은 어느새 테이블 위 가득 찬 음식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엉엉 울었다.

   데이빗은 사고로 반 쪽 몸을 제 몸처럼 쉽게 쓰지 못했다. 잭은 껍질이 까서 나오지 않은 새우를 하나하나 발라 데이빗 앞의 식기에 가져다 주었다. 살살 녹는 통통한 새우의 살에 데이빗은 다시 한 번 이 곳에 잭을 데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식당을 알려준 이단에게 고마워했다. 몇 개를 더 집어먹던 데이빗은 막상 잭이 새우와 고기를 안 먹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알러지 있어요?"
   "아뇨, 좋아해요. 천천히 먹고 있는 것뿐이에요."

   확실히 잭은 그 전처럼 열심히 먹지 않았다. 데이빗이 잭의 고민을 알 리가 없었다. 잭은 실제로 새우를 먹으러 오기보다는 박살을 내러 온 사람마냥 집중해서 새우를 까고 있었다.

   "잭."
   "네?"
   "먹기 싫으면 말해요. 나가요. 우리."
   "저는 데이빗이 먹는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러요."
   "잭, 우리 사이에 벌써 그런 사소한 거짓말 쌓이는 거. 정말 싫어요. 무슨 일 있어요?"
   "정말 없는데..."

   결국 데이빗은 포크를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내려 놓았다. "잭."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잭의 이름을 불렀다. 잭은 나름 '요즘 살이 찐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에 걱정을 하는 남자처럼 보일까 걱정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데이빗을 속일 각오는 더더욱 없었다. 끈적한 소스가 묻은 손가락을 휴지로 닦으며 결국 실토했다.

   "요즘 너무 잘 먹었더니... 살이 좀 쪘어요."

   데이빗은 잭이 그런 말을 할 거란 상상을 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그는 잭이 남들보다 길쭉하고 마르면 말랐지 통통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황해 새우가 식도에 걸리는 느낌이었고, 데이빗은 두세번 기침을 했다. 그 기침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는지 잭은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싫어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미안해요."
   "아, 아니. 싫어한다고는 한 적 없어요. 잭이 그런 고민을 한다는게 너무 의외여서."
   "의외요?"
   "한 번도 살이 쪘다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그건 그렇고 저야말로 미안해요. 데이트 한다고 데려가는 곳마다 이런 음식점 이라서. 몸이 이렇게 된 이후로, 뭘 해야 성공적인 데이트가 될지 조금... 혼란스러뒀거든요."

   데이빗은 말을 조심스럽게 고르기 위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제 몸 때문에 일반적으로 데이트 하는... 산책이라던가, 운동이라던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나는게 이런 식당밖에 없었고."
   "아뇨. 절대 아니에요. 데이빗, 당신과 함께 하는 식사는 매일 최고고, 항상 새로워요. 내 말은 이렇게 먹기만 하는 데이트를 하다가는... 제가 조만간 굴러다닐 것 같았거든요. 데굴데굴 구르면서. 인사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저는 잭이 저와 함께하는 어, 데이트를. 지루해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혀요! 항상 짜릿한걸요. 좋아요, 우리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내일부터 당신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센트럴 파크도 걷고, 캐치볼도 하고. 지치면은 근처 서점이라도 들어가서 잡지나 보는 거예요. 데이빗은 여기서 절대로 내 속도가 잭에게 방해가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고."

   잭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보다는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인 것 자체가... 좋으니까요."

   그 말에 결국 데이빗은 미소지었다.

   "잭, 당신은 너무 로맨티스트예요."
   "칭찬이죠?"
   "물론. 얼른 먹고 근처라도 걸어요. 살 찌는 건 내일부터 걱정하고."
   "사실 아까부터 먹고싶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데이빗이 건내주는 새우는 식어 차가웠지만 맛있었다.
   잭이 속도를 내자 식사는 금방 끝이났다.



   "화장실 가서 손 좀 닦고 올게요. 아무래도 껍질 때문에 좀 끈적이네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안 춥겠어요?"

   데이빗은 고개를 저었지만 잭은 곧바로 가디건을 벗어 데이빗에게 건냈다. 잭은 가디건 안에 깔끔한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데이빗은 바로 앞에 놓여져있는 벤치 위에 앉았다. 오랜만에 신경을 쓸 일이 많았던 탓인지 저려오는 팔을 주무르며 잭을 기다렸다. 평일 오후였지만 이단의 말대로 동네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었는지 유동인구가 많았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한지 몇 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데이빗은 카운터에서 계산하려는 듯이 서성이는 잭을 발견했다.

   "잭, 계산 했어요."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데이빗은 벤치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그의 등 뒤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잭?"
   "어?"

   잭과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잭이 아니었다. 벤지? 언젠가 들었던 그의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떠올렸다. 놀라서 휘청이며 뒤로 넘어갈 뻔한 데이빗을 벤지가 빠른 반사신경으로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잭인줄 알았어요. 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음, 혹시... 데이빗?"

   벤지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간 이단에게서 들었던 꽤 최근에 사고가 나 몸이 불편한 막내동생 이야기를 떠올렸다. 데이빗은 벤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며 고개를 까닥였다.

   "안에 입은 옷이 똑같아서... 헷갈렸어요."
   "정말요? 쌍둥이라서 그런지 가끔 이런 거까지 겹쳐서 죽겠다니까요."
   "보기 좋네요."

   말하는 동시에 데이빗은 로이와 이단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의식적으로 잊어버렸다.

   "인사라도 하고 갈래요?"
   "아니에요. 어차피 금방 나갈거예요. 여기 맛있더라구요. 맛있게 먹고 즐거운 데이트 해요. 벤지."
   "데이빗두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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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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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인일 경우) 트위터로 문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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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페그 필모그래피 숀 오브 더 데드 숀 / 톰 크루즈 필모그래피 칵테일 브라이언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야기는 5분 전으로 돌아간다. 엄마한테 줄 꽃을 연인에게 선물해주고, 언제나 그랬듯이 말실수 한 번.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죄책감들. 결론만 말하자면, 숀은 리즈와 헤어졌다. 항상 겪었던 그런 연인 사이의 말다툼이나 위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숀은 리즈와 진짜로, 정말로, 진심으로. 헤어졌다. 결국 끝을 본 것이다. 진짜 끝.

장식 된 꽃다발은 길거리에 널린 흔해빠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이불과 한 몸이 된 에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윈체스터?” 동시에 숀은 이미 집과 같은 공간이 된 술집의 이름을 불렀다. 에드는 반응이 없었다. 숀은 아무것도 제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고 한탄을 하며 에드의 이불을 거칠게 들췄다.

 

젠장, 오늘은 날 좀 내버려둬,”

 

에드는 어쩐 일인지 기분이 몹시 안 좋아보였다. 평소 같았다면 무슨 일인지 위로를 하며, 거실로 나가 같이 게임 한 판 하자고 능청맞게 받아쳤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숀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에드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숀은 윈체스터 앞에서 자조 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기름칠이 덜 된 문을 힘껏 열었다. 문 귀퉁이에 달린 싸구려 종이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울렸다. 그 소리에 윈체스터의 사장인 존은 문 쪽을 힐끗 봤지만 곧 신경을 끄고 제 할 일을 했다. 숀은 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들고 존과 멀리 떨어져 있는 바에 앉았다. 누구랑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누구랑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든 손으로 존을 부르려했지만 존은 고기를 손질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안녕, 친구. 바로 주문 할래요?”

 

숀은 밑에서 불쑥 튀어나온 정수리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실제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손에 든 지갑을 그 머리통에 던져버렸다. 이마 한 가운데를 맞고 떨어진 지갑이 바닥에서 뒤집어졌다. 이마를 두 손바닥으로 감싸 쥔 남자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미안해요. 반가워서 인사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요.”

, 안녕하세요?”

이름이?”

.”

반가워요. . 오늘부터 윈체스터에서 일하게 된 브라이언이라고 해요.”

 

숀은 브라이언의 커다란 눈을 마주 봤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자신을 쳐다보는 커다란 눈이 부담스러워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자연스럽게 뒤로 넘긴 풍성한 브루넷, 이야기를 언제든 잘 들어줄 것 같이 상대방을 응시하는 녹색 눈동자.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저 미소. 이 시골 동네에 있을 평범한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브라이언은 바닥에서 지갑을 주워 숀에게 건냈고 숀은 그 안에서 지폐를 꺼내 브라이언에게 건냈다.

 

맥주랑, 위스키 샷으로 세 개요.”

 

브라이언은 숀이 건내는 돈을 받아들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비췄다. 바에 가지런히 놓인 꽃 장식만 멍청하게 쳐다보던 숀은 그런 브라이언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번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브라이언은 축축하고 차가운 잔에 담긴 맥주와 독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잔 세 개를 숀의 앞에 놔주었다. 숀은 제 눈 앞에 있는 술들을 한번에 들이 마셨다. 거의 목구멍에 부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정도로. 브라이언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숀의 얼굴이 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구요?”

 

밖은 밤바람이 쌀쌀했다. 윈체스터는 그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해줬다. 그 안은 술을 시키거나 서로의 험담을 하며 낄낄대는 소리로 가득했다. 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브라이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숀에게 하는 질책은 아니었다.

 

병 째로 가져다 줘요.”

, 지금 당신 꼴을 보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닌 거 같아요.”

 

숀은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였다. 브라이언은 새하얀 천으로 광이 날 정도로 닦던 유리잔을 내려놓고 숀을 위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고민했다.

 

잊어버려요. , 맥주가 있고 안주도 있잖아요?”

 

숀은 바에 얼굴을 처박고 어깨를 들썩였다. 브라이언은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젠장, 맥주고 안주는 무슨! , 봐요. 저는 지금 원래 살던 곳에서 어느 미친 여자한테 걸려서 온 동네에 제 섹스 라이프고 뭐고 다 소문났어요. 그리고 가게에서 제가 믿었던 스승과 주먹다짐을 했구요. 덕분에 그 쪽에서 바텐더 일은 하지도 못하게 생겼다구요.”

 

브라이언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못 알아챌 정도로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술을 먹은 것은 숀인데 자신이 대신 취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실망감에서 비롯했다. 어울리지 않게도 숀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모습이 프로답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제야 숀은 바에 눌린 얼굴을 떼고 눈물 가득한 눈을 굴려 브라이언을 쳐다보았다.

 

공부는 포기했고, 나이는 먹어가고. 결국 도망치다시피 온 곳이 이 곳이에요. 이 동네에 그럴듯한 술집에 취직한 다음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지금 제 모습을 봐요. 여자친구와 네 시간 전에 헤어진, 맥주와 싸구려 위스키만 마시는 술주정뱅이와 이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잖아요.”

 

브라이언은 말을 마치고 숀에게 얼음이 담긴 차가운 물을 건내주었다. 숀은 훌쩍이며 브라이언의 호의를 받아 마셨다.

 

,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계속 축 쳐져있지는 말라는 말이었어요.”

 

숀은 훌쩍임을 멈췄다.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윈체스터의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남은 술을 한번에 털어넣은 숀은 이전부터 대답이 없었다. 브라이언은 존에게 눈인사를 하고 옆에 빼놓았던 외투를 걸쳤다. 존은 손질한 고기 중 남은 것들을 종이봉투에 담아 브라이언에게 던져주었다. 브라이언은 휘파람을 불며 고기가 든 봉투를 챙겼다. 물론 바에 거의 눕다시피 한 숀을 챙기는 것도 있지는 않았다.

 

이봐요. ? 일어나서 갈 수 있어요?”

“... 당연하죠.”

 

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기세에 밀려 바닥에 엎어졌다. 브라이언은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바에 덩그라니 놓여진 지갑을 챙겨 손의 외투에 넣어준 다음, 그의 허리를 잡고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집이 어디에요?”

집이요? 에드와 피트가, 기다릴텐데... 오늘은... 그냥... . 방금 뭐라고 물었어요?”

집이 어디냐구요.”

 

브라이언은 숀을 다시 한번 불렀지만 숀은 눈을 꾹 감고 상황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브라이언은 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브라이언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숀은 결국 바닥에 여지껏 먹은 술들을 다 토해냈다.

 

 

결국 브라이언은 윈체스터에 흩뿌려진 그 흔적들을 다 치우고, 토하고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숀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관자놀이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바닥에 그를 눕혔다. 새로운 동네에 걸맞는 성대한 환영식이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손님이기도 한 그를 길바닥에 내버리고 도망갈 수 없었다. 무거운 짐 ()을 끌고 온 덕에 홧홧하게 올라오는 열기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브라이언은 단정하게 입은 셔츠를 벗고 숀을 침대에 눕혔다.

 

 

으악!! 숀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깼다. 입 안에서 텁텁한 기운이 맴돌았다. 심지어 눈 앞에 보이는 천장은 처음 보는 패턴이었다. 속은 쓰리고, 무슨 짓을 한 건지 눈은 침침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어났네요?”

 

브라이언이 새빨간 음료가 담긴 잔을 내밀며 눈썹을 까닥였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숀은 모든 것이 기억났다. 부끄러울 정도로. 차라리 기억이 안 났으면 좋았을텐데. 브라이언은 숀에게 얼른 받으라는 듯이 그 잔을 흔들었다. 점도가 높은 새빨간 액체가 잔 안에서 흔들렸다. 숀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것을 받았다.

 

숙취에 좋은 술이에요.”

 

. 그 단어만 들어도 속이 미식거리는 기분이었지만 브라이언의 정성을 생각하여 숀은 그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브라이언은 잘 받아 마시는 숀을 보며 웃음지었다. 토마토 맛이 입 안에서 강렬하게 맴돌았다. 숀은 눈을 꿈뻑이고, 입을 침으로 축였다.

 

, ... 어제는 죄송했어요.”

 

브라이언은 숀의 손에 들린 빈 잔을 회수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숀은 더 죽을 맛이었다.

 

값은 오늘 윈체스터에서 받을게요. 올거죠?”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숀은 브라이언의 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허둥지둥 짐을 챙겨 나왔다.

 

놀랍게도. 리즈와 헤어진 숀은 그 날. 단 한번도 리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톰 크루즈의 필모그래피 콜래트럴의 빈센트 / 사이먼 페그의 필모그래피 몹시티 핵키 내쉬


성공했다. 그 말을 제외하고 할 수 없는 말은 표현력의 부족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돈을 받았고, 필름을 넘겨주었다. 좆같은 미키. 좆같은 마피아들. 결국 승리 한 자는. 내쉬 해키였다. 바로 나라고 씨발. 좆같이 두툼한 봉투를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아니 마치 핀이 뽑힌 수류탄이라도 되는 듯 소중히 들어 올렸다. 결국 그것은 터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터지지 않을 것이다. 폭탄을 제어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남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나를 지킬 수 있는 핵폭탄이 되는 법이었다.


바닥에 늘어져있는 세 구의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동차에 올라탔다. 정황은 완벽했다. 고위 관직에 올라가 있는 두 명의 마피아와, 경찰계에 떠오르는 차기 유망주 하나의 총격전. 1925년의 런던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그 곳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코미디언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 완벽한 일이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긴장으로 인한 악력으로 인해 손 등에는 굵은 핏줄이 거세게 올라와있었다. 시동소리에도 겁을 집어먹으며 언덕을 내려와 공중전화를 찾았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다 두 번이나 그것을 놓쳐버렸다. 초조했다.


자스민?”


여전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 대신 신호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제발, 제발. 목이 말랐지만 바싹 마른 입에서는 침이 나오지 않았다. 제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애원했다. 여전히 전화는 받지 않았다. 튕겨져나오는 동전을 주워 넣고, 신경질적으로 공중 전화의 버튼을 쾅쾅 때려 눌렀다. 신호음이 끊겼다.


자스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엇을 그리 애타게 찾나.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수화기를 떨어트렸다. 수화기 속에서 그 목소리가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듣지 않았다. 들을 수가 없었다. 억울함에 눈물이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이유를 되물었지만 대답 해줄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한참을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현실로 닥친 공포감이 와닿았다. 난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다. 당장 이 좆같은 나라를 떠나고...


그 이후의 핵키 내쉬는 무엇을 해야하지?

살고싶었다.

 

사업을 시작했다. 목숨 값 천 만달러는 시작에 불과했다. 목숨을 지키는 데에는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주변에 대한 의심은 깊어져갔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LA에 도착해 협박으로 얻은 돈으로 차린 것은 작은 연예관련 사업이었다. 시작은 미묘했다. 하지만 수를 읽는데 탁월한 능력 덕분인지 사업은 점점 세를 불려갔다. 그 것이 몸집을 키울수록 비례해 겁도 나날이 커져갔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옷차림, 새로운 성격. 살고 싶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커질수록 해키 내쉬는 점점 죽어갔다.


새로운 경비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 시스템은 수 천 개의 cctv가 사장님께 위협을 가하는 모든 것들을 잡아내고, 무엇보다 현존하는 열쇠 중 이 잠금쇠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겁니다.


그래서, 이게 날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란 말이요?”

당연하죠, 사장님. 이 시스템은 ...”

당장 계약하죠.”

설치는 바로 지금 가능합니다.”

 

그 계약서에 찍은 도장은, 생각해보면 그 계약서도 가짜였겠지만. 손에 딱 들어맞는 권총을 쥔 남자가 총을 들고 집 안으로 처들어올 수 있게 하는 열쇠가 되어주었다.

 

제발, 제발...”

그렇다면 그 녀석들을 건들이지 말았어야지.”

죽이지, 죽이지 말아주세요. 살려달라구요. 살고싶어요.”

멍청한 짓이었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얀 머리는 총구를 겨눴다. 턱을 힘 껏 처들고 양 발으로 땅바닥을 밀어 이 상황을 피해보고 싶었지만 그 총구와, 빌어먹을 하얀 머리는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마구 떨리고 이제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놈은 석고상처럼 가만히 서 총만 겨눈체 우스운 꼴을 관찰하는 듯 싶었다.


그 새끼들이 돈을 얼마를 줬죠? 제가... 그 두 배를... 드릴게요.”

아쉽게도 이 세계에서는 신용이 중요하지.”

나는 아내도 잃고, 모든 걸 다 잃었어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듣기에도 우스웠다. 하지만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냥 목숨만은 온전히 내가 가지고 싶다구요...”


한참이 지났지만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총구를 들이막은 두 손바닥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려왔다.


“핵키 내쉬.”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사형 선고를 위해 부르는 이름이라도.


최근에 뉴욕에 갔던 적이 있었지. 난 도시가 싫지만, 복수를 위해 부르는 놈들의 위치는 대부분이 도시더군.”


그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한 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다이아에서 공연하는 당신을 봤어. 그 이후로도 그 곳을 찾아갔지만 보이지 않더군. 몇 주동안 머물며 당신을 찾았지만, 없었어. 어디 있었지?”

다이아? , ... 저는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곳이 없어요. 그냥, 돈만 주면 돌아다니지... 저도 그 곳은 그, 두 번 밖에 안 가봤거든요.”

그 쓰레기같은 도시에 몇 번이나 들렀지만, 흔적도 없더군. 그 때 연락이 왔지. 당신의 사진을 주며 당신을 찾아 죽여 줄 수 있냐고. 꽤 위험한 조직을 건드렸더군.”


그는 드디어 총을 갈무리해 집어넣었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바닥에 바싹 붙였던 등을 떼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뉴욕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찾기는 쉬웠지.”

, 저를 죽이지 않을 건가요?”

죽이지 않는다고? 아니.”

, ...”

살려두는 거라고 하지.”


원하던 대답을 들었지만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의문을 감출 수는 없었다. 목구멍을 혀뒤축으로 막아 튀어나오는 말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

? 불만이 있는건가?”

아뇨! 불만이라니.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단순히, 궁금해서...”

다이아에서 들은 당신의 농담이 재밌었다고만 해두지.”

꿈을 꿨어요.”


데이빗은 앞에 놓인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목구멍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찻잔은 미지근하고, 홍차는 뜨거웠으며 말을 이어가기에 모든 것이 최적의 시기였다. 단물 빠진 체리맛 풍선껌.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맛의 홍차였다. 연갈색 액체를 들어 식도를 적시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타임스퀘어를 미친 듯이 달리는 꿈. 그 곳에서 유일하게 숨쉬고 있는 사람은 데이빗 혼자였다.


데이빗의 눈 앞에서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꿈을 꿨었던 그 날 밤의 상상을. 의사를 바라보던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하게 변했다. 의사는 인내심이 깊었다. 일그러진 얼굴 탓에 발음이 불분명한 데이빗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들었지만 그는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측은하다는 시선도, 동정이 담긴 말도 건내지 않았다.


그게 꿈이란 것을 자각한 이유는 ... 그 곳에 사람이 전혀 없어서도 아니고,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아서. 그런 시시한 이유가 아니었어요.

거기서는 제 몸이 멀쩡했거든요. 절뚝이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고. 내가 원래 가졌던 몸처럼."

꿈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있는 깊은 무의식 속을 표현하고는 하죠.”

프로이트의 이론을 말할거면 당장 집어치워요. 히스테리? 그런건 이미 많이 겪었고, 그 죽은 양반보다 제가 더 잘 알걸요.”

데이빗.”

마음속 깊은 욕망이라. 좋죠. 아무튼, 꿈인걸 깨달았을 때는 저는 멈출수도 없고 그 꿈에서 깰 수도 없더군요. 다리는 움직이고 있고, 꿈이란걸 깨닫자마자 점점 아파오고. 거울이 없었지만 볼 수 있었어요. 제 얼굴이 점점 불에 타고 자동차 파편에 찔리고 일그러지는 것도.”


일 월의 날씨 탓에 창문을 다 닫아 놓았지만 어디서 바람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다. 데이빗은 춥다고 말하는 대신 이미 다 식은 홍차를 마시는 것을 선택했다.


그 고통이 느껴졌어요 ... 꿈인데. 그 거지같은 통각이 제 기능을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이게 정말 꿈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거부. 분노. 슬픔. 그 각가지의 감정이 저를 휩쓸고... 그 다음 단계는 포기였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 바닥에서 그걸 발견했어요.”

파란 목도리요?”

맞아요. 저번 상담에서 말씀드렸던 그거요.”

오늘도 하고오셨네요.”

그걸 주워서 둘렀죠. 알 수 없는 안도감. 약을 먹은 것 마냥 고통은 없어지고 ... 소피아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 그리고 잭. ... 눈 앞에 잭이 있었어요. 그는 저를 안아줬죠. 그냥 친구를 안아주듯이. 포옹의 정의를 알려주듯이. .”

행복했나요?”

행복이요? 질문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은데요.”

말 그대로에요. 당신이 그 꿈에서 느낀 것을 떠올려봐요. 목도리를 두르고, 잭이 당신을 안아줬을 때. 당신은 소피아가 떠올랐나요? 아니면 지금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느껴졌나요?”

“...전혀요.”

사람들에게 따라 행복의 의미는 다 다르죠. 데이빗, 너무 완벽하고 모든게 정확해야 한다는 것도 강박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고...”


데이빗은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진동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어정쩡한 자세로 겨우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 데이빗이 전화를 받으려고 액정을 누르기 위해 손가락을 뻗었을 때 진동은 멎어버렸다.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버튼을 누르려고 시도를 했을 때 데이빗은 무심결에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찬 바람이 세어 나오던 창문. 두툼한 코트에 장갑까지 낀 잭이 그를 향해 열심히 손바닥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데이빗은 잠시 고민하다가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잭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고 벽 한 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았다. 다섯시 오 분. 이미 상담시간이 오 분 정도 초과된 상태였다. 푹신한 쇼파에서 일어나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의사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오늘도... 유익했어요. 닥터 헥토르.”

그랬다면 다행이군요.”

다음 상담은 이번에 똑같이 이 주 뒤 이 시간에 보면 되는 건가요?”

... 이번에는 제 사정 때문에 아마 한 달 가량은 상담소에 못 있을 것 같아요. 휴가를 갈 예정이거든요.”

.”

남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직업이다보니 저도 가끔은 전환이 필요해서요. 다음 상담은 제가 다시 영국에 돌아오면, 그 때 이야기하죠. 얼른 가보세요. 잭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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