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젠장, 도시로 나가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니까! 윽박지르는 말투로 인상을 가득 쓰는 모습에 벤지는 듣기 싫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어댔다. 사실, 벤지의 눈앞에는 잔뜩 일그러트린 얼굴을 한 마티를 한 구석으로 밀치고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잘생긴 이마, 잘생긴 눈, 잘생긴 코 (하나하나 생각하려다가 너무 많아서 관두었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 볼 때 정말 마법처럼 빛나던 맑은 시선.

 

마티, ... 모르겠어.”

대체 왜 그러는건데?”

 

그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표정이었다. 눈동자는 하늘 위로 고정한 체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벤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 아무래도 이 곳에 남아야 할 것 같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사랑에 푹 절여진 벤지는 가시가 잔뜩 박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벤지의 눈앞에 나타난 마법 같은 사람은 이미 그의 마음 속 지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티는 갖은 협박과 약속, 뇌물까지 써가며 벤지를 설득했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벤지는 마법같이 나타났다가 마법같이 사라진 그와 다시 만나기 위해, 그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포옹을 하기 위한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놓은 상태였다. 적어도 이론은 완벽했다.

 

 

당신은 정말 재밌어요.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단은 마법그 자체였다. 은유도, 직유도 아닌 사실이었다.

 

이단, 당신은 정말로 마법 같아요.”

난 진짜 마법인걸.”

 

어리둥절한 이단의 표정에 벤지는 이마를 붙잡으며 웃었다. 이단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모든 것이 말이에요. 실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벤지의 설명에도 이단의 표정은 여전했다. 벤지는 입을 다물고 순간을 즐기는 것을 선택했다. 깍지를 끼고 해변을 걷는 둘의 발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잔뜩 박혔다. 벤지는 발바닥이 따끔해지는 감각에 발가락을 움츠렸다.

 

올라갈까요? 계속 걸어서 그런지 슬슬 힘이 드네요.”

 

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벤지가 한 걸음 발을 옮기려고 할 때, 이단은 자연스럽게 벤지의 허리를 잡고 그대로 뛰어 올랐다. , 세상에. 발끝이 바닥과 떨어질 때의 느낌은 언제 경험해도 좋지 않았다. 그것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위한 것이어도. 벤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단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벤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벤지, 심장이 엄청 빨리 뛰어.”

 

귓가에 가득 찬 바람 소리를 가르고 이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벤지는 대답 대신 이단을 더 세게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이단은 벤지의 행동이 마음에 들은 모양인지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주었다. 벤지의 발끝이 다시 지면에 붙은 것과 동시였다. 이단과 벤지는 해변에서 약 십 분 정도 떨어져 있는 벤지의 작은 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리는 벤지의 몸을 이단이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벤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단을 쳐다보았다.

 

, 위험하잖아요!”

. 벤지. 나는 네 말대로 마법인걸. 널 다치게 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위험 한 행동이었어요.”

 

이단의 눈은 벤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접혔고,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었다. 경쾌하게 들리는 웃음소리에 벤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단, 이단?” 자신의 이름을 여러번 부르는 벤지의 목소리에도 이단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왜 웃는 거예요?”

벤지, 난 네가 너무 재밌어서 웃고 있는 거야.”

내가... 재밌다구요?”

 

이단은 웃는 것을 겨우 멈춘 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벤지를 쳐다보았다.

 

난 네가 너무 좋아.”

 

이단이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벤지는 잊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이단의 대답에 벤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일그러졌다. 이단은 심상치 않은 벤지의 표정을 뒤늦게 눈치챘다. “벤지?” 벤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이단은 불안한 표정으로 벤지의 얼굴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짭조름한 눈물이 손바닥에 닿았다.

 

왜 우는 거야?”

, 당신이 좋아요. 이단.”

 

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는 너무 달라요. 나는, 인간이고 이단은...”

 

보석이란 단어는 실체가 되어 벤지의 목을 막았다.

 

난 이단을 사랑해요.”

나도 널 사랑해. 벤지.”

난 이단과 영원히 있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어.”

 

벤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 뒤 이단을 끌어안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이단의 어깨로 스며들었다. 이단은 조심스럽게 벤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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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우펜은 자신의 존재가 독일에, 더 나아가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을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전통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위관이란 지위로 참전 한 자랑스러운 독일인 이었고, 최전방에서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신념으로 독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슈타우펜은 자신의 손을 자른 병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안개가 끼어 있는 것 마냥 탁하게 슈타우펜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전투 중 대량 생화학 무기에 중독되어 슈타우펜의 간이 병동으로 이송 된 젊은 청년이었다. 독한 가스는 뇌신경까지 침투하여 군인들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무언가를 건드린 것처럼 마치 살육만을 반복하는 괴물처럼 제 옆에 있는 적과 아군을 구분 못하고 모두를 죽였다. 슈타우펜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가스에 중독되어 살아남은 몇몇 군인들을 병동으로 이송시키기를 원했다. 상부도 멀쩡한 전투 인원이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슈타우펜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빠른 시일 내로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단순한 억제구로 군인들을 묶어둔 체 쉽게 실험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그것은 슈타우펜의 오만이었다.

 

그의 발밑에 손가락 세 개가 떨어져 꿈틀거렸다. 

자신의 절단부를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슈타우펜은 덜덜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추며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중위, 당장 나가서 지원을 요청해주게나.”

하지만 대위님이...”

지원이 필요하네.”

 

다른 한 명을 묶어둔 억제대가 비명을 지르며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슈타우펜은 아직 멀쩡한 두 다리로 뒷걸음질을 쳤다. 허리춤에 피스톨이 있었지만 큰 소리를 듣고 아직 기절해있는 군인들이 흥분하여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슈타우펜은 지원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다섯 명 정도의 정신을 잃은 젊은 군인들과 대치했다.

 

 

확실히, 두 손을 잃은 자네가 군의관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자네가 여태까지 군에 해 준 일은 모두가 알 것이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

명예 제대를 하는 것이 자네나 우리나, 모두에게 좋을 것 같군.

 


찰리는 셔츠에 튀긴 핏방울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내며 폐건물 밖을 나섰다. 온 몸이 축축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젠장! 한 시간 전만해도 쨍쨍하던 밖은 변덕이라도 부리는 모양인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차는 이십 분 떨어진 거리에 대 놓은 것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해야 할 의뢰는 없었으며 늦장을 부려도 문제 없었다. 거기가지 생각을 정리한 찰리는 다시 한 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냈다. 공기가 습한데다 바람까지 부는 탓에 라이터는 제대로 된 동작을 하지 않았다.


담뱃불을 붙였을 때, 찰리는 발끝에 돌부리가 체이는 소리를 들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은 찰리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고인 빗물에 담배를 비벼 껐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허벅지에 꽂아 놓은 리볼버를 잡아 쥐었다. 목격자는 귀찮은 일들을 일으키곤 했다. 일부러 목격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목표를 폐건물로 유인 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거리며 찰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귀찮은데다가 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도둑고양이거나 건물에서 떨어진 벽돌 따위의 것이기를 바랐는데, 찰리의 시야에 비에 홀딱 젖은 남자가 들어왔다. 찰리는 총을 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두 번째 손가락을 방아쇠 위에 얹고,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정수리 한 가운데를 가늠했다. 찰리는 짧은 시간의 관찰 결과, 그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총을 다시 허벅지에 꽂았다. 단순한 변덕이었다.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그는 양 손을 피딱지가 굳은 붕대로 둘둘 감은 부상자였다.

 

이봐.”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귀까지 안 들리는 건가?”

듣고있네.”

왜 비를 맞고 있는 거지?”

비를 피할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확실히 정상은 아니어보였다. 찰리는 그 목소리가 익숙하다 느꼈다.

 

언제부터 이 곳에 있었지?”

자네가 이 곳에 들어올 때부터.”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총성이 들리더군.”

 

비가 그쳤다. 찰리는 얼굴을 굳히고 그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대화는 끝이 났다. 두 번째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 위에 올려 있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건 힘들지만 나중에 일이 커지는 것 보다는 훨씬 쉽지.”

 

찰리는 푹 젖은 그의 턱을 쥐어 자신과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잡아 들었다. 두 손만 없는 병신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보니 한 쪽 눈도 하얀 공막이 드러나 있었다. 찰리는 그의 턱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기억 속을 뒤집어 놓았다. 천천히 깜빡이는 눈이 익숙했다. 찰리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몇 분 늦췄다. 익숙한 억양에, 익숙한 얼굴.

 

슈타우펜 대위?”

“...누군가?”

 

찰리는 슈타우펜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흥미로운 얼굴로 그를 관찰했다.

 

군의관이 왜 이 지경까지 된 거지?”

누구냐고 물었네.”

넌 날 모를걸. 손바닥 구멍 난 걸 꿰매준 직후에 바로 탈영했거든.”

 

찰리는 군 이야기가 나오자 몸을 흠칫 떠는 슈타우펜을 잡아내었다. 찰리는 삐딱하게 서있던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물었다.

 

왜 그런 꼴이 된 거지?”

작은 사고가 있었네.”

하긴 그런 꼴로는 의사하기는 어렵지?”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슈타우펜의 표정은 무거웠지만 찰리는 상관없다는 듯이 낄낄 웃으며 총을 집어넣었다.

 

안 봐도 뻔하잖아. 그렇게 충성을 다하더니 군에서 버림받은 개가 되어버렸네.”

 

찰리의 말투는 유난히 신나있었고, 슈타우펜은 그 방정맞은 말에 대답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갈 곳은 있나?”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이 머금고 있던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천 해 줄 만한 직업이 하나 있긴 한데...”

 

찰리는 며칠 전 뒷골목에서 칼에 난도질 당한 시체로 발견 된 장의사 하나를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슈타우펜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찰리를 쳐다보았다.

 

할 거 없으면 따라오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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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간단했다.

 

이단을 부르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는 일이 아니었다.

 

연락을 하는 게 곤란하게 됐어.”

어디에 있는데요?”

정신병원.”

 

젠장, 벤지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정신병원이라니, 그가 거기에 왜 있는 건데요? 책상에 막혀 웅얼거리듯이 들리는 벤지의 말에 루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센프란시스코에서 나타난 유령을 잡다가 작은 오해로-”

거기까지는 안 궁금해요. 아니, 나는 이단이 은퇴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죠!”

 

나를 버리고 말이에요. 벤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뒷말을 겨우 집어 삼켰다.

 

스테이 퍼프트 마시멜로우 맨의 잔재가 뉴욕 근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모습에 깔끔하게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 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다시 모습을 드러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일 이후로 고스트 버스터즈는 해체되었고, 이단은 팀이 해체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감췄다. 팀에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이단이 사라지자마자 팀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단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팀에 합류한 벤지, 이단의 친한 친구인 루터, 돈 때문에 일을 시작한 브랜트는 이단이 사라지자마자 각자의 핑계를 대며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갔다.

루터가 한 뼘 크기의 사악한 악마 (귀여운 세라복의 마시멜로우 맨의 모습을 한를 본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루터는 한숨만 푹푹 쉬어 대는 벤지의 어깨를 툭툭 쳐댔다. 벤지는 불퉁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단이 거기에 있다는 건 언제 알았어요?”

사라졌을 때부터.”

또 나만 모르고 있었구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한테는 중요해요.”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물론 벤지에게 남은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단, 정신이 들어요?”

 

한 치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바싹 묶어놓은 구속구가 이단의 손목과 발목에 흔적을 남겼다. 벤지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흉터를 없앨 수 있다고 믿는 것 마냥 이단의 손목을 쓸어댔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약물에 취해 헤롱거리는 이단의 모습을 보는 건 그에게 있어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머리가 아픈 모양인지 이단이 작게 신음했다. 벤지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먹였다.

 

벤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에 벤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얼굴을 감싸 쥐는 손이 거칠었다.

 

으응, 잘 지내는 거 보니까 다행이야.”

잘 지낸다구요?”

 

소리를 빽 지르자 이단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마 머리가 아픈 탓이겠지. 벤지는 놀라 입을 다물었다. 벤지, 조금 작게 말해줄래? 벤지는 괜한 심술에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더 나아가 특유의 빠른 말투로 이단을 쏘아댔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간 곳이 겨우 거기예요? 주변 사람들 걱정하게 만들어놓고 지금 그런 말이 아주 잘 나오는 거 보니까 이단은 아주 멀쩡한 것 같네요. 잘 지냈는지 안 물어봐도...”

 

사실, 이단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프리스비 안에서 나타난 고대의 악마를 죽이는 법도, 박물관에 전시 된 사탄의 저주가 담긴 물건을 안전하게 파괴하는 것도. 그리고 이단은 무엇보다 벤지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벤지의 뒷덜미를 감싸 쥔 손을 내리 눌렀다. 엉겁결에 이단을 덮치는 모양세가 되어버린 벤지는 당황하며 몸을 뒤로 뺐다

물론 그것은 시도로만 남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의 입맞춤은 벤지의 입을 봉인하는 것에 아주 적합한 행위였다.

 

,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이단은 벤지의 이마에 한 번 더 입 맞춘 뒤 나른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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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 사라졌다.

벤지는 텅 빈 집을 황망히 쳐다보았다. 허리를 숙여 신발의 뒤꿈치를 잡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한 입 베어 문 빵 한 조각과 한 모금 남긴 우유가 담긴 유리잔 따위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배기관을 타고 내려간 모양인지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틀을 내려다보았다. 먼지가 쌓인 그대로 손자국이 나있었다. 사실, 창틀로 탈출을 감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항상 있던 일이었다.

벤지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었다.

이단이 들어가지 못하게 잠가 놓은 방문을 열쇠를 이용하여 열었다. 거실과 다르게 텁텁한 냄새가 벤지의 폐부 내로 가득 들어왔다. 발가락 끝에 음료수 캔 몇 개가 치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벤지는 닫아놓은 데스크톱을 열어 화면이 뜨기를 기다렸다. 뻑뻑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한참동안 기다렸다.

벤지가 IMF에 들어 간 것은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덕분에 이단 헌트를 만났으며 동경하던 그와 같이 일할 수 있었고, 그와 평생을 같이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몰랐을 위치추적과 같은 간단한 범법행위를 손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도.

벤지가 이단 헌트의 어깨에 위치추적 칩을 심어놓은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근처 공원을 가리키는 빨간 점이 반짝였다.

 

이단!”

 

이단은 공원 한 가운데에 있는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이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등 뒤로 다가갔다. 등 뒤에서 이단을 건드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단이 가출을 감행했던 첫 날, 땀에 잔뜩 젖은 체 이단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벤지는 자신을 덮치는 줄 알았던 이단에게 잡혀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앞으로 가 얼굴을 비췄다.

 

걱정했어요.”

 

이단은 말이 없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이단은 그제야 벤지를 쳐다보았다. 제 말에 반응을 해 준 것은 또 오랜만이라 벤지는 조금 웃을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벤지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위험하게 창밖으로 나가면 어떡해요. 아니, 설마 아직도 한창 때 인줄 아는 건 아니죠? 허리 삐끗하면 치료도 어렵다니까.”

 

이단은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벤지는 이단이 자신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른 집에 들어가요.”

미안해요, 당신이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아.”

 

벤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뭐라 해야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저예요, . 벤자민 던이요. 당신의 동료, 당신의 친구, 당신의 애인. 당신의 보호자. 둘 사이로 한참이나 침묵이 감돌았다. 무거운 침묵, 달싹이는 입술,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

 

벤자민 던이에요.”

벤자민?”

벤지라고 불러도 좋아요. 이단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벤지.”

잘했어요.”

 

벤지는 조심스럽게 이단의 손목을 잡았다. 뿌리치는 일은 없었다. 이단은 계속해서 벤지의 이름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집에 얼른 가요.”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기다리는 거라도 있어서 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벤지.”

벤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한 번 더. 벤지는 이단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내가 아는 벤지는 한 명밖에 없는데.”

 

이단은 묵묵히 버텨 섰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집에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벤지는 한참동안 고민하다 이단의 옆에 주저앉았다. 분수대 바깥으로 튄 물방울이 엉덩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이단은 키가 낮아진 벤지를 내려다보았다.

 

같이 기다려줄게요.”

 

벤지는 잡은 이단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이단은 잠시 망설이다 벤지의 옆에 앉았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이단은 말을 고르는 듯싶었다. 벤지는 참을성 있게 그를 기다려주었다. 그가 예전에 자신에게 해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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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단은 제 앞에 있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쌓인 노인의 얼굴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이단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럭비공을 고쳐 잡고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살짝 다리를 굽혔다. 노인은 그 배려에 눈만 꿈뻑이며 이단을 바라보았다.

 

저기,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나도 내 집이 어딘지는 충분히 잘 알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벤자민 던이라 소개 한 노인은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이단은 뒷덜미를 벅벅 긁으며 벤자민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으며 항상 무료하게 이 길을 오가며 운동을 끝마치고 집에 가는 자신을 지켜봐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참이나 우물쭈물 거리며 한다는 말이, 이름도 모르는 당신에게 반한 거 같아요. 봉사를 해 주는 셈 치고 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주면 안 될까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도 못할까요.”

이왕이면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 해줬으면 좋겠는데.”

설명이 부족했나요?”

 

자유분방한 모습과 다르게 이단은 꽤나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치매에 걸린 것 같은 노인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기에는 이단의 심성은 매우 올발랐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자신의 할 말만 하는 노인 앞에서는 그런 착한 심성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단은 결국 다 들릴 정도로 한숨을 쉬고 말았고, 그 한숨에 벤지의 어깨는 더욱 움츠려 들었다.

 

, 혹시 혼자 사는 거예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죠.”

 

부모님. 이단은 노인의 부모님을 상상해봤지만 무덤 속에 있는 시체-그것도 풍파에 녹슬어 뼈밖에 남지 않은. 따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단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 뻔 했지만 곧바로 그것이 매우 무례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쉽게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이단은 여전히 자신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 벤지의 얼굴을 세세하게 쳐다보았다. 지나온 세월을 여실히 보여주듯이 주름이 잡힌 얼굴, 만지면 수분기 하나 없이 버석할 것 같은 피부. 그 속에 있는 초록색 눈동자는 이단의 얼굴이 자신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 마냥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한 말들이 안 믿겨지나요?”

미안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하지만 사실인 걸요.”

이봐요, . 벤자민. 그래서 정말로 저한테 원하는 게 뭐에요?”

 

다른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같은 시간에 매일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원해요. 벤지는 체념한 말투였다. 그 모습은 이단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결국 이단은 백기를 던졌다.

 

좋아요.”

 

벤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노인의 얼굴에서 저런 얼굴이 나올 수 있을까. 잠시 이단은 벤지의 말을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봉사하는 셈 치자. 그렇게 바쁜 것도 없고 말이야. 이단은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속의 외침은 꾹 눌러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든 들어줄게요. 대신 딱 30. 그리고 휴일에만.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불만 없죠?”

 

이단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제 이름은 이단이에요. 이단 헌트.”

 

2. 이단은 벤지와 만난 날을 손꼽아 세어보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공원에서의 첫 만남, 벤지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드린 날. -무덤이 아니었다. 그리고 게임과 만화책 이야기로 신나게 떠들었던 그런 날도 있었다. 이단이 생각하는 것 보다 벤지는 젊었다. 이단과 말도 잘 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벤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젊어지는 듯 했다. 하얗게 샜던 머리카락은 하나 둘 점점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나 차지하고 있었고,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던 주름은 강력한 밀대로 밀어버린 것 마냥 팽팽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벤지는, 믿기지 않지만. 젊어지는 것이 확실했다. 눈썰미가 남들보다 더 뛰어났던 이단에게는 벤지의 사소한 변화는 크게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단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벤지의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진행된다. 이단이 그 절대불변 한 사실을 인정한 날, 벤지와 이단은 그가 노인일 때 만났던 공원의 벤치에서 키스를 했다. 벤지의 시간이 23년이 진행 된 날. 이단의 나이가 32살일 때의 일이었다.

 

3. 벤지. 벤자민은 이단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꽤 부끄러워하고는 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마음에 안 들어? 이단이 웃자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벤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이단의 얼굴을 감쌌다. 벤지의 손등에 새겨진 젊음이 이단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보였다. 벤지는 엄지손가락으로 눈을 감은 이단의 눈두덩이를 살살 쓸어 넘겼다. 간지러운 모양이었는지 이단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단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벤지의 손길을 한껏 즐기다 그의 얇은 손목을 잡았다.

 

벤지.”

난 점점 젊어지고 있어요.”

 

당신이 늙는 것처럼. 벤지는 이단의 얼굴 위로 겹쳐진 세월의 흔적을 제 눈 안으로 담았다. 갓 성인이 된 얼굴을 한 벤지는 얼굴에 걸맞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난 내가 언제 죽을지 항상 궁금하고, 그걸 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이단의 손 안에 부드러운 살결이 만져진다.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벤지, 사람은 모두 다 늙어. 단지 넌 그 방식이 다른 거고.”

 

위로에도 벤지의 얼굴은 풀어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입술을 삐죽이 내민 벤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가끔 보이는 얼굴이 제 나잇대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단은 젊은 애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 내가 심술궂어서 너를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어린 벤자민 던은 상처 입고 집에 갔겠죠.”

 

잠시 말을 고르던 벤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말을 걸었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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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손을 꼽아 가늠하기도 어려운 아주 옛날에. 크고 나쁜 늑대 한 마리가 살았다. 늑대는 자신이 가진 날카로운 송곳니와 거대한 몸집으로 동화 속 사람들과 동물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채우고는 했다. 모든 동화 주민들은 늑대를 싫어했다. 늑대는 그들이 보내는 미움과 분노를 즐겼다. 늑대는 항상 혼자였고, 그럴수록 더 더욱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과 동물 그리고 괴물들을 위협하곤 했다. 늑대는 아주 거대했으며 또, 그 몸집만큼이나 외로웠다.

 

 

왜 아직도 그 일이 해결 안 됐는지 모르겠군!”

 

사무실 안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에 슈타우펜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일은 실정 상 불가능 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푸른수염. 그는 항상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고 애를 쓰는 인물이었다. 슈타우펜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푸른수염은 이미 그의 말을 듣는 척 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그 얼굴은 자신의 패악으로 인하여 빨갛게 일그러져 있었다. 푸른 수염은 위협적으로 슈타우펜에게 다가갔다. 슈타우펜의 앞에 놓여있던 서류뭉치 위에 그의 커다란 손을 올려놓았다. 슈타우펜은 그의 손바닥 아래에 놓여있는 서류와 그의 흉악한 표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만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이 봐, 클라우스. 자네는 참 입으로만 하는 건 잘 한단 말이야?”

 

슈타우펜은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푸른수염은 그 찰나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자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을 것 같나?”

더 이상의 발언은 모욕적인 것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이 마을에 돈을 대 주는 것은 나야. 자네는 내가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돼.”

 

허리를 숙여 앉아있는 슈타우펜과 눈높이를 맞췄다. 푸른수염의 입 꼬리는 비열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세 손가락, 눈 한 짝인 병신이 짐승이나 다를 것 없는 보안관 뒤에서 기세등등 하는 것도 이제...”

 

푸른수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깨를 세게 잡아 누르는 악력에 몸을 비틀며 슈타우펜의 앞에서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세어 나왔다. 이미 그의 어깨는 날카로운 손톱에 긁혀 피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입을 가만히 두는 법은 아직도 못 배웠나봐.”

찰리.”

 

찰리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른수염의 어깨에서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불안한 듯이 쳐다보는 슈타우펜의 눈길에 찰리는 괜히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발언, 지금 굉장히 안 좋게 들리는군.”

보안관 나부랭이는 빠지는 것이 좋아.”

아니. 못 빠지겠는데.”

 

구겨진 셔츠를 소리 날 정도로 털어내었다. 둘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보다 못한 슈타우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 송곳니를 드러낼 것 같은 찰리의 옆에 섰다.

 

그만 하시죠.”

 

푸른수염은 물러날 때를 아주 잘 알았다. 그 때를 알았던 것이 그가 지금까지 살아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그럼, 다음에는 좋은 대답을 바라고 오도록 하지. 슈타우펜은 푸른수염의 시선을 피했다. 푸른수염은 일부러 대답을 기다리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이 봐, 또 그런 식의 말을 한다면 주둥이를 두 갈래로 찢어발겨주겠어.”

 

그의 값비싼 구두는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머리를 긁적인 찰리는 헛기침을 하다가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앞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던 찰리는 자신에게 라이터가 없음을 알고 작게 욕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본 슈타우펜은 책상 구석에 놓여있는 라이터를 집어 찰리에게 건네주었다.

 

고맙네.”

 

찰리는 말없이 라이터를 켰다.

 

 

늑대는 돼지 삼형제의 집을 무너트렸고, 빨간 망토의 할머니를 잔인하게 잡아먹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들 늑대를 싫어했다. 늑대는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포악하게 굴었다. 모두가 늑대를 혐오하고 늑대에게 총과 무기를 겨눴다.

슈타우펜은 동화 속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늑대는 숲 속에 떨어져 정신을 잃은 슈타우펜을 처음 발견 한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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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거울을 들어다 보며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이단은, 결국 생각으로만 하고 있던 그 말을 뱉어버렸다.

“벤지, 나 요즘 살 찐거. 맞지?”

벤지가 당황하다가 그만, 마시던 홍차를 원래의 위치에 주르륵 뱉어버린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아뜨. 혀를 내미는 동시에 벤지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음,”

불만스러운 투였다. 이단은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거울에 턱선을 비추어 보았다. 확실히 날렵하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기에는 조금은 토실토실해진 상태였다. 벤지는 그 뒤에서 찻잔만 잡은 체 눈알을 도록도록 굴렸다. 이단은 거울을 보며 흐음. 이라던가, 으으. 그런 류의 소리를 계속 내었고 결국 벤지는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놓고 이단의 뒤로 가 그를 껴안았다. 거울의 한 쪽 면에 비치는 이단의 어깨 뒤로 벤지의 얼굴이 슬쩍 올라왔다. 이단은 벤지의 차분한 숨이 자신의 목덜미에 닿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일을 그만 두니까, 이게 금방 찌네.”
“하나도 안 쪘, 음. 사실. 3년 전에 현장에서 구를 때 보다는 살이 붙었죠. 우리 둘 다.”

이단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웅얼거렸다. 가벼운 진동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쪽, 쪽. 통통하게 오른 살에 살짝 묻혀버린 쇄골에서부터 톡 튀어나온 목젖까지. 벤지는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힌 이단의 손가락이 벤지의 정수리를 감싸 안아왔다.

“갑자기 왜 신경 쓰는거예요?”
“으음. 아무래도 좀.”
“아무래도?”

으응? 벤지는 어느새 이단의 턱에 입술을 부비고 있었다. 이단은 벤지의 부드러운 머리털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주름도 생긴 거 같고.”
“잠깐, 벤지는 지금 이단 헌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말 그대로야. 벤지, 나.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어.”
“뭐? 절대 안 돼요.”
“아니, IMF 말고.”
“그럼?”

이단은 열린 창문을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이단과 벤지가 일을 그만 두고 정착 한 곳은 시애틀의 항구도시인 올림피아였다. 짭쪼름한 바닷바람이 방 안을 훑었다. 벤지는 이단의 시선이 머문 곳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아, 제발. 이단.

“절대 안 돼요.”
“벤지, 방금 똑같은 말 했었거든?”
“안 돼. 차라리 IMF에서 다시 일한다고 하지 그래요?”
“그래? 그럼 현장요원 다시 할래.”
“그, 그것도 절대 안 돼요.”

벤지는 나름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단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럼 키스할래?”
“절대 안, 으, 빌어먹을.”
“뭐?”

장난스레 웃는 이단의 얼굴에 벤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단 헌트의 방식이었다.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혼까지 쏙 빼놓는 그런 것. 이단은 벤지의 양 볼을 붙잡고 가볍게 뽀뽀했다.

“그냥, 얌전히 배에서 물고기만 잡고 돌아오겠다는 거야. 낚시 좋아하지? 위험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또, 스릴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잖아.”
“이단이 가는 곳에는 꼭 사건이 터지잖아요...”
“사건이라고 해봐야 노인과 바다 찍는 것 밖에 더하겠어?”

항상 그랬듯이 벤지는 이단을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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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정도로 올곧은 인간이었다. 대령은, 마지막까지도 등을 꼿꼿이 편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새겨져있는 세월의 흔적은 그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또 얼마나 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찰리는, 담배를 바닥에다 떨구고 발꿈치로 불씨를 비벼 껐다. 발바닥 사이로 연기가 비명을 지르며 새어나온다. 한참이나 그것을 비벼 없앨 수 있다는 것처럼 행위에 열중했다. 연기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손끝에 연기가 맴돌았다. 찰리는 통나무처럼 뻣뻣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대령의 코끝에 손을 대어보았다.

대령을 들어 올려 낡은 침대 위에 놓았다. 감긴 한 쪽 눈 언저리를 집어 올려 의안을 빼내어 탁상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손 모양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찰리는 여태 봐왔던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떠올렸다. 두개골에 총알 한 방, 왼 쪽 심장에 두 방. 꺾어진 관절, 그리고 비명을 지르다 멈춘 입 구멍들. 찰리는 다시 대령을 내려다보았다.

, 결국 평범한 것이었다. 원래 있었던 일처럼.

보통이라면, 한 시간 이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초과했다. 답지 않은 감상에 젖은 탓이었다. 삽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끝까지 날 고생 시키는군.”

 

대령은 말이 없었다. 찰리는 그 얼굴을 힐끔거리며 조심스럽게 경동맥 부근을 다시 한 번 꾹 눌러 보았다. 똑같은 결과였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자신의 모습이 꽤 웃기게 비췄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구덩이는 다 파놓았다. 하지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찰리는 제 성격처럼 뻣뻣하게 굳은 대령을 들어 같이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흙이 가득한 바닥에 대령의 몸을 두었다. 찰리는 쉽게 구덩이를 빠져 나왔다. 불편하게 딱 맞는 옷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찰리는 삽에 기대었다. 해가 질 때까지.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서류 보고 연락 드려요. 지금 당장 베이비시터가 필요해요. 혼내야 될 애들이 몇 명 있거든요.

 

발랄한 목소리의 여자는 장소를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순간 벨 소리가 울리고, 한 손에 총을 쥔 채로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그 앞에 놓인 종이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르기 쉽도록 만들어진 봉투를 찢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웃기게 생긴 수염에, 꽤 신경질을 많이 부리고 다니는 모양인지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까지.

 

혼내야 할 어린이라.”

 

빈센트는 봉투를 품 속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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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AU

band of brothers William Evans x Interview with the Vampire lestat


환영을 본 사람이 과연 무슨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연기와 같이 공기 중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단정하게 묶은 금발, 그 사이로 보이던 얇은 얼굴선 까지도. 그 순간. 우습게도 윌리엄은 알코올에 절여진 솜처럼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윌리엄은 농사나 짓고 살던 한적한 시골에서 갓 상경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밭을 갈고, 하루 일의 마무리로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앞에 여물을 가득 던져 준 윌리엄은 발끝에 체이는 흙이 묻고 잔뜩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다. 제국에서 뿌리는 흔한 징집 선전용 전단지였다. 윌리엄은 아직도 여물이 묻은 손바닥을 대충 털어 버린 뒤 허리를 굽혀 전단지를 주워 읽었다.

 


당신의 힘을 제국에 보태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전단지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홀린 듯이 전단지의 아래부터 위까지 천천히 훑었다. 적당히 사기를 북돋는 말과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될 것같이 써진 언어들. 윌리엄은 마지막으로 붙어있는 온점까지 속으로 읽고 난 뒤, 그 안에서 끌어 올라오는 전의를 느꼈다.

 

이렇게 수많은 시골 청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제국군에 입대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윌리엄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우연히 마주친 환영에게. 제국 내 온갖 소문의 중심지인 레스타에게. 갓 상경하자마자 제국 군복을 받아 입은 윌리엄이 그 레스타를 알 리는 없었다.

 

윌리엄에게 있어서 사랑의 열병은 유행 바이러스보다 더 독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기운 없이 거리를 비척비척 돌아다니던 윌리엄은 아주 우연히, 제국 안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제국 뒤편에 있는 산이라고 하기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는 높은 커다란 공터에 아주 무시무시한 마법사가 사는데. 그 마법사는 모르는 것이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윌리엄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마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환영을 본 것인지, 아니면 그 환영이 진짜인 것인지 까지. 더 나아간다면 윌리엄에게 그 환영의 이름과 그가 사는 곳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윌리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 밖에 없었다.

 

윌리엄은 훈련이 일찍 끝나는 날을 택해 그 마법사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그를 둘러싼 추잡한 소문들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은 마법사를 보기도 전에 그가 정말로 무시무시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음을 인정했다. 윌리엄의 바로 눈앞에 거대하고 기괴한 건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모아 전시하겠다는 듯이 붙여놓은 건물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삐그덕 거리며 존재했다. 그것을 집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한 발만 내딛는다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윌리엄은 바싹 말라오는 목구멍 안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바닥에서 십 센티 정도 떨어진 계단에 올라서기 위해 떨어질 것 같은 난간을 두 손바닥으로 붙잡고 겨우 문 앞에 섰다. 윌리엄이 주먹을 쥐고 문을 노크하기 전에.

 

누구야.”

 

문이 열렸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히 금발을 묶은 환영의 남자가 나타났다. 윌리엄의 표정은 꽤 멍청했고.

 

제국군이잖아.”

 

그 표정을 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마법사, 레스타는 멍청이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윌리엄을 쳐다보았다.

 

난 제국군을 좋아하지 않아.”

 

윌리엄은 얼굴 하나 크기로 작은 키의 레스타를 내려 보았다.

 

그리고 누가 내려다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레스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윌리엄의 바로 코앞에서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집은 주인의 마음처럼 불청객을 쫓아내기라도 하듯이 예고하지 않은 큰 동작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윌리엄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바닥 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찌르르 통증이 올라오는 꼬리뼈는 물론이고 윌리엄의 머리속은 레스타와 마법사 그리고 사라진 환영이 뒤죽박죽 섞여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었을 때는, 레스타의 거대하고 기묘한 집은 이미 안개 속 멀리로 사라진 뒤였다.

 

 

레스타!”

 

제국 내에서 레스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용기가 있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레스타는 우아한 몸짓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군복을 입은 불청객이 서 있었다. 며칠 전에 집으로 찾아온 제국 병사. 자연스럽게 그 얼굴을 기억해 낸 레스타는 불쾌한 안색을 겨우 숨겼다. 레스타에게 있어 표정을 숨기는 것은 아주 능숙한 일이었다.

 

윌리엄 에반스라고 합니다.”

 

긴장된 어투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윌리엄은 곧바로 등 뒤로 숨긴 것을 레스타에게 건냈다. 레스타는 갑작스럽게 건내진 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손에 들린건 꽃이었다. 레스타의 옅은 금발과 색이 비슷한 수선화가 장식 되어 가득 꽂혀 있는 꽃.

 

첫 눈에 반했습니다.”

 

레스타는 제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을 기억이라도 하는지 엉거주춤 서서 꽃을 건내 주는 윌리엄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 날 처음으로. 레스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전혀 짐작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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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브라이인]  (0) 2016.02.25

스테이시는 항상 짧은 손톱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디가 굵은 투박한 손끝에 박힌 굳은살은 그가 머리가 자랐을 때부터 악기를 다뤄왔다는 것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고, 게리는 그 손을 주물럭거리며 가벼운 손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게리는 즐겨 피던 담배도 잊고 스테이시의 손가락을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가. 그 비슷한 쓸데없는 장난을 쳤다.

 

스테이시는 말없이 열중하고 있는 게리의 정수리를 쳐다보았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찔린 건 게리 혼자였다. 게리는 슬쩍 스테이시의 손가락을 놓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

 

퉁명스럽게 시선을 회피했다.

 

혹시 돌려 말하는 건가?”

무슨?”

섹스하자는.”

 

그 노골적인 말에 크게 웃었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배를 잡고 웃은 게리는 목을 가다듬고는 탁자 위에 있는 케이스를 집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며 한 모금을 빨아 스테이시의 얼굴 위로 연기를 뿜어냈다. 매캐한 냄새 사이로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이 보기 좋았다.

 

그것도 좋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게리가 답지 않게 스테이시의 눈치를 봤다는 것이다. 스테이시는 이런 게리의 반응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계획적으로 사고를 치기 전, 또는 우발적으로 사고를 치고 난 후. 게리가 천천히 말을 끌자 답답해진 스테이시는 게리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앗아 깡통에 던져 넣었다. 주변에 담뱃재 하나 떨어지지 않는 깔끔한 속구였다.

 

좀 더 빨리.”

그거 섹스 할 때 가장 많이 듣던 소린데.”

 

스테이시의 입꼬리가 비틀리는 걸 본 게리는 두 손을 휘저으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게리는 곧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탈피 된 껍데기마냥 떨어져 있는 코트의 주머니를 뒤졌다. 별로 깊지도 않은 주머니 속이건만 게리는 괜히 뜸을 들이며 손을 휘저었다. 스테이시의 인내심이 바닥에 닿을 때 쯤, 게리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왔다.

 

게리의 손에 들린 것은 검은색 매니큐어였다.

 

어때?”

어둠처럼 새까맣군.”

 

뚜껑을 돌돌 돌렸다. 시큼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게리는 토를 하는 시늉을 하며 다시 뚜껑을 닫았다.

 

검은색 매니큐어처럼 새까맣지.”

뭘 하려고?”

 

게리는 스테이시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어울릴 것 같거든.”

 

 

스테이시와의 인터뷰는 말단 기자에게 있어서 로또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를 만나는 것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는 것 보다 어려웠고, 차라리 대통령과 면담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는 농담도 돌아다녔다.

 

싸구려 연애 잡지에서 일하는 말단 기자인 스티브는 극도의 긴장 탓에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스티브와 스테이시.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스테이시는 수십 명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무슨 변덕인지 몰라도 스티브를 콕 집어 대기실로 데려왔고, 보시다시피 불쌍한 스티브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자세로 스테이시와의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항상 하고 오시는 검정색 매니큐어에는 혹시 무슨 뜻이라도 담겨있는 건가요?”

 

그가 싸구려 연애 잡지에서 일하는 말단 기자인 이유는 분명했다. 연애 잡지를 단 한 번도 안 본 노인이라도 이 질문을 듣는다면 스티브가 진급을 못하는 이유를 수백 가지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실에서 단장을 하던 스트리퍼들은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스티브를 안쓰럽게 쳐다보았고, 그가 스테이시에게 어떤 취급을 받으며 쫓겨날지에 대한 저급한 내용들을 나열했다.

 

이름이 뭐라고?”

 

스티브는 쇳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민망했던 탓인지 마른기침을 하며 스테이시와 눈을 마주쳤다. 스테이시는 웃고 있었다. 스티브는 잠시 이미 자신의 심장은 쿵쾅거리다 못해 터져버렸고, 이것은 사후세계가 아닐까 라는 착각을 했다. 한 주먹 크기인 인터뷰 수첩을 바닥에 던지고 눈을 비볐다. 방금까지도 스티브의 수첩이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스테이시가 스티브의 엉덩이를 걷어 찰 것이다. 떠들던 스트리퍼들은 스테이시의 호탕한 웃음에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숨을 죽였다.

 

아주 좋은 질문이야. 마이크.”

 

스티브의 이름은 마이크가 아니었지만.

 

스티브는 이 대기실에서 살아 나갈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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