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바람 소리와 함께 여섯 개의 눈알이 도록도록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IMF에 꽤 오랜 시간동안 일한 크리스셰인마이크그 세 명은 이틀을 밤 새워 잔뜩 쌓였던 일처리를 방금 전에서야 겨우 끝내고 구석에 위치한 사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러 왔다가 우연히 만나 그렇고 그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무엇보다 커피가 식는 것도 잊어버린 체 누가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꺼내냐는 것이 이 순간 그들이 가진 최대의 관심사였다


웬즈 스트릿에 새로 생긴 중국식 식당과 자신이 키우는 귀여운 강아지 이야기로 한참을 종알종알 떠들었을 때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만 홀짝이고 있던 크리스가 드디어 떨어진 주제 덕에 겉돌던 대화의 눈을 잡아챘다.

 

이단헌트.”

 

그 이름의 파급력은 엄청났다흥미가 떨어져 핸드폰만 톡톡 두들기고 있던 셰인도집에 혼자 기다리고 있을 네 살 나이의 귀여운 강아지를 생각하고 있던 마이크도 그 이름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그 단어가 나온 목소리의 장본인인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방금 프로파일링을 하다이상한 걸 발견했거든.”

 

이상한‘ 그 것을 말하는 억양이 다른 둘의 귀에 꽤나 이상하게 들려왔다.

 

간단해최근에 있었던 신디케이트그 보고서가 내 권한으로 볼 수 없게 잠겨있더라구.”

그 이단이 참여한 미션이니까당연한 거 아니야?”

 

 

1. 그러니까정말 이상했다크리스의 태블릿 피씨에 떠오른 결재 서류는 그 의미 그대로 사인을 받기 위해 올라온 것 같았다파일 클릭실패권한이 없습니다파일클릭실패결재를 위한 서류인데 권한이 없다고크리스는 신경질적으로 화면을 두드렸지만 떠오르는 대답은 똑같았다.

 

권한이

없습니다.

 

사실자신에게 권한이 없는 정보를 보고 싶을 만큼 크리스는 호기심이 많지도 않았고대담하지도 않았다스물 한 살에는 경찰으로써 슬럼가에서 꽤나 골치를 앓았던 덩치들을 잡아가며 살다가서른 살에는 CIA인줄 알았는데 어영부영 임파서블 어쩌구 하는 이상한 곳에 들어가 현장에서 폭탄을 해체하고차에 치이고평범한 요원이 그렇듯 꽤나 험한 삶을 살아왔었다하지만 현재 크리스는 마흔 아홉 살 이었다현재 그에게는 젊은 날의 패기도 없었으며그저 회사에서 나오는 두둑한 월급을 받으며 병아리같이 뺙뺙대는 어린 요원들에게 과거의 기억에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이야기나 가끔 해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평범한 삶을 추구하던 크리스가 오랜만에 해킹을 시도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자료는 텅 비어있었다.

 

 

비어있었다구?”

 

마이크의 비명에 말을 끝낸 크리스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신디케이트가 실존하는 거였어?”

파일을 보니 그것도 의심 가더라.”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마이크가 목소리를 내었다.

 

사실 이건 내가 직접 본 건데.”

 

 

2. 마이크가 생각하기에 아마 새벽이었던 것 같았다창문의 스크린을 열어 밖을 보았을 때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고심지어 가로등도 켜지지 않아 건물들의 인영도 어렴풋이 보일 정도였다젠장일찍 좀 출근할걸투덜거려봤지만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음산하잖아무릎에 총을 맞고도시속 80km로 달리는 차량에서 떨어졌어도 멀쩡히 미션을 마쳤던 마이크는 의외로 귀신이나 그러한 것이 자주 나타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무척이나 약했다침을 꼴깍 삼키고일에 집중을 하기 위하여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 (웅얼웅얼)

 

멀리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마이크는 비명을 지를 뻔한 자신의 입을 겨우 틀어막았다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는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잘 못 들은 것이겠지마이크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을

 

으음벤 (웅얼웅얼)

 

그리고 우습게도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마이크는 졸도해버렸다.

 

 

그 때는 몰랐는데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음아니목소리가 아주 익숙했거든.”

쓰러졌다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푸하세상에.”

그 목소리의 주인분명 이단 헌트 였다구.”

계속해.”

그리고 그 목소리가 부르는 건 벤이었고이단 헌트와 가장 가까운 인물그리고 IMF 요원 중 떠오르는 이름은 딱 하나지.”

벤자민 던.”

그래.”

 

잠자코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셰인이 이제 자신의 차례라는 듯 자세를 고쳐 앉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3. 간단했다셰인은 이단 헌트가 영국총리를 납치 한 날그 자리에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네.”

하지만 그납치가 사실이라면... 파일이 비어 있는 사실도 이해가 되지.”

헌트랑 벤지랑 그, ‘섹스를 하는 어그렇다고?”

이단 헌트가 총리를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더 믿음직스러운데.”


시계가 밤 9시를 알리는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어쨌든. 마이크, 셰인, 크리스 그들은 대충 시간을 떼운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아까부터 소리를 내며 돌아갔던 에어컨 바람은 그들의 몸을 으슬으슬 떨리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일을 끝낸 후부터 지속적으로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크리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밌었네, 친구들. 그럼 난 이만 가보지."


어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머지 둘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4.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던 벤지는 정말이지 우연히 휴게실의 씨씨티비를 보았다. 호기심이 생긴 벤지는 이단의 룸을 확대하고 있던 화면의 줌을 당겨 취소한 뒤, 휴게실의 화면을 확대하고 오디오를 틀었다. 그러니까, 벤지는 그 셋이 중국식 식당과 강아지 이야기를 하는 것과 자신이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본부 안 에서 이단과 섹스를 즐겼던 것이 그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을 다 들은 셈이다.


"세상에."


벤지는 키보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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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상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들었다. 시커먼 틈 사이로 괴물이 나오는 바람에 지구를 지켜야 되느니 뭐니 하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고, 처음 유니폼을 본 순간 - 이 쫄쫄이를 입고 싸우라고? 잔뜩 발을 구르며 화를 냈었던 적도 기억이 난다. 웃긴 포즈를 취하면서 악을 처단하고 (촉수괴물이라든가 쓰레기로 뒤덮인 지독한 괴물이라든가 상상할 수 있는 괴물은 모두 있었다) 종국에는 지구를 구한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까마득히 위로 올라가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모두 그러한 참 된 인류애를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 촌스러운 빨간색 쫄쫄이를 흔쾌히 입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인류애가 솟아났다거나 지구멸망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네가 레드구나.


   벤자민 던, 그리고 곧이어 블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으로 찾아온 그는 훈련으로 인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하고 바로 악수를 청했다. 긴장으로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레드를 보는 건 처음이야. 아버지가 그러는데 레드는 다 잘생겼다는데, 지금 보니까 진짜 잘생겼네. 어어, 내가 말이 좀 많나? 미안. 긴장하면 떠들어대는 버릇이 있어서. 그러고보니 우리가 악수를 했던가? 그 목소리에 홀린듯이 고개를 저었다. 벤지는 정신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잔뜩 헤집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2. 송곳니를 드러낸 입에서 시커먼 침을 뚝뚝 흘리는 괴물의 얼굴 정중앙에 창을 박아넣고, 바닥에 쓰러진 그것을 확인 후에야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뼈가 보이는 오른쪽 팔을 왼쪽 팔로 감싸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희미해져가는 시야로 루터와 브랜트, 그리고 벤지가 보였다. 그 때도 벤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아마 안전가옥에서부터 여기까지 쉴틈 없이 달려온 탓 일 것이다. 벤지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루터는 독단적으로 괴물을 죽이러 간 나를 탓하며 신경질적으로 몇 마디를 내뱉었고, 브랜트는 내 오른팔을 들어 어느 정도의 상처인지 확인을 했다. 거칠게 상처를 헤집는 탓에 눈을 감고 고통을 씹어 삼켰다. 눈을 떴을 때는 벤지는 사라져있었다.

 

   결국 벤지는 떠났다. 아마 쌓여왔던 것들이 기폭제가 되어 터진 모양세였다. 나도 너를 지킬 수 있고, 싸울 수 있어. 악이 받힌 그 소리에도 나는 역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3. 안녕, 이단. 보고싶었어? 오른쪽 가슴께에 찔린 쇠붙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벤지는 손잡이를 고쳐 잡으며 더 깊숙이 찔렀다. 목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이며 쏟아져 나왔다.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차례였다. 사실은, 보고싶었다. 정말 보고싶었어. 입을 벌렸지만 쏟아져 나오는 것은 고백이 아니라 핏덩이였다. 여러 색이 섞인 벤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벤지는 손잡이 위로 가볍게 손장난을 쳤다. 손에 쥔 무기를 잡는대신 바닥에 떨어트려 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 벤지는 그 행동이 웃긴 모양이었는지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 괜찮아. 겁먹지 마. 심장은 피해서 찔렀거든. 우리 보스가 널 보고 싶어해.

   널 떠난 이후로, 나는 새로운 레드를 만났어. 그는 너와 같으며, 같은 사람이 아니지.

   그가 널 보고싶어해.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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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지, 부탁이 있어. 이단의 덤덤한 말투에 벤지는 게임이 틀어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듣고있어. 톡톡 가볍게 치는 키보드 소리와 함께 나른하게 대답했다.

 

   나 좀 때려줄래?

 

   그 소리는 마치, 오늘 점심은 간단히 크리스피에 가서 도넛이나 먹자. 와 들려오는 운율이 비슷했다. 무엇보다 벤지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들었다. , 도넛. 좋지. 벤지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딸칵였다. 그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바닥을 뛰어다니던 3D2차원 캐릭터는 사라지고, 여러 수치가 적힌 로딩 화면이 나타났다. 노트북을 닫은 벤지가 몸을 돌려 이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뭐라고? 이단은 유난히 참을성이 많았다. 벤지가 자신의 요구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리며, 다시 말했다.

 

   그니까 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구.

 

   아하. 그렇구나. 벤지는 정말 알겠다는 듯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 망설이다가, 양 손을 들고 그니까 구멍을 만들어 검지를 집어넣었다 빼는 민망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것은 속된 행위로, 성관계를 의미했다. 그리고 망설이며 말했다. 내가 음, 깔리면 되는거야? 이단은 결국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난 네가 날 때려줬으면 좋겠어.”

   , 그래? 간단하네, 널 때리라니. 그리고 넌 날 죽이면 되는 건가?”

   아니. 난 가만히 있을 거야.”

   , 이단?”

   그래.”

   내가 진짜 네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바라고 있는 거야?”


   그래. 이단은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긍정했다. 사실 벤지는 아까부터 이단의 사고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단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벤지는 좀 수동적일듯

벤지 귀여워 이단 벤지 잡아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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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서가 도착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의 풍경이 담긴 사진이었다. 보내는 이도, 아무 말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벤지는 어렴풋이 엽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보고싶어. 이단의 목소리가 가슴께에서 들려왔다. 벤지는 한참이나 엽서의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한숨을 쉬었다. 바로 손이 닿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곳에는 빛바랜 수십장의 엽서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엽서가 마치 이단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한참이나 쥐고 있다가, 벤지는 가장 뒤의 자리에 엽서를 꽂아 넣었다. 이단이 IMF에서 제명된지 1년이 살짝 넘는 날이었다.

 

   이단의 도주를 도왔다. 이러한 이유로 국장에게 잔뜩 미운 털이 박힌 탓에 오늘도 벤지의 앞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잔뜩 쌓여있었다. 망할, 오늘도 혼자 야근 당첨이네. 벤지는 아파오는 머리에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퇴근을 준비하는 주변 요원들과 말을 섞기 싫었던 벤지는 클래식을 튼 볼륨을 최대로 올린 헤드폰을 뒤집어 쓰고 피아노를 연주하듯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벤지는 모니터 쪽으로 구부정하게 굽혔던 허리를 피고, 눈을 꿈뻑 감았다 떴다. 이러다 제 명에 못살겠구먼. 들으라는 듯이 크게 중얼거렸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확인해야 할 정보들은 반도 넘게 남아있었다.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날이 그랬다. 818. 사라진 이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는 IMF. 그리고 흔적 없이 텅 빈 집. 이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거짓인 것 마냥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콧등을 긁적이던 벤지는 약간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물방울이 떨어졌다. 결국 벤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미리 꺼 둔 탓에 화장실 안은 아주 컴컴했다. 물방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벤지의 눈이 어둠에 약간 익숙해지자, 그 안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 벤지는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글자와 그림들만 본 탓에 자신의 눈이 제 기능을 못하나 싶었다. 벤지는 한참의 적막이 흐른 동안 겨우, 이단? 자신의 예상이 맞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안녕. 벤지.”

   이단?”

   그래. 나야.”

 

   이 상황에서 벤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저 잘생기고 완벽한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려주는 것. 일 년 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자신의 흔적을 지우더니 고작 찾아 와서 한다는 말이, ‘그래. 나야.’ 같은 것 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는 그 생각을 실제로 옮기고, 이단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대로 크게 한 방 얻어맞았다. 이단은 멍청한 표정으로 얼얼한 오른쪽 뺨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인사치고는 좀 격한걸.”

   젠장, 죽은 줄만 알았다구.”

   너한테 생일 축하 받고 싶어서 왔어. 보고싶었어, 벤지.”

   그런 말 하는 걸 보니까 진짜 이단 헌트는 맞네.“

 

   결국 벤지는 화 낼 기운도 잃어버렸다. 이단에게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살짝 숙여 볼에 입술을 부볐다. 이단의 입꼬리가 훤칠하게 말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벤지는 이단의 얼굴을 두 손에 넣고 기른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씩 보이는 귓불을 어루만졌다.

 

   생일 축하해,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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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만나지 말자구?”

 

   이단은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답게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단지 그냥 눈만 느리게 깜빡이며 쳐다볼 따름이었다. 강하고 무거운 침묵이 잠시간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말라오는 입 속의 점막에 침을 최대한 끌어 모으고, 삼켰다.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다시 우리는 친구인거네. 이 상황에서 그런 말 들으니 아주 좆같은걸. , 그러지. 간단하네 아주. 몇 번이나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결국 나온 목소리는 멍청한 말이 되어 이단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빌어먹을, 젠장, 좆같은. 정말 하고 싶은 욕설은 목구멍으로 들어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단의 연애사는 항상 이와 같았다. 항상 지켜보아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처절한 연애사에 내가 포함 되있는 것은 예상하지 않은 바였다.

 

   떠날거야?”

 

   이단은 헌리 국장을 죽였다. 완벽한 솜씨였다. 차가운 총알은 헌리의 이마 정중앙을 뚫고 피와 함께 벽에 박혔다. 믿을 수 없어 혹시나 그 헌리의 마스크를 쓴 괴한을 죽인 것이 아닐까 얼굴 피부를 긁어보았다.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와 살점이 손톱 밑으로 긁혀 들어왔다.

 

   너는 나를 잡으려다가 놓쳤고, 기절한 상태로 IMF에게 발견 될 거야.”

 

   쏟아 낼 질문이 아주 많았다. , 도대체 왜? 뒷목에 강한 충격이 왔다. 질문은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가물가물하게 사라지는 시야 밖으로 이단 헌트가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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