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이단 전력: 포옹


진정해요.

 

제 눈앞에 놓인 상황과 다르게도 벤지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 내장이 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복부는 깊이 패여 있었다. 이단은 숨을 헐떡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벤지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쇼크로 인해 온 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벤지는 이단의 몸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단은 물 밖으로 튀어나온 금붕어마냥 뻐끔거렸다. 쇠를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신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움직이면 더 아플 뿐이에요.

 

달래듯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벤지의 손에는 날카롭게 길이든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피가 묻어있었다. 누구의 피 인지 상관할 바가 못 되었다. 수고했어요. 이단, 이제 아이엠에프는 끝이에요. 그 사람이 이겼어요. 라고 눈물을 흘리며 이단을 안던 벤지의 피. 손에 들은 나이프로 자신을 찌를 것을 직감했지만 그의 포옹을 피하지 않은 이단의 피. 이름 모를 누군가의 피.

벤지,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웃었다. 죽을 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표정은 미소였다. 벤지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손바닥으로 이단의 얼굴을 문질렀다. 냄새가 옮겨 붙었다.

 

이제 나는 어떡하죠?

 

벤지는 이단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물었다. 이단은 죽었다. 질문을 할 사람도, 대답을 할 사람도 사라졌다. 벤지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이단 헌트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당신은 죽을 운명이었어요. 아무도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해요. 아이엠에프,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붙잡아 손톱을 뽑고, 눈알을 파내는 지독한 고문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끝내준 거예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사람은 이기지 못해요.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이었다. 대답이 필요 없는 변명이었다.

 

벤지. 항상 감정에 휘둘리지 마.

 

이단은 죽었다. 벤지는 이단의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죽은 시체의 피는 아직도 따뜻했다. 벤지는 이단의 품 안에서 안정을 느꼈다.

이단을 처음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순수한 의도였다. 벤지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디스크를 훌륭히 복원했고, 너무 신난 나머지 마침 옆에 있던 이단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그를 꽉 껴안았다. 이단은 일부러 벤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뒤늦게 누굴 안았는지 깨달은 벤지는 머쓱하게 포옹을 풀었고, 너무 신난 나머지 실례를 범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단을 두 번째로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더 이상 실수라는 변명은 소용이 없었다. 조용한 펍에서 루터와 이단, 벤지가 같이 술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루터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벤지는 자신이 느끼는 괴로운 감정을 이단에게 털어놓았고, 이단이 놀라운 해결책을 자신에게 답하기를 바랐다. 이단은 술에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벤지를 안아주었다. 위로나, 해법 따위는 없었다. 탄탄한 가슴팍이 벤지의 머리통에 닿았고 몇 번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주었다. 벤지는 좀 더 시간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루터가 들어왔고, 이단은 멋쩍게 웃으며 술에 취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잘 풀릴 거라고도 말했다. 어떠한 해답보다 벤지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이단을 세 번째로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이단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단은 벤지를 안아주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는 좋은 동료야.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잠깐 지나가는 것일 거야. 감정에 휘둘리지 마. 이번에는 실수가 아니었다. 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말하니까 속은 시원하네요. 이런 말 들었다고 다음 미션에서 날 빼는 건 아니겠죠? 농담을 했고, 웃었다. 끝이 없는 관계라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단은 새로운 동료와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벤지는 이단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이단은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서 자신의 몸을 숨기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벤지에게 접근했다. 그는 벤지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를 이용해야할지 잘 알았다. 벤지는 아직도 이단을 사랑했다. 이단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알았지만 고칠 용기는 없었다. 그 사람은 벤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단을 지키라고 유혹했다. 자신과 아이엠에프에게서. 항상 이용만 당하고 족쇄에 묶여있는 이단을 풀어줄 사람은 벤지 그밖에 없다며 설득했다. 벤지는 아이엠에프의 중요 정보를 빼돌리고, 그 사람은 이단 헌트를 점점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사람은 벤지를 더 세게 몰았다. 이단 헌트를 지켜. 그는 인간이야. 뼈가 뒤바뀌는 고통을 겪게 하고 싶어? 차라리 고통을 겪기 전에 죽이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야. 벤지는 이단이 자신을 안아주었던 그 때를 생각했다. 벤지는 그 사람이 주는 작은 권총과 나이프를 품속에 넣었다.

이단을 구할 차례였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자국으로 엉망인 얼굴을 보며, 벤지는 이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온 몸이 딱딱하게 굳기 전에 그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문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도 섞여 들렸다. 벤지의 차례였다.


맞아요. 난 또 감정에 휘둘리고 말았어요.


벤지는 이단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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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는 항상 모든 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미션 또는 연애. 아니면 둘 다. 하이스쿨 시절 벤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미식축구부원과 사귈 때도 벤지는 그에게 이끌려가는 쪽이었다. 주말에 영화관 갈까? 좋아. 에일리언 어때? 벤지는 외계인이라면 끔찍이 진저리를 쳤지만. 그래, 네가 좋다면 그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지. 며칠 뒤 헤어졌다. 공터를 휘어잡는 쿼터백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로맨티스트였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었다.


나이를 먹고. 아이엠에프에 취직을 하고. 벤지는 여전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즐기며 최대한 게으름을 즐기고 있었다. 데스크에 앉아 현장요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퇴근한 뒤에는 쇼파에 누워 감자 칩을 씹으며 하루를 보내는 식이었다. 무언가를 책임져야한다는 것은 벤지에게 있어서 아주 큰 부담이었고 피할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벤지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겠지만, 젊은 현장요원인 이단 헌트를 보기 전까지는. 벤지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었다. 이단에게 첫 눈에 반한 이후로 만족이라는 단어는 과거가 된 것이다.


줄리아와 결혼 한 이단을 행복하게 해주자 싶었고, 이단이 줄리아와 이혼을 한 이후에는 자신이 이단과 행복을 만들어가 보자고 결심했다.

어설프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이단은 벤지에게 웃어주었다.

 

이게 시작이라면 아주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힘든 일은 관계를 더 굳건하게 만들어주었다. 위험한 미션에서 벤지는 이단을 여러 번 구해주었고 그것은 이단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이단을 벤지는 끌어안았다. 정말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미션에서 이단이 살아 돌아왔을 때. 벤지는 참지 못하고 이단에게 키스했다. 이단도 벤지에게 키스했다. 시간이 멈추는 걸 느꼈다. 잔뜩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자신보다 더 운이 좋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살자.”

 

그답게 투박한 고백이었다. 세상에. 벤지는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눈을 멍청하게 떴다 감기를 반복했다. 이런 기분을 전에 느껴본 적이 있었다. 두바이 빌딩에서 모로에게 제압당할 때, 벤지는 모로의 강한 발차기에 머리를 얻어맞고 바닥으로 쓰러졌었다


그래. 그 기분이다.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었다.


싱글 킹 사이즈의 좁은 침대는 건장한 성인 남자 두 명이 눕기에 좁았다. 별다른 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이불을 턱 끝까지 덮고 옆에 누워있는 이단의 향을 맡았다. 이단의 바디 샴푸 향은 코코넛 향이었다. 벤지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단은 피곤했던 모양인지 몇 번 눈을 뜨려는 시도를 하다 바로 잠들었다. 이단의 속눈썹 하나하나를 세어볼 것처럼 얼굴을 보던 벤지는 눈을 감았다.

 

이단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동그란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다가 일어났다. 이렇게 평화롭다니. 벤지는 부운 눈을 몇 번 비비다가 이단의 어깨에 턱을 걸쳐 그가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뭐해요? 묻지 않았지만 이단은 벤지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았다.

 

무난한 디자인이 좋겠지?”

 

모니터 안에는 킹사이즈 침대 카탈로그가 나열되어 있었다. 결국 벤지는 참지못하고 이단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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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AU (벤지이단 전력)


도둑질로 하루를 버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닭을 잡아먹거나 닭이 없다면 시궁쥐 따위의 것들의 털을 뽑고 잘 손질해 식탁 위에 올리고는 했다. 여우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특히 도시에 사는 여우일수록 더더욱! 벤지는 이단이 한 무더기 가져온 사과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생각했다. 며칠 째 사과만 먹고 있잖아. 이단이 도둑질로 생활을 연명하지 않겠다고 선언 한 이후로. 이렇게 살다가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이단의 피부도 퍼석퍼석하고 기운도 없이 다니는 것이 벤지로서는 아주 안타까운 일이 아닐 리가 없었다.

그랬다. 벤지는 고기가 먹고 싶었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짐승의 비곗덩어리가 먹고 싶었다. 교양이 있는 현대 여우는 불을 이용하여 고기를 익혀 먹고는 했지만 몇 주, 몇 달 동안 육식이라고는 구경도 못 한 여우는 그런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었다.

주둥이로 크게 사과를 베어 물었다. 정확히 반이 갈린 사과 속에 딱딱한 씨앗이 보였다. 씨앗을 빼서 멀리 던져버렸다. 비실비실 날아가는 씨앗 뒤로 농장이 보였다. 양계장, 사과주 농장, 칠면조 농장. 벤지는 응큼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농장 한 번, 사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이단의 얼굴을 떠올리고, 결심했다. 응큼하게 지었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단을 속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네 발을 사용해 재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미스터 헌리가 일거리를 준댔어요.”

그래?”

두더지의 시력과 집 안 환경의 관련성에 대한 칼럼인데, 돈도 바로 준대요.”

잘 생각했어.”

이단은 신문을 읽던 것을 접어 식탁 위에 내려놓고 벤지를 쳐다보았다.

좀 어때요?”

불경기라 그런지 일자리가 없더라. 다른 일을 알아봐야할 것 같아.”

예를 들어?”

눈치를 보았다. 괜히 온 몸의 털을 박박 긁으며 이단의 대답을 요구했다.

도둑질은 아니야.”

그럼 그렇지.

 

 

밤이다. 벤지는 눈과 주둥이 세 쪽에 구멍이 뚫린 복면을 뒤집어쓰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어깨에는 푸대자루를 메고 발 윗꿈치로만 살살 걸으며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단은 자는 듯싶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농장과 거리는 멀지 않았다. 후다닥 달려가 철조망을 넘고, 경비견을 피하고, 물구나무를 서고, 백 덤블링을 하고. 어찌저찌 들어왔다. 꽥꽥꽥. 닭이 떠드는 소리가 경쾌하다.

 

 

돈 받았어?”

책이 불티나게 팔린대요.”

어제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있던 저장소가 잘 손질된 닭들로 넘쳐났다. 잠이 덜 깬 표정이던 이단은 저장소를 한 번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먹음직스러운 닭고기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미스터 헌리 덕이죠.”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으며 능청맞게 대답했다.

 

 

벤지의 어깨 위로 사과주가 가득 담긴 푸대자루가 무겁게 흔들렸다.

 

이단이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벤지 던. 한 동안 먹을 식량도 비축해 놓았고, 이단을 더 이상 속이기도 싫었다. 다시 한 번 주둥이와 눈구멍이 세 개 뚫린 복면을 뒤집어썼다. 네 발로 재빠르게 뛰어 칠면조 농장으로 들어갔다. 경비견도 없었고, 보초병도 없었다. 조용하게 움직였다. 개구멍 사이로 잔뜩 몸을 낮춰 들어갔다.

이 여우 녀석, 드디어 잡았구나.”

물론 칠면조가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벤지는 알 수 있었다. 함정이구나. 들켰구나! 칠면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엽총을 든 괴팍하게 생긴 노인네 세 명이 벤지를 둘러쌌다. 벤지는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이 들어온 개구멍을 보았지만 세 명의 노인 중 한 명이 그 구멍을 막아섰다.

올 겨울은 이 녀석의 털로 목도리를 만들어 버틸 수 있겠군.”

살아있는 상태에서 털을 벗겨야해.”

고통스럽게 털을 벗기자. 고통 속에서 털을 벗기면 더 윤기가 날거야.”

가장 괴팍하게 생긴 노인네가 벤지의 앞으로 다가왔다. 벤지는 빠져 나갈 구멍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 죽음. 이단이 생각났다. 후회해봤자 늦었다. 벤지는 눈물을 흘렸다. 노인네들이 여우가 겁에 질린 모습이 역겹다며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꼬리를 잡혔다. 버둥거렸지만 팔뚝에 작은 상처만 나게 할 뿐 그다지 효과적인 반항은 아니었다. 노인네들은 철장에 벤지를 가두었다. 벤지의 머리속에 여우 목도리가 된 꼬리, 박제가 된 머리, 닭처럼 털이 빠진 처참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단. 도둑질은 더 이상 안 된다며 우리의 힘으로 돈을 벌어보자던 이단.

노인네들은 축배를 들자며 장소를 빠져나갔다. 벤지는 앞발로 땅바닥을 쾅쾅 치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단이 보고 싶었다. 코를 팽팽 풀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끝까지 도둑질을 끊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벤지.”

이단이 보고 싶어 목소리까지 들린다. 벤지는 눈물로 흐려진 눈을 비비며 이단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단?”

진짜 이단이었다. 이단은 앞발로 팔짱을 낀 체 벤지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빠져 나가자.”

이러다가 이단도 잡히고 말아요. 안 돼요. 혼자라도 얼른 빠져나가요.”

바닥을 봐.”

바닥이요?”

바닥을 보았다. 평범한 흙바닥이었다.

그래. 바닥.”

꽁꽁 막혀 있는 걸요.”

벤지. 아무리 현대- 여우라고 해도, 자신의 본능을 잊어버릴 필요는 없어.”

이단은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고, 드디어 깨달았다. 땅을 파서 탈출하면 되는구나. 벤지를 괴롭히던 여우 꼬리 목도리와 박제가 된 머리 그리고 털가죽이 벗겨져 알몸이 된 자신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실망했어.”

이런 말을 들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좋았을 거야. 벤지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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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상자는 벤지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충분하고 심지어 흘러 넘쳤다. 벤지는 혹시나 상자 안에 들은 것이 포장지만 그럴듯한 폭탄이라든가 총이라든가. 그 무엇도 아니라면 설마, 진짜 포장지에 적혀있는 그대로의 것? 진짜? 한참동안 상자 겉을 살핀 벤지는 궁금함을 내리 누르는 데 온 힘을 더했다. 식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물건의 주인은 뻔했다. 이단 헌트. 벤지는 이단이 올 때까지 얌전히 바닥이나 쇼파에 누워 물건 개봉의 순간만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덕에 몸을 퍼득이며 일어났을 때, 이단은 벤지의 바로 옆에서 잔뜩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왔어요? 이단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는 척 하다가 대답했다. 한 시간 전에. 많이 기다렸어? 벤지는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이단은 잔뜩 젖은 수건으로 덜 젖은 머리를 몇 번 더 털었다. 바닥에 미처 닦지 못해 떨어진 물방울들을 대충 손으로 훔쳐 닦았다. 그리고 다시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 맞다. 벤지의 혼이 빠진 소리에 이단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거 말인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잠이 덜 깬 탓이었다. 이단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저녁 먹었냐구? 아니요. 첫 번째 답은 틀렸다. 벤지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일 보기로 한 영화? , 영화관 앞에 멕시코 음식점이 새로 생겼어요. 내일 같이 가요. 근데,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니에요. 두 번째 답도 틀렸지만 전혀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벤지는 거의 머리를 쥐어뜯듯이 하고 있었고 이단은 머리 대신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 있는 보, ……. 상자요! 웬 거예요? 손가락이 딱 하고 마주치는 소리와 함께 답이 나왔다. 그거? 보드게임인데. 그럴줄알았, ? 이단은 축축하게 젖은 수건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일어난 김에 벤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상자도 챙겼다. 총이라도 들었을까봐? 이단은 벤지의 머릿속에서 사는 것이 분명했다. 벤지는 정곡을 찔린 것이 부끄러워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폭탄두요. 민망할 정도로 크게 웃어버린 이단은 달아오른 벤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멈췄다. 괜히 헛기침을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친척이 딸을 낳아서 선물로 샀는데, 게임을 즐기기에는 너무 어린……. 벤지는 그만 말을 끊고 말았다. 친척? 친척이요?? 자신의 생각에 빠져든 이단은 벤지의 얼빠진 표정을 보지 못했다. 자세히 따지자면 어머니 쪽이지. 벤지는 말까지 더듬으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단의 가족이요? 이단은 뒤늦게 벤지의 물음에 담긴 경악을 알아챘다. 벤지, 난 외계인이 아니야. 헌트라는 성도 물려받은 거고. 이단은 주절주절 말하는 벤지의 뺨을 감싸 쥐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얼굴은 달아오른 것보다 더 뜨거웠다. 뺨이 눌린 탓에 발음이 잔뜩 뭉개졌다. 외계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물론 알죠.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건 다르다구요. 뭐가 다른데? 이단은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이단 헌트였을 것 같아서요. 이단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뻔한 생각이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벤지. 벤지는 자신의 뺨에 올라와있는 이단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익숙해진다구? 이번에는 이단이 물을 차레였다. 잡은 양 손을 몇 번 주무르다가 대답했다. 당신도 사람이잖아요. 가족도 있고 친척도 있고, 가끔은 취미로 게임도 즐기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요. 그걸 자꾸 잊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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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예상답안은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마스크 쓸 수 있는 거예요?”


벤지는 양 뺨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환호성을 질렀고, 이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타깝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 마스크는 쓸 수 없어. 벤지는 서글픈 눈으로 이단을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똑같았지만.

이번 미션은 아주 간단했다. 라스베가스 중심부에 있는 휘황찬란한 럭키 38 카지노의 보스를 대면하는 것, 그리고 그에게 아주 작은 생체 도청기를 삽입하는 것. 여기서 드는 의문은 단 한가지다. 주로 이단 헌트나 브랜트의 백업을 맡는 벤지가 왜 선두에 나서는 것이지? 이에 대한 해답도 미션만큼이나 간단했다. 이단은 럭키 38 카지노에서 이미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사였고, 흔해빠진 마스크는 그들의 보안 시스템으로 들키는 가장 첫 번째 방어막이었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들어진 총보다 먼저. 브랜트는 헌리의 일을 돕느라 얼굴을 비추지 못한 지 몇 주 째였고, 덕분에 그 일은 자연스럽게 벤지에게 넘어갔다.


다시 상황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마스크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단은 곤란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마스크는 쓸 수 없지만, 대신 재밌는 건 할 수 있지.”


둘 사이의 중간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것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포커 카드였다. 벤지는 이단이 건네는 카드를 받아 들어 위 아래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단은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무슨 트릭이 숨겨져 있는 카드에요?”

트릭?”

무조건 이기게 만드는 카드라던가. 아니면 모서리에 독이 묻어서... 이건 좀 심했죠?”

영화 같고 멋있네, 벤지. 안타깝게도 어제 저녁에 월 마트에서 사온 평범한 카드야. 같이 장 봤는데 기억 안 나?”

이제 기억나요.”


벤지의 손에 들려있던 카드는 다시 이단의 손으로 옮겨갔다. 이단은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가볍게 섞이는 카드는 이단의 손에 밀착된 것 마냥 손쉽게 합쳐졌다. 벤지는 집중해서 그 행동을 관찰했다. 마디가 굵고 이곳저곳에 칼로 베인 흉터나 화상 따위가 가득이었다. 더해서 굳은살까지 박혀있는 손은 카드와 어울리지 않았다. 몇몇 개의 상처는 출처를 알 수 있었고, 대부분의 상처는 벤지가 이단을 알기도 전에 그가 얻은 상처였다.


벤지?”


벤지의 표정이 약간 변화한 것을 알고는 이단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벤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집중해야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은 다 섞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과 벤지의 앞에 카드 두 장을 나누어주었다. “기본적인 룰은 알지?”


당연하죠.”


벤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게임은 진행됐다.


목표는 단 한가지야. 너는 게임에서 무조건 이겨야해.”

가능해요?”

당연하지.”

어떻게?”


이단은 잘생긴 얼굴로 벤지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지었다. 벤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안 바빴던 탓에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벤지는 마음 같아서 미션이고 뭐고 다 때려치운 후에 이단과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지만, 그럴만한 배짱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룰은 단 두 가지야. 커다란 행운과.”


이단은 테이블 가운데에 놓아져 있는 카드 세 장을 한꺼번에 펼쳤다. 하트 A, K 그리고 Q. 이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 두 장을 벤지의 눈앞에 놓았다. 테이블 앞에 놓인 것은 하트 J10. 로얄 플러시. 벤지는 놀란 눈으로 이단과 카드를 번갈아 보았다.


장난하는 거죠?”


이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은 손기술.”


이단은 어디서 뺀 것인지도 모를 스페이드 A와 하트 7을 벤지에게 건넸다.


상대방을 잘 보고 있어야지.”

걸리면 어쩌려구요?”

걸리면? 그러면 걸리지 말아야지.”

, 아주 간단한 방법이네요. 이거 실패할 것 같아요. 분명 걸려서 카지노 밑에 있는 비밀스러운 감옥에 갇혀서 여생을 보내고 말 걸요. 아니면 죽던가.

꽤 간단한 게임이야. 그 곳의 보스는 이 게임을 가장 좋아하거든. 너가 연속으로 풀하우스를 터트리면 바로 널 부를 거고, 너는 준비 된 작은 기계로 보스에게 칩을 삽입하면 돼. 모기한테 물린 것 같을걸.”

이단 헌트라면 가능하지만, 벤지 던은 불가능해요. 손기술은 연습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단처럼 타고난 도박사는 아닌 걸요. 운도 없구요.”

운이 없다고?”


벤지의 태도는 꽤 단호했다.


저번에 루터랑 술내기로 인디언 포커를 했는데 제 카드가 어떻게 나왔는줄 알아요? 카드에 5보다 큰 숫자가 안 보이더라구요.”

내가 이 손장난을 누구한테 배운지 알아?”

설마. 오, 설마. 아니죠?”

루터야.”

, 젠장. 내 돈.”

루터의 손장난을 모른 게 패배의 한 수였지.”


끝이 아니었다. 벤지는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이 겪은 나쁜 일들을 회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 그저께 걷다가 껌도 밟았는데.”

벤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죄 없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손은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덮어져있는 카드를 펼쳐보았다. 스페이드 A, 하트 3 그리고 하트5. 벤지는 손에서 카드를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봐요. 아무 것도 아니네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넌 충분히 잘 해낼수 있어.”

벤지는 이단이 아니라 벤지라구요. 벤지 던.”

네가 왜 운이 안 좋다고 생각해?”


이단은 정말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벤지를 바라보는 것이 벤지의 속마음조차 읽을 것 같았다. 벤지는 이단의 눈을 같이 쳐다보다가, 꼬리를 내리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카드더미 위에 안착했다.


네 앞에 있는 사람을 봐. 그리고 그게 누군가 생각해봐.”

이단 헌트.”

정말 네가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드디어 벤지는 이단의 뜻을 알아 챌 수 있었다. IMF의 전설적인 요원, 잘생긴 미소와 굵은 눈썹이 눈에 띄는 요원. 벤지 던이 현재 사귀고 있는, 10년간의 짝사랑 끝에 벤지 던의 애인이 된 이단 헌트. 그의 의도를 알자마자 벤지는 얼굴 위로 올라오는 열기를 감출 수 없었다. 적어도 벤지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문제였다.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네 이야기니까 나오는 거지.”

하지만...”

다 같은 규칙으로 싸우는 거야. 너나, 나나.”


벤지는 다시 카드를 집어 들고 이단이 했던 것처럼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단은 벤지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드 두 장을 빼고, 세 장을 펼친다.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벤지를 상상했다. 잘 다듬은 수염과,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검정색 뿔테 안경. 여유로운 표정이나 걸음걸이까지. 이단의 머리 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은 미션 하나를 줄게.”


벤지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벤지는 행동을 멈추고 이단을 쳐다보았다.


이 미션에서 성공해. 그리고 나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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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동료와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가 평생토록 가지고 있는 직업적 신념은 아무것도 모르던 19살의 이단 헌트가 IMF에 입사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단순한 직장 동료,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한 체 서로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그는 여태 겪었던 사건을 토대로 이단 헌트를 만들어 나갔고, 적어도 그 이단 헌트는 무슨 사건이 없는 한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비해서 벤지는 유난히 동료를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동료들은 그에게 자신의 간과 쓸개를 빼 주는 인간상은 아니었지만, 벤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벤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한에서 말이다. 벤지는 이단을 믿었고, IMF에서 쫓기고 있는 그를 위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도왔다. 벤지에게 있어서 이단은 영웅이었다. 영웅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공주를 구출했고, 들리지 않는 팡파레 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와 벤지를 포함한 수많은 조력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애초부터 이단은 유아독존 형 인간이었다. 자신의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닦아 줄 조력자가 필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단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에는 몇 가지의 뒷배경이 있었다. IMF에 갓 입사 했을 때, 이단이 가장 처음으로 맡은 미션에서조차 이단은 훌륭한 요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이단이 유일하게 믿었던 두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었던 가 있었다. 훌륭한 요원이었던. 불행히도 그 말은 과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었던 는 언제나 첫 번째로 훌륭한 요원이 되기를 원했고, 이단이 의 욕심 섞인 야망을 눈치 채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단은 끝까지 를 믿었다. 그리고 끝에 도달해서야 이단은 를 믿었던 자신을 후회했다.


벤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두를 좋아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두도 벤지를 좋아했다. 벤지는 항상 밝은 인간이었고, 단 한 번도 남을 의심하거나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그를 배신하거나 시샘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이단은 그런 벤지를 알고 있었다. 벤지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이단은 철저하게 벤지를 이용했다. 이단은 벤지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단은 망설이지 않고 벤지에게 전화를 했다. “줄리아 핸드폰의 위치 추적을 해줘.” 몇 가지의 다급한 물음이 있었지만 이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낙천적인 중얼거림 끝에 벤지는 이단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이단이 유능한 요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은 괜한 운이나 요행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피와 살 속에는 기민한 감각이 흐르고 있었다. 벤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눈치 채는 것에는 별다른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사랑은 가장 이용하기 쉬운 감정 중 하나였다. 벤지는 사랑이라는 구실 하나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용서 할 것이고, 뛰어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었다.


이단이 실종된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사실, 모스크바에 갇혀있는 이단 헌트를 빼내오는 데 벤지는 적합한 요원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벤지는 서류를 조작했다.

 

이번에 현장요원 시험에 합격했거든요.”

 

이단은 그 말투에서 당신 때문에 미국에서 쫓겨날 지도 몰라요!” 라고 했던 휴대폰 잡음과 섞여 들려왔던 벤지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단은 자신이 벤지에게 내렸던 평가보다 더 벤지는 위험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리드미컬한 말투에 이단은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벤지를 쳐다보는 방법밖에 몰랐다. 누군가를 이용하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닌 벤지 일지도 모른다.


벤지는 서툴렀다. 모든 면에서. 하지만 그만큼 일을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한 가지의 실수를 통해 열 몇 가지의 요령을 배웠고, 새로운 것을 익혔다. 이단은 점점 벤지가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단은 흥미로운 사실을 눈치 챘다. 무언가가 들어맞지 않았다. 모스크바 감옥의 경비는 삼엄했고, 그 곳에 갇힌 요원은 그 누구도 아닌 이단 헌트였다. 그 이단을 구하기 위해 IMF에서 보낸 두 명의 요원은 이단이 알지도 못하는 초짜들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며 후보에 올랐던 요원들의 명단을 살펴보았고, 그의 눈동자는 벤지 던의 기록에서 멈추었다.


[잠깐 아래에서 볼까?] 사적인 부름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메시지를 받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벤지, 예전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상한 걸 눈치 챘어.”

 

이단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벤지에게 있어서 불행한 일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이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 벤지는 이단의 질문에 그대로 굳고 말았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바보 같은 벤지 던. 질문에 바로 되묻는 것은 그의 최대 실수였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벤지는 이단의 눈치를 계속해서 보았다. 세상이 끝날 때 까지.


다행히, 세상이 끝나기 전에 이단은 벤지의 의식을 깨웠다.


?”


이단은 벤지에게 이유를 묻고 있었다. 이단은 벤지를 책잡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희생할 필요가 있는지, 왜 자신이 앞서서 희생을 하는 것인지. 이단은 벤지의 의도가 궁금했다. 훌륭한 요원이 되고 싶어서? 이단 헌트와 그 옆에 나란히 서고 싶어서?


? 라니요...”


벤지는 두 손을 모으고 우물쭈물 거렸다. 혼이 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혼나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벤지는 항상 이단 앞에서면 자신이 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벤지가 느끼기에 이단은 전지전능한 어른이었다.


시민권이 박탈당하는 것이 겁나지도 않았던 거야?”


이단은 벤지와 나눴던 과거의 대화를 떠올렸다. 벤지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이단을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나를 구하러 올 이유가 있었던 거야?”

이유요?”


뒤늦게 벤지는 자신이 이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단은 자신과 똑같은 요원이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IMF 특성 상 서류를 조작한 것 따위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벤지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단 헌트는 벤지 던을 어떻게 생각하지?


당신은 그 때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잖아요.”


의도치 않았지만 벤지의 목구멍에서 힐난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냥, 당신을 구하러 가고 싶었어요. 그때처럼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벤지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이단은 그 때 처음으로 요원 벤지 던의 존재를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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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풍경 속에서 빛나는 건 눈동자 단 두 개였다. 벤지는 기도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액체에 입 밖으로 공기방울을 빠끔이며 그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벤지의 눈에 비친 눈동자는 깜빡이지 않았다. 그 자는 자신의 호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제 눈에 비친 무력한 어린아이 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벤지는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 잊어버렸다. 그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한낱 어린아이가 그 얼굴을 묘사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선이 굵은 얼굴과 목에 칼집처럼 난 아가미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위 속에 쏟아 부어지는 짭짤한 바닷물의 맛은 그가 처한 현실을 잔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손끝이 저려왔다. 벤지의 창백한 손가락은 붙잡을 것도 없이 바다 속을 방황했다.


그가 뻗은 손에 허리를 잡힌 것은 한순간이었다. 벤지는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도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뇌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벤지는 자신이 본 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알 수 없었다.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종이자락처럼 휘날리는 몸뚱아리는 쉽게 수면으로 떠올랐다. 아가미가 달린 인간은 조심스럽게 벤지를 해변가 위로 끌어 올렸다. 가슴께를 간지럽히는 손길에 벤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벤지는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걱정스러운 사람들 곁에 둘러쌓인 후였다. 그 후로는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일어나.”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른쪽 뺨에 묻은 침을 대충 손바닥으로 밀어 닦으며 잠이 덜 깬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벤지는 교수가 나간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두터운 해양생물학 전공 책을 덮으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팔 한쪽을 기괴한 모양으로 꺾어 잠든 탓인지 어깨가 뻐근했다. 벤지는 삐딱하게 서있는 불만스러운 표정의 브랜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안 깨워준 거야?”

아무도?”

강의 시간에 말이야.”

너랑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이 학교 내에 없을걸.”


맞는 말이었다. 벤지는 훌륭한 학생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는 뒤에서 괴짜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는 했다. 벤지가 그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입학 초 교수와 벌였던 논쟁과 크게 관련이 있었다.


이 곳은 실존하는 학문을 배우는 곳입니다. 당신의 그 판타지적인 요소를 충족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 때 벤지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저는 인어를 실제로 봤는걸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벤지는 멍청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 것도 얻은 것은 없었다. 해양생물과 인간사를 가르치고 있는 노교수는 옹졸한 인간이었고, 자신의 강의를 우습게 보는 벤지 던과 같은 학생을 끝까지 괴롭히는 재주가 있었다. 그 뒤로는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벤지의 머릿속에는 교수의 비웃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몇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또렷했다.


아무튼, 오늘도 바다에 나갈 거야?”


브랜트는 잔뜩 일그러진 벤지의 표정을 보고 화제를 바꿨다. 드디어 벤지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너도 오고 싶으면 와도 돼.”

정중히 거절하지.”


드디어 정신을 차린 벤지는 두꺼운 천으로 된 가방에 책을 쑤셔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긋지긋한 강의실을 탈출 할 때였다. 벤지는 입학 한 이후로 몇 년째 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이 익사할 뻔 했던 바다를 찾았고, 일부러 그 근처의 학교에 입학했다. 모두 그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몇 년째 수확은 없지만 벤지는 계속해서 시도했다. 벤지는 그가 자신을 구해줬을 때처럼 다시 나타나기를 바랐다.


벤지는 짭짤한 냄새를 크게 들이마시며 가방을 고쳐 맸다. 바다는 벤지의 고향과 같았다. 신발 밑창에 밟히는 모래의 감촉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았다. 벤지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를 발견 못할 자신을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바다로 가는 것은 단순한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와 다시 만나지 못할 걸 알고 있었지만 항상 바다로 발걸음을 향하는 자신을 막을 길은 없었다.


파도가 바로 앞으로 닿는 곳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실존하지 않는 생물을 찾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뭘까. 그 때 날 왜 구해준 걸까. 아직도 살아 있을까.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대답이 돌아올 곳은 없었다. 그렇게 잠자코 앉아있었다.


바닥이 깊은 바다에서 머리통 하나가 튀어나온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벤지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물체를 쳐다보았다. 다시 눈가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멀리서도 알아볼 것 같은, 꿈속의 얼굴. 죽기 전에 봤던 그 얼굴. 벤지는 그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인어는 존재했다. 그 사실을 입증 가능하다는 것은 벤지에게 기쁨이 되지 못했다. 인어가 존재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났다.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위협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벤지는 죽지 않았다. 그가 벤지를 구해줬기에.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맑은 녹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 속이 아닌 대기 위에 떠오른 그의 얼굴은 그 때와 똑같았으며, 또 달랐다.


그는 입술을 천천히 뻐끔거렸다. 보통 물고기들이 그렇듯이, 소리는 나지 않았다. 벤지는 천천히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옷이 젖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다 위로 두 개의 머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는 벤지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에 벤지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벤지를 바다 아래로 밀어 넣었다. 벤지는 반항하지 않았다. 천천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벤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벤지의 눈앞에 있었다.


벤지 던.”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벤지의 대답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는 웃으며 벤지의 양 뺨을 쓰다듬었다.


날 계속 찾아왔지?”


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좋을텐데.”


이단은 벤지의 어깨를 놔주었다. 벤지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폐는 급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벤지는 헐떡이며 그의 손이 올라가있던 어깨를 매만졌다. 꿈이 아니었다. 잔뜩 젖은 머리칼을 한 벤지가 다시 바다 속으로 잠수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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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요원임과 동시에 벤지 던의 완벽한 애인인 이단 헌트는, 벤지의 생활반경 하나하나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대처법 따위를 한 손에 꿰고 있었다. 그의 벤지 대 백과사전에 따르면, 벤지의 상태는 심각한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묻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는 날이 잦으며, 무엇보다 온 얼굴에 주름을 한가득 만들고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 벌써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보였다. 이단은 이렇게 벤지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방아쇠를 당겼을 때의 묵직함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았다.

이단은 어디 갔지?

괜히 현장요원이 된 건 아닐까?

글락의 무거운 반동이 어깨 위로 진동했다. 그리고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사라졌다.

벤지는 관통하는 느낌과 함께 자신이 뒤로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통수에 차가운 전선이 얽혀 들어갔다. 끈적한 점도의 피가 제 주변을 둘러쌌을 때, 벤지는 이단의 목소리를 듣고 끔찍한 악몽에서 반쯤 깨어날 수 있었다. “이단?” 흐릿한 초점을 고정시키려 노력하며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생긴 얼굴이 벤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벤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봐요, 현장요원씨. 잠귀가 너무 어두운거 아니야?”

벤지는 아직 꿈속이었다. 이단은 그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벤지는 손을 들어 이단의 얼굴을 더듬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꿈은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 있지 않았다. 벤지는 꿈에서 깨어났다. 다시 한 번 제 눈앞에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 왔어요?”

방금. 삼십 분. 아니, 한 시간 정도 전쯤?”

한 시간이요?”

잘 자고 있어서 깨우기 좀 그랬어.”

벤지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커튼이 쳐져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하기에는 어려웠다. 벤지는 시간을 물어보려다 관두었다. 시간이 몇 시던 무슨 상관이람.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대신 이단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방 안은 바로 눈앞의 것도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지만 이단의 눈알은 여전히 빛났다. 그 눈은 벤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생을 계속 할 것처럼.

무슨 일 있었어?”

일이요? 평범하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아니면 가끔 일하고.”

너한테 일어난 일 말이야.”

바보 같아서 말 안 할래요.”

있었구나.”

일이야 맨날 있죠.”

벤지.”

의미 없는 말꼬리 잡기만 여러 번 반복할 때 쯤, 이단이 그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추며 벤지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벤지는 불만에 가득 찬 청소년이 으레 그러듯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진짜 바보 같아서 그래요. 분명 놀릴 걸요. 아니면 IMF 전체에 소문이 다 나던가.”

벤지. 난 너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어.”

동료로서요?”

아주 잠깐이지만 머뭇거리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애인으로서.”

그렇담 말 할 수 있죠.”

차단 된 시야 덕분에 모든 소리는 민감하게 들렸다. 말을 잇기 전 긴장에 침을 삼키는 소리, 이부자락이 손끝에 스치는 소리, 불안감에 손바닥이 맞닿아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두 개의 심장이 뛰는 소리. 벤지는 어둠에 적응되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눈커풀을 내려버렸다. 차라리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가 계속 생각나요.”

거의 말을 던지듯이 뱉었다.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진 말은 예상보다 손 쉬웠다. 생각보다 바보 같지도 않은데? 벤지의 맥박은 백 미터 달리기를 방금 완주한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아기의 투정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었겠죠? 이름도 있었을 게 분명하고요. 이미 죽었으니까 소용없겠지만.”

벤지.”

난 그 때 절박했어요. 이단을 만나기 위해서요. 현장요원 자격을 따면 모든 게 이루어질 줄 알았죠. 물론 사람을 죽이는 건 빼구요.”

벤지는 목마름을 느꼈다.

무엇보다, 두 번째로 죽였던 사람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나요.”

이단은 말이 없었다. 벤지는 다시 한 번 방 안이 어두운 것에 대하여 감사를 느꼈다. 축 처진 팔뚝을 잡아 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벤지, 모든 일에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어떻게 부담을 안 가질 수 있겠어요? 난 이단과 같은 팀이라구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그 사람도 그랬겠죠. 물론 실패했지만.”

벤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제 목소리에 놀란 벤지는 짧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화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전혀 몰랐어.”

바보 같죠?”

벤지. 나도 팀을 잃었을 때가 있었어. 아직도 가끔 그런 악몽을 꿔. 동료들이 모두 죽고, IMF에서는 나를 쫓고 모두가 날 안 믿어주는 그런 꿈을.”

이단을 알기 전, 벤지는 읽었던 서류 뭉텅이를 떠올렸다. IMF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이단 헌트와 관련된 사건 파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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